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의 목소리로 강단과 방송을 넘나드는 김철민 교수를 만나다

등록일 2025년12월03일 14시2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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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민 우리학교(동유럽유고어과 88) 교수는 현재 △대중 강연자△방송인△우리학교 세르비아크로아티아학과(이하 세크어) 교수△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철민 교수는 발칸 지역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여러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다. 또한 특유의 유쾌한 입담과 전문성을 무기로 대중에게 발칸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이야기꾼으로도 활약하며 종횡무진하고 있다. 학문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발칸의 매력을 전파하는 김철민 교수를 만나보자.

 

 

Q1. 우리학교 세르비아크로아티아학과에 입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할 시기인 1980년대는 냉전의 기운이 감돌던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LA 올림픽이 이념 갈등으로 인해 반쪽짜리 대회로 치러졌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은 평화의 올림픽이라 불리며 화합의 장이 됐죠. 당시 국제 정세는 급변하고 있었습니다. 고르바초프(Gorbachev) 소련 서기장이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와 글라스노스트(Glasnost)** 정책을 발표하며 철의 장막이 걷히기 시작했고 동유럽 국가들의 체제 변화가 감지되던 때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며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를 맺는 북방 정책을 천명했습니다. 전 직감적으로 △동유럽△러시아△중국이 개방되면 거대한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고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이 지역을 잘 아는 전문 인력이 필요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고 미래의 비전을 선점하겠단 일념으로 우리학교 유고어과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Q2. 우리학교 재학시절 어떤 학생이었나요?

전 치열하게 사는 생계형 학생이었습니다. 원래 역사학이나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싶었으나 가정 형편상 부모님의 권유로 육군사관학교 입학시험을 봤습니다. 1차 필기시험을 합격했지만 신체검사에서 안타깝게 탈락해 진로를 틀어야 했죠. 대학에 입학해서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1학년 땐 과 수석으로 입학해 장학금을 받았고 2학년 때부턴 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해 총장 장학금을 놓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공부했습니다. 덕분에 3년 반 만에 조기 졸업을 할 수 있었죠. 하지만 공부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학과 행사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어요. 체육대회나 MT 등 모든 행사에 참여하며 동기 및 선후배들과 어울렸습니다.

 

 

Q3. 재학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인가요?

3년 반 내내 지냈던 기숙사 생활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엔 PC방이나 컴퓨터 게임이 없던 시절이라 친구들과 몸으로 부대끼며 노는 게 일상이었어요. 당구를 칠 줄 몰라 친구들이 수업을 빼먹고 당구장으로 갈 때 전 기숙사에 남아 탁구를 쳤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다져온 탁구 실력으로 친구들과 내기해 이기면 그 돈으로 학교 앞 단골 식당에서 맛있는 걸 나눠 먹곤 했죠. 그때 동기들과 땀 흘리고 웃으며 보냈던 시간이 제 대학 생활의 가장 큰 자산이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Q4. 동유럽 중에서도 특히 발칸 지역 역사 연구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 부전공으로 정치외교학을 공부했습니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매일 변하는 것이라 흥미로웠어요. 제가 대학을 다니고 군대를 다녀온 시기는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인종 청소 등 발칸 지역의 정세가 매우 복잡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국제적 이슈를 깊이 파고들고 싶어 대학원에서 국제 정치와 역사를 전공했습니다. 특히 세르비아 베오그라드(Beograd) 국립대에서 유학하며 시야를 넓혔습니다. 숲속의 대나무만 봐선 산 전체를 알 수 없듯 발칸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주변 강대국인 △로마 제국△오스만 제국△유럽 전체의 흐름을 꿰뚫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파고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유럽 국제관계사 전문가로 성장하게 됐습니다.

