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끊임없이 변화하는 혼돈의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가치관△기술△나아갈 방향조차 예측할 수 없다. 카오스(Chaos)는 천지 창조 이전의 무질서한 공간을 뜻한다. 블랙홀과 같이 공허하면서도 무한한 이 혼돈의 공간은 여러 생각들로 가득한 내 머릿속과 닮아있다. 난 늘 혼돈 속에서 얽히고설킨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계획이 조금만 틀어져도 불안해지고 주변의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한단 강박도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 내 못난 모습을 세심하다고 말해준 순간을 잊지 못한다.
학보에 지원한 이유는 순전히 글을 쓰고 싶어서였다. 말보다 글이 편한 나에게 있어 순수 ‘내 글’을 남기고 싶단 소망이었다. 내가 쓴 글이 신문에 실려 발자취로서 학교에 남는단 사실이 설렜다. 밤을 새워 작성해 간 소중한 제안서들이 채택되고 완성된 기사가 학교 곳곳에 배치된 모습을 보면 여전히 가슴 깊은 곳에서 뿌듯함이 올라온다.
처음 학보 활동을 시작했을 땐 기사의 카테고리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방학에도 학교에서 교육을 들어야 했고 금요일마다 진행되는 회의 및 조판으로 인해 한 달간 준비한 시간표에서 듣고 싶던 수업까지 포기해야 했다. 계획을 수정해야 한단 압박 속에서 혼란스러운 여름을 보냈다. 민폐를 끼쳐 질책받고 싶지 않단 강박으로 방중교육 교재를 꾸준히 정독하며 실수를 하지 않으려 애썼고 차츰 여러 기사를 작성해 보며 어느 순간 학보의 패턴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함께 저녁과 야식을 먹으며 동료 기자들과 쌓아온 애정과 솟아난 동지애 역시 큰 힘이 됐다.
첫 기사였던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회 기사는 적정 분량의 두 배 가까이를 준비해 부장 기자단을 고생시켰다. 그 뒤로도 늘 분량을 넘기기 일쑤였지만 첨삭과 수정을 반복하며 중요도를 구분하는 법을 천천히 익혀가고 있다. 학교 기관 및 교수님께 취재를 요청해야 했던 상황은 말하기에 재능이 없는 나에게 거대한 시련이었지만 무사히 취재를 마치고 기사를 완성했을 땐 또 하나의 한계를 극복한 듯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다. 모두에게 피해를 주기 싫단 강박으로 늘 불안한 동시에 조금씩 성장하고 있단 믿음도 생겼다. 학보 사이트를 수시로 들여다보며 내 기사와 다른 기자들의 글을 읽고 학보가 걸어온 흐름을 익히는 일도 어느새 습관이 됐다. 기사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곧바로 메모장에 적어두는 버릇도 생겼다. 목록에 완료 표시가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뿌듯함을 느끼지만 떠오르는 생각이 멈추는 날은 없을 것이기에 그 목록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도 다양한 기사를 통해 학보 속 나만의 작은 공간을 정성스럽게 가꿔가고 싶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 내 머릿속은 여전히 카오스다. 그러나 이 혼돈은 단순한 무질서가 아닌 수많은 아이디어와 가능성이 내재한 창조와 잠재력의 공간이라고 믿는다. 내 성장의 걸음들이 내 안의 카오스 속에서 무한의 세계를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어느덧 이번 해의 마지막 신문까지 달려왔다. 1111호의 뒷담 사설을 맡으며 한 해의 끝을 맞이한다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면서도 싱숭생숭하다.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찾듯 외대학보 역시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