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4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와 정부는 의료 개혁 정책에 대한 협상을 극적 타결했다. 정부의 의료 개혁 정책에 반발해 일어난 전국적인 의사 파업이 시작된 지 17일 만이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 최대 규모로 발생한 이번 의료계 파업은 양쪽 진영에 각종 갈등과 논란을 야기했다. 의사 파업이 발생한 원인과 진행 양상에 대해 알아보자.
◆의료계 파업의 원인과 해외 공공 의대 사례
의료계 파업은 이번 해 7월 23일, 정부가 발표한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 의대 설립 추진 방안’ 정책에서 기인했다. 해당 정책은 △의과 대학 증설 및 의대생 증원△원격 진료△한방 첩약* 급여화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정부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공공의료 확충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날로 높아져 가는 상황에 부응하기 위한 정책이다”며 의료 개혁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국민 1,000명당 활동 의사 수 약 2.4명으로 OECD 평균인 3.3명보다 낮다. 또한 병원 및 의사의 수도권 쏠림 현상 때문에 공공의료 정책의 필요성이 수년간 제기됐다. 정부의 정책 계획안에 따르면 공공 의대는 2022학년도부터 연간 400명씩 증원해 10년간 한시적으로 총 4,000명을 양성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연간 모집인원 400명 중 300명을 ‘지역 의사제’로 선발해 해당 지역에서 중증 분야에 의무 종사함으로써 지방의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의사 단체의 입장은 정부와 상이했다. 최대집 의협회장은 “정부가 계획한 의료 개혁정책의 대다수는 실효성이 없다”며 비판했다. 의사가 내과·흉부외과와 같은 특정 과와 지방을 기피하는 원인인 ‘의료수가 조정’과 ‘지방 인프라 확충’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가 언급한 정책의 타당성에 대해 각각 반박했다.
현재 우리나라 국토 면적 대비 의사 수는 10㎢당 10.44명으로 세계에서 3번째다. 이는 단위 면적 당 높은 의사 밀도를 보여준다. 의협은 환자가 의사를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단 것을 의미한다며 정부의 의견이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공공 의대 신설에 관해선 문제의 이해 관계자인 의사를 배제한 채 협의한 졸속 행정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정부의 정책은 의사 증원 인원만 구체적으로 결정했을 뿐 이외엔 확정된 것이 없어 많은 혼란을 야기했다. 나아가 공공 의대의 선발 및 관리를 국가가 감독·주도해야 하는 특성상 재정적 측면에서 부담이 가중돼 결과적으로 국민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 주장했다. 이어 한방 첩약 급여화는 한약의 효과와 안전성의 검증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행위라 비판했고, 원격 진료는 의료법상 대면 진료가 원칙이므로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의대 정책은 일본의 ‘자치 의대’ 정책과 유사하다. 일본은 의료 인력 부족 해결을 위해 1972년 자치 의대를 설립했다. 자치 의대는 우리나라 공공 의대 계획과 마찬가지로 졸업 후 국가 관리 하에 정부가 지정한 지방에서 9년간 의무 복무해야 하는 제도다. 2018년 기준으로 출신 지역에 정착한 의사 비율이 68%를 차지해 권역별 의사 수 불균형 문제를 완화했단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의 자치 의대와 우리나라 공공 의대의 차이점은 교육형태에 있다. 자치 의대는 6년 과정의 의대이고 공공 의대는 의학전문대학원 형태다. 또한 자치 의대에서 간호사 양성이 이뤄진단 것도 다르다.
◆상처뿐인 갈등
2000년 의약분업 파동 때도 의료계 파업이 대규모로 진행된 적 있다. 의약분업 파동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의사의 의약품 조제를 규제하는 정책을 내자 의사 집단이 반발하며 시작됐다. 약 6개월 동안 이어져 전국의 2만 개 병·의원 중 70%가 참가한 대규모 파업이었다. 당시 의료대란이라 불리며 큰 사회적 혼란을 겪었지만, 지금만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현재 의사의 공백은 의료 시스템의 중추인 전공의**대규모 이탈과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인해 곧 국가적 붕괴 위기로 이어졌다. 정부의 정책 발표 직후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는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곧이어 지난달 7일 전공의 일일 집단 휴진, 14일 의협 1차 총파업을 진행해 집단행동에 나섰다. 코로나19가 재확산되자 위기를 느낀 정부와 의사 단체는 1차 파업 후 곧바로 긴급회동에 들어갔지만 아무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의료계는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을 완전 무효로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정부는 정책 기조 유지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양측 간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채 의협은 전문의 단체 휴진 및 2차 총파업을 진행했다. 지난달 21일, 일부 전공의 파업을 시작으로 23일엔 모든 전공의가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26일엔 예정된 의협 2차 총파업이 진행돼 한순간에 의료 시스템이 마비됐다.
