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제도는 관리 체계 측면에서 단연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엔 각종 문제점과 우려 사항이 혼재하고 있다. 보험금 납부의 형평성 문제와 매해 높은 적자를 기록하는 재정 문제가 대표적이다. 또한 지나친 강제성에 기반한 의무적 납부로 인해 건강보험 가입자로부터 각종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해당 제도는 향후 지속가능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본 기사를 통해 △건강보험의 정의와 현황△건강보험의 문제점△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건강보험의 정의와 현황
건강보험제도는 개인에 대한 의료를 개인이 아닌 국가가 사회보장의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나타난 사회보장제도이다. 해당 제도는 우연한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고액의 진료비가 한 번에 발생해 가계의 파탄을 방지하기 위해 운영된다. 구체적으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민들이 평소 납입한 보험료를 통해 관리 및 운영한다. 이후 국민들이 의료를 이용할 경우 보험급여를 제공함으로써 국민 상호 간에 위험을 분담하고 전 국민에게 의료서비스를 보장한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건강보험의 관리 운영 체계는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의해 이뤄진다. 건강보험료 납입과 지출의 재정 관리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하고 의료기관 관리 및 진료비 심사는 심평원에서 맡고 있다. 그리고 심평원은 요양기관으로부터 청구된 요양 급여비용을 심사하고 요양급여의 적정성을 평가해 공단이 지급할 비용을 확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77년부터 건강보험제도를 실시해왔다. 1977년 500명 이상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도시 근로자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하면서 출범한 건강보험제도는 1989년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제도로 확립됐다. 이러한 건강보험제도는 지난 2000년 이후 직장 및 지역의료보험이 통합되면서 단일보험 체계로 구축됐다. 일련의 발전을 통해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제도는 관리 체계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여러 문제점과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건강보험의 문제점
현재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엔 다양한 문제점이 존재한다. 첫째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 간 형평성 문제다. 건강보험 대상자는 크게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구분된다. 직장가입자에는 △사업장의 근로자 및 사용자△공무원△교직원△피부양자가 해당된다. 지역가입자에는 직장가입자와 그 피부양자를 제외한 가입자가 포함된다. 이때 피부양자는 직장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존하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소득 및 재산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기준 이하에 해당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피부양자의 대상인 △직장가입자의 직계비속(배우자의 직계비속 포함)과 그 배우자△직장가입자의 형제자매△직장가입자의 배우자△직장가입자의 직계존속(배우자의 직계존속 포함) 등이 포함된다.
보험금 납부에 있어서 직장가입자는 급여 기준으로 일정 비율의 건강보험료를 근로자와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체가 각각 50%씩 부담하게 된다. 반면 지역가입자의 경우는 재산적 가치 즉 △기타 사업소득△배당소득△세대원 수△이자소득△자동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본인이 100%의 보험료를 부담한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는 형평성에 대해 서로 다른 불만을 표출한다. 우선 직장가입자의 경우 본인들의 보험료는 원천징수로 이뤄져 소득을 감출 수 없지만 지역가입자들은 각종 편법을 동원해 실제 부담 능력에 따른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지역가입자의 경우 직장가입자들이 그들이 받는 급여기준만을 적용하고 있어 실제 직장가입자 개인의 재산적 가치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지역가입자 본인들이 납부하는 보험료가 직장가입자에 비해 과하다는 불만을 표출한다. 이처럼 직장가입자는 지역가입자에 대해 지역가입자는 직장가입자에 대해 형평성에 관한 불만이 팽배한 상황이다.
다음으로 건강보험 재정 악화 및 그에 따른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건강보험 수입 및 지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건강보험의 총지출금액은 907,837억 원이고 지난 2022년도의 총지출금액은 887,773억 원이다. 이처럼 현재 건강보험의 지출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향후 더 많은 건강보험 지출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재정 확충의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2년까지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재정적자를 기록했다. 2002년 정부는 이에 대해 재정건전화특별법을 제정했고 정부의 재정지원 확대와 재정 건전화 노력 끝에 2003년부터 한시적으로 재정 불안정 문제가 상당히 해소된 바 있다. 그러나 2005년 보장성 강화 정책을 추진해 급여비 지출이 증가하고 담뱃값 동결 등으로 인해 수입원이 감소하자 건강보험의 재정은 다시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경기 둔화로 인해 보험료 수입은 감소한 반면 신규 보장성 강화 등 여러 변수로 인해 재정 불안이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뿐만 아니라 초고령화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인구 고령화에 따른 급격한 의료 수요 증가를 감안하면 건강 보험의 재정 불균형은 더욱 만연해질 것이다.
