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국적의 작가 클레어 키건(Claire Keegan)은 1999년 자신의 첫 단편집 ‘남극’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4편의 짧은 작품만을 집필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토록 적은 수의 작품을 쓴 것은 그녀가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2009년에 나온 ‘맡겨진 소녀’도 그러한 메시지를 강조한다.
소녀는 무심하고 예의없는 아버지세 명의 형제들임신한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소설의 배경인 1981년의 아일랜드는 정치 및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당대의 풍파를 피해갈 수 없었던 그녀의 가족은 먼 친척인 킨셀라(Kinsella) 부부에게 그녀를 맡긴다. 처음 그녀는 낯선 환경에 당황한다. 킨셀라 부부는 자신의 부모와 다르게 너무나 친절하고 따뜻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밤중에 자며 침대에 실수를 했을 때도 킨셀라 부인은 그녀의 실수를 모른 척하며 “매트리스가 낡아서 이렇게 습기가 찼네! 널 여기다가 재운 건 내 잘못이야”라며 본인을 탓한다. 킨셀라 부인은 그녀에게 토스트 굽는 법채소 따는 법청소하는 법 등 사소한 것들을 천천히 그리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킨셀라 아저씨 또한 그녀와 함께 바닷가에서 놀며 그녀에게 잊지 못할 행복한 추억을 선사한다.
90페이지밖에 되지 않지만 이 소설이 주는 울림은 크다. 전반적으로 구체적인 설명과 묘사가 생략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가의 기조는 소설 속 ‘조용히 하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말에도 드러난다. 아들을 잃은 킨셀라 부인의 아픔은 ‘아주머니는 체에 밭쳐놓은 구스베리(gooseberry)를 계속 다듬지만 손을 뻗을 때마다 조금 더 느려지고 또 느려진다’는 문장를 통해 드러난다. 또한 소녀가 떠나기로 한 후 킨셀라 부인은 스웨터를 짜주겠다며 도안을 고르라고 했고 소녀가 가장 쉬운 도안을 골랐음에도 킨셀라 부인은 “너무 어려워서 까딱하다가는 완성했을 때 네가 너무 자라 있어서 입지도 못하겠어”라고 말한다. 킨셀라 부인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오로지 독자의 해석에 달렸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소녀는 떠나는 킨셀라 아저씨에게 달려가 안기고 자신을 잡으러 다가오는 아빠를 보며 “아빠” 그리고 “아빠”라고 말한다. 킨셀라 아저씨를 진정한 아빠라고 부르는 듯 하지만 이 또한 독자의 해석에 달렸다.
이 소설은 구체적인 설명을 자제하기 때문에 빈 공간이 많다. 독일의 철학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진정한 이야기하기란 설명을 자제하는 것이다”고 언급했다.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는 이에 가장 부합하는 소설이며 빈 공간을 통해 독자들이 여운을 느끼게 하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소설이다.
박진하 기자 08jinha@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