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작가인 ‘리카르도 피 글리아(Ricardo Piglia)(이하 피글리아)’는 1941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10 대 시절부터 썼던 일기를 시작으로 문학에 발을 들였고 1967 년 쿠바의 문화단체인 ‘카사 데 라스 아메리카스’가 주최한 콩 쿠르에 입상하며 작가로 등단한다. 이후 미국의 여러 스릴러 소설을 편집한 ‘세리에 네그라 (SERIE NEGRA)’란 시리즈물을 출판하며 당대 미국의 유명 작가를 아르헨티나로 유입시키는 역할을 해낸다. 피글리아는 1980년이 되던 해 장편소설 ‘인공호흡’을 출간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이는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으로 평가받게 된다.
그의 대표작 ‘인공호흡’은 작가나 지식인에 대한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정권의 탄압이 절정에 달했던 때 세상에 나왔다. 그는 독재에 의한 탄압에 대해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카프 카(Kafka) 등 철학자들의 생각을 따라 문제의 근원지를 찾는다. 이 책은 군부 독재정권에 대한 공포가 알레고리*적으로 표현된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다. 장르적으론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역사소설과 정치소설의 경계를 넘나들고 내용적으론 다양한 △담론△여담△에피소드를 총망라한다. 이렇듯 끊임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는 이유는 후대에 들어 출간 시 검열을 피하고자 함으로 추측된다. 당대의 작가들은 기존 문학의 언어와 형식을 파편화하고 여러 장르를 혼합함으로써 군부 독재에 저항하고자 했다.
책은 한 청년 작가가 군부 독재정권 시대에 살았던 외삼촌의 삶을 추적 해가는 여정과 그 주변인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1부와 이전에 언급한 실제 인물들이 등장해 문학담론을 펼치는 2부로 구성된다. 주인공인 에밀리 오 렌시(이하 렌시)는 사람들을 매개로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아르헨티나를 여행하고 대화나 편지를 통해 과거의 인물과 소통한다. 이러한 과정을 따라 현대의 아르헨티나가 겪고 있는 고통의 기원을 모색하는데 이때 렌시는 작가인 피글리아의 페르소나로서 기능한다. 해당 작품 이외에도 피글리아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관찰자로 설정한 다수의 작품을 서술했는데 이는 사건을 뒤쫓는 탐정소설로서의 면모를 갖춰 독자에게 긴장감과 흥미를 유발한다. 그는 폭압적인 독재정권 아래 숨죽일 수밖에 없던 진실을 문학을 통해 여러 사람의 입을 빌려 조명함으로써 ‘인공호흡’하고자 했다.
독재를 향한 투쟁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5월의 광주엔 봄이 찾아왔고 태국 총선에선 민주 진영이 군부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독재의 시간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아직도 많은 사람은 과거의 시간에 묶인 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에 다가 서서 고통을 해소하지 않으면 상처는 끊임없이 재생될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고통받은 이들과 그들의 고통에 대해 멈추지 않고 이야기해야 한다. 상처를 제대로 마주하고 충분히 슬퍼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과도 같다. 치유를 위한 오늘의 진솔하고 용기 있는 발화가 우리 에겐 필요하다.
*알레고리 : 어떤 한 주제를 말하기 위해 다른 주제를 사용해 그 유사성을 적절히 암시하면서 주제를 나타내는 수사법으로 △배경△인물△행위 등이 표면적 의미와 이면적 의미를 모두 가지도록 고안된 기법
한 비 기자 04hanbi@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