더불어 강제성을 지닌 보험료 징수에 있어서도 각종 불만이 표출된다. 건강보험료는 조세는 아니지만 의무적인 납부가 이뤄진다. 강제 적용은 건강보험제도의 특성 중 하나다. 법률에 의한 강제가입으로 일정한 법적 요건이 충족되면 본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강제 적용의 대상이 된다. 만약 건강보험 가입 여부를 자율에 맡길 경우 건강보험이 필요한 사람들만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상대적으로 필요성이 약한 사람들은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경우 의료비를 공동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국민건강보험제도의 목적 실현이 어려워진다. 그런데 최근 들어 보험금 강제징수의 강도가 지나치게 심해지고 있다. 본인 부담 건강보험료를 법정 기일 내 납부하지 않으면 국세 체납 기준에 따라 징수 절차가 진행된다. 연체가 될 경우에는 통장 압류가 이뤄지는데 통장 압류는 개인의 경제생활에 있어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여기에는 △가난△사고△실직△질병 등 부득이한 사정으로 보험료를 연체하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일괄 적용 대상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강제징수는 지난 2011년 4대 보험 징수 통합이 이루어지며 더 혹독해졌다. 강제징수 실적이 곧 공단 경영평가와 직결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건강보험공단 내에 간부들은 그들의 연봉과 승진을 위해 건강보험료 미납부자를 적극적으로 찾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야 할 방향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우선 전산 통합을 통한 보험료 부과 체계의 형평성 제고가 필요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국민연금공단△국세청△근로복지공단△금융감독원△지방자치단체 세무과 간 전산 통합을 시행해 단일 통합 보험료 부과 체계를 적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민들의 소득△금융거래 이력△세금△자산 등에 대한 전산을 통합하고 보험금 청구 이력을 통합해서 관리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국민연금은 이전부터 국세청과의 전산 통합을 추진했다. 또 보건복지부는 2017년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 방안을 내놓으며 2022년부터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들 2단계로 구성해 시행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은 개인정보보호법과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로 인해 잘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헌 재정적 부담이란 현실적인 난관도 존재한다. 개인정보보호법과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통합 전산을 허용한다면 보험료율 및 수가 산정이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적절한 대책을 하루빨리 논의할 필요가 있다.
재정적 측면에선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관해선 우선 건강보험 재원 확충을 위해 보험료 인상과 정부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수가 조정△약제비 절감△의약재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지출 효율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한편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건강보험 재정을 기금화하자는 방안 역시 제시된 바 있다.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 또한 다양하다. 서울대학교 김진현 교수는 청년의사에서 “법적 제도적 개선을 통해 정부 지원 규모에 대한 확실한 보장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 KDI 윤희숙 연구위원(이하 윤 전 위원)은 청년의사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지원에 대한 논의보다는 건강보험 재정의 수입과 지출 간 균형을 맞추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 위원은 “정부지원금 규모와 방식을 미세 조정하는 것은 그다지 우선순위를 인정받기 어렵다”며 “건강보험 역시 여타의 모든 재정문제와 마찬가지로 수입과 지출 간의 균형이 있어야 재정이 안정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건강보험 가입자위원회를 설립하고 그 산하에 ‘가입자평의회’를 신설해 의사결정에 시민 참여를 보장하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다. 이를 통해 공단의 지역본부 중심으로 가입자평의회를 구성하고 여기에는 일반시민 및 지역 주민 대표가 참여할 수 있다. △강제 납부△건강보험 및 지역사회 현안과 관련한 정책 제안△예산 검토에 대한 개선 사항 의견 등 숙의 민주주의 방식의 건강보험 제도 운영 도입과 시도를 통해 앞서 국민건강보험의 이면에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영빈 기자 09youngbi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