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통번역학과에 입학했을 당시 난 독일어에 큰 열정을 가진 학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2학년이 되면서 내 삶에 조금 더 집중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본격적으로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 결과 성적우수 장학금을 받았고 B1 자격증도 취득했다. 이후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선발돼 지난 2025년 1년 동안 독일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했다.
처음 독일에서의 생활은 기대와 설렘과는 달리 쉽진 않았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외국에서 홀로 생활하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낯선 환경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고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브이로그(Vlog) 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독일에서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동시에 이곳에서의 추억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브이로그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독일에서의 일상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평범하게 지나갈 수도 있었던 하루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주변을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됐고 그 과정에서 작은 순간들까지 의미 있게 느껴졌다. 이전엔 스쳐 지나갔을 장면들도 어느새 기록할 가치가 있는 소중한 추억처럼 다가왔다. 브이로그는 단순한 영상 기록을 넘어 독일에서의 시간을 더 깊이 즐기게 해 준 계기가 됐다. 유튜브 채널 이름인 ‘Lealich’ 역시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Lealich는 나의 독일어 이름인 Lea에 형용사를 만드는 독일어 접미사 ‘-lich’를 붙여 만든 이름이다. 그래서 ‘레아답게’ 즉 ‘나답게’라는 뜻을 담고 있다. 독일에서의 1년을 후회 없이 나다운 방식으로 살아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정한 이름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유튜브 채널 ‘Lealich’엔 일상 영상을 비롯해 △겨울 크리스마스 마켓 △독학으로 배운 기타 연주△세계 최대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함부르크 항구 개항 축제(Hafengeburtstag)까지 다양한 순간들을 담았다. 채널을 운영한 일은 독일에서 내가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였다. 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추억을 기록해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그 기록 속에서 특히 잊지 못할 순간은 내 생일인 5월 16일이었다. △버디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친구들△함께 수업을 들으며 친해진 사람들△함부르크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한국학과 학생들까지 약 스무 명이 함부르크 슈타트 파크(Stadtpark)에 모여 내 생일을 축하해 줬다. 낮엔 따뜻한 햇살 아래 푸른 잔디밭에 앉아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고 저녁엔 영화를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친구들이 준 선물과 편지를 하나씩 열어보며 큰 고마움과 감동을 느꼈다. 그동안 힘들었던 기억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아 눈물이 나기도 했다. 평생 잊지 못할 꿈같은 하루였다.
교환학생 생활은 내게 새로운 도전이자 배움의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며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웠고 다양한 문화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소중한 추억도 쌓을 수 있었다. 돌아보면 작년 한 해는 후회 없이 보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시간이었다. 이 경험들은 앞으로의 삶에서도 큰 힘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유튜브 채널 이름인 ‘Lealich’처럼 독일에서의 1년은 내가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갔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정민(통번역·독일어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