의사 집단의 행보에 정부 역시 맞불을 놓으며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보건복지부는 파업에 참여한 수도권 전공의와 전임의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고 이틀 후엔 업무개시명령 미이행 전공의 10명을 고발해 양측의 갈등은 고조됐다. 정부와 의사 단체가 대치하는 동안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왔다. 의료 공백으로 인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가 속출했고 많은 사람이 병원 진료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나아가 정부와 의사 집단 모두 파업 기간 소모적인 논란에 휩싸였다.
보건복지부가 SNS에 게시한 공공 의대 선발 과정의 ‘공공 의대 후보생은 의료 전문가 및 시민단체의 추천을 통해 뽑힌다’란 항목은 공정성 논란을 일으켰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SNS에 게시한 간호사 위로 글이 일각에선 의사와 국민을 갈라놓기 위해 올린 정치적인 글이라 주장해 그 저의에 대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의협은 SNS에 게시한 공공 의대 관련 글에서 기존 의사 집단의 선민의식이 드러난 주장을 펼쳐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이번 달 4일, 끝을 모르던 파업의 양상은 정부와 의협이 극적으로 합의하며 일단락됐다. 뒤이어 7일, 대전협 역시 파업 종료를 선언함으로써 우리나라를 뒤흔들었던 의료계 파업은 19여일 만에 종료됐다.
◆임시 봉합된 사태, 해결방안은?
극적으로 합의된 협상안은 △공공보건의료기관 개선 관련 예산 확보△의협 요구안을 바탕으로 전공의 특별법 제·개정 및 근로조건 개선 지원△코로나19 안정화까지 의대 정원 및 공공 의대 확대 논의 중단 후 협의체 구성해 원점에서 재논의 등이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의료 개혁의 초점을 의사 수가 아닌 권역별 공공병원 설립에 맞춰야 한다”며 “지방의료원 활성화를 통해 의사가 지방에서도 안정적인 의료환경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 의료계는 이번 파업이 그동안 쌓여온 의료계 문제를 드러냈다고 말한다. 김동은 계명대학교 교수는 “파업이 과열되며 의사 집단이 정부 의료 정책에 반대하는 자신의 주장을 사회 구성원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은 매우 미숙했다”며 “국민 눈높이에 맞는 소통을 실패한 의사 집단에 대해 국민이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정부 역시 전문가로부터 이번 사태에 대해 많은 질타를 받았다. 공공의료의 명분과 필요성은 정당하지만,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를 배제한 채 독단으로 처리한 행위는 대규모 의료계 반발의 원인이 됐단 지적이다. 김창엽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이하 김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공공의료 강화△지역 간 의료 불균형 해소△지역 의사 부족 문제 해결 등은 정책적으로 해결하기 상당히 어려운 것들인데 정부는 그걸 다 모아서 의사를 늘리면 된단 것으로 끌어안고 가려고 했다”며 “이를 두고 의사는 충분한 보상 없이 추가적인 희생만 요구한다고 해석하며 현재 상황에 이르렀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정책 당사자인 국민의 생각을 반영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의료 문제가 무엇인지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는 게 먼저다”며 “명확한 진단 없이 의사 수가 부족하거나 많단 이야기만 하면 논쟁은 계속된다”고 전했다. 즉 의료개혁이 △국민△정부△의사 간의 긴밀한 협의와 조정을 통해 이뤄줘야 하는 시점이다.
*첩약 : 여러 가지 약재를 섞어 지어서 약봉지에 싼 약
**전공의 : 전문의의 자격을 얻기 위하여 병원에서 일정 기간의 임상 수련을 하는 인턴과 레지던트
이상우 기자 99sangwoo@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