한 학기를 마치며,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는지 돌아보자. 2020-06-15 14:44:38
기자 | 이메일 조회수 208  댓글 0
하루가 끝나면서 하루를 반성하고, 일주일이 끝나면서 일주일을 반성한다. 한 달이 끝나면서 한 달을, 한 학기가 끝나면서 한 학기를 반성하게 된다. 기말시험이 다가온다. 코로나19로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학기를 겪고 또 마치게 되었다. 돌아보며 살피는 반성에 관한 한 아주 오래된 유명한 반성은 안회의 반성일 것이다. 『논어(論語)』「학이(學而)」편에 따르면, 안회(顔回, B.C.514?-B.C.483?)는 하루를 마치면서 세 가지 반성을 했다. “남을 위해 일을 꾀함에 있어 진실하게 마음을 다했는가? 벗과 더불어 사귐에 있어서 믿지 못하지 않았는가? 전해 배운 것을 다 익히지 못하지 않았는가?”
안회는 공자(孔子)가 아낀 제자다. 공자는 배우기를 좋아하고, 옛 것을 좋아한 이다. 안회의 반성을 통해 안회 또한 배우기를 좋아했고, 배운 것을 미쳐 다 익히지 못했나를 매일 돌아본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자와 그가 가장 사랑한 제자 안회는 모두 평생을 배우기를 좋아하고 늘 자신을 돌아보고 최선을 다하며 진실하게 산 이들 같다. 그래서 성인이라고들 한 것이리라. 대학에 들어온 이후 공부하고 또 공부하며 가르치기를 30여년이 넘었다. 생각해 보니, 동아시아에서 말하는 성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늘 반성하며 사는 이들이 바로 성인인 것이다.
우리 학생(學生)들은 학생이란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학생은 참 좋은 말이다. 학생을 우리말로 풀면 ‘배우미’라는 뜻이다. ‘대학생(大學生)’은 ‘큰 배우미’란 뜻이다. 『대학(大學)』에 나타나는 ‘대학’의 ‘길’이 밝은 덕을 밝힘, 백성을 사랑함, 지극한 선에 머물음이라는 삼강령(三綱領)이 있다. 또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여덟 가지 항목인 팔조목(八條目)이 있다. 즉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다. 이를 고려할 때, 대학생은 나와 내 가족, 더 나아가 나라를 안정시키고 세계 평화를 걱정하는 ‘큰 배우미’다. 나는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진실하게 마음을 다한다’는 뜻인 충(忠)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안회도 이것을 제일 먼저 반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충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하고자 한다.
충(忠)은 갑골문(甲骨文)에 보이지 않는다. 갑골문은 상대(商代, B.C.1766-B.C.1122경)에 점을 쳐서 얻은 내용인 복사(卜辭)를 거북이의 배 껍질 혹은 짐승의 어깨뼈에 새긴 글자다. 갑골문에 충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충 개념이 상대 시절에는 아직 대상화되어 객관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자문명권에서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문헌인 『시경』이나 『주역』에는 충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갑골문은 주대(周代, B.C.1046-B.C.256)의 금문(金文)으로 발전하는데, 충은 바로 주대 명문(銘文)에 새겨진 금문(金文)에 처음 나타난다. 금문에 나타나는 충(忠)자는 윗부분에 ‘치우치지 않는 깃발’을 상형한 중(中)자와 아랫부분에 심장을 상형한 심자가 결합한 회의문자다.
『서경(書經)』에 이르러서야 충자가 7차례 나타난다. 그리고 춘추시대의 『좌전(左傳)』에는 무사(無私)의 뜻으로 나타난다. 또 『논어』에는 18차례 나타나는데, 군주에 대한 충성, 혹은 안회의 날마다 하는 반성에 나타나는 내면의 진실한 마음, 공자의 도를 증자가 충서로 풀이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일관(一貫) 등의 뜻으로 나타난다. 『상형자전』에 따르면, ‘충은 내적으로 마음이 공정하고 사사로운 정에 치우치지 않음’을 뜻하고, 『설문해자』에 따르면, ‘충은 우러러 공경하며 뒤따르는 것’을 뜻한다.
‘내면의 진실한 마음’을 뜻하던 충 관념은 춘추시대에 이르러 ‘임금에 대한 충성’이라는 정치적 의미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논어』「팔일(八佾)」편에서, “군주가 신하를 예로 부리면, 신하는 군주를 충으로 섬긴다”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서 충은 내면의 진실한 마음이라는 뜻으로도 읽히고, 군주에 대한 충성이란 뜻으로도 읽힌다. 이후 순자(苟子)와 한비자(韓非子)를 거치면서 또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시대를 거치면서 충의 뜻은 확장되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하면서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충은 때에 따라 나라에 대한 충성, 독재자에 대한 충성, 윗사람과 조직에 대한 충성으로 쓰였다. 이런 면에서 충은 우리 시대에는 낡은 개념으로 마치 청산되어야 할 적폐처럼 여겨져 반시대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충의 본래 뜻이 시대를 관통해 추구할 ‘치우치지 않는 진실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독재와 권위의 시대에 악용된 충의 이력 때문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진실된 마음을 갖는 것이 우리에게 지금 그리고 미래에 필요 없는 것이 아니다. 그 본래 뜻을 되새기며, 다시 온고지신(溫故知新)하고 법고창신(法古創新)하는 마음으로 그 뜻을 다시 새기자. 매일매일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정성을 다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일을 도모하자. 그러면 그것이 자신을 가꾸며 남을 가꾸고 그것이 확대되면서 가정을 행복하게 꾸리고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길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김원명(철학과 교수, 외대학보 편집인 겸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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