 

 

Q5. △벌거벗은 세계사△세계테마기행△14F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활약하셨습니다. 방송 활동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전 27살부터 방송을 시작했어요. 제 학문 분야가 특이하다 보니 학문적 희소성 때문에 찾아주신 탓도 있겠죠. 하지만 개인적으론 방송인과 시청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좋았어요. 방송 작가들이 대본을 가져오면 전 그 대본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수정하고 즉석에서 필요한 설명을 보태주기도 합니다. 근본적으로 21세기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서며 어려운 지식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흥미롭게 전달하는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고 복잡한 내용을 쉽게 풀어내 흥미를 유발한 뒤 더 깊은 지식으로 안내하는 것이 학자의 덕목이니까요. 그래서 학내에선 학술 논문을 쓰고 방송을 통해선 일반인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내용을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Q5-1. 대학 강연과 방송 활동 사이에서 일정은 어떻게 조정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방송을 많이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파급력이 높은 방송에 자주 나가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대중성 있는 방송들이거든요. 시간 배분은 솔직히 대부분 주말에 일을 하고 시간이 안 되면 밤에도 일합니다. 다만 전 인생 목표를 세우는 방식이 있어요. 시기별로 나름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며 살아가는 거죠. 후학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등 지속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전 저만의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Q6. △강연△방송△저서를 집필의 활동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업체 임원이나 공무원 대상 특강도 많이 하지만 제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박물관이나 도서관에서 일반 시민 특히 50~70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입니다. 인상적이었던 건 강의 중에 제가 쉬시라고 말씀드리면 그분들이 물을 떠다 주시기도 하고 사탕을 까서 주시는 등 나름의 방식대로 저를 챙겨주세요. 강의가 끝나고 나면 “혹시 사이트가 있나요?” 하면서 유튜브 채널을 물어보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만나 인간적 정을 느끼는 일이 훨씬 더 의미가 있더라고요.

 

 

Q7. 대중에게 꼭 전하고 싶은 발칸 지역의 핵심 가치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발칸(Balkan)’은 튀르키예어로 산맥이란 뜻입니다. 기본적으로 발칸은 동로마와 서로마의 교차 지점이자 정교회와 가톨릭의 분리 지점이고 이슬람과 유럽의 끝 선입니다. 이러한 산악 지형으로 인해 민족과 문화가 잘게 쪼개져 있고 동로마와 서로마 그리고 기독교와 이슬람이 교차하는 문명의 단층대 역할을 해왔습니다.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서도 현재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더불어 대표적인 사례로 들고 있는 지역이 바로 발칸의 보스니아죠. 이에 따라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며 복잡하고 위험한 곳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 발칸의 복잡성을 다채로운 매력으로 재정의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문명이 섞여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와 역사적 배경은 알면 알수록 신비롭습니다. 대중들이 가진 막연한 두려움을 걷어내고 그 안에 숨겨진 다채로운 이야기와 보석 같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Q8. 앞으로의 목표 및 계획이 궁금합니다.

전 기본적으로 4~5년 단위로 연구 주제를 바꿔왔어요. 4~5년 전엔 ‘유럽화’란 주제로 연구했고 최근 4~5년엔 ‘지정학’이란 주제로 연구해 왔습니다. 조만간 출간될 책의 주제가 림랜드(Rimland)*** 이론을 바탕으로 한 동유럽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에 관한 것입니다. 동유럽의 지정학적 운명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과 매우 유사해요.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자리인 림랜드에 위치한 동유럽과 한반도는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충돌하는 완충지대로서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하나의 점이 아닌 긴 선으로 보면 제국은 반드시 멸망하고 패권은 교체됩니다. 과거 명청 교체기에 조선이 선택의 기로에서 인조반정 이후 잘못된 판단으로 병자호란의 참화를 겪었듯 현재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새로운 냉전 시기에 동유럽과 한반도는 또다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동유럽의 위기가 나비효과처럼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이 거대한 연결고리를 분석하고 우리가 생존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역사적 통찰을 제시해 보고 싶습니다.

 

 

Q9. 마지막으로 우리학교 후배들과 동유럽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기본적으로 △동유럽△발칸△중부 유럽은 우리나라가 유럽에 진출하는 데 있어 철저히 중요한 전략적 교두보입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대기업이 동유럽에 생산 기지를 갖고 있어요. 기업들의 투자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용 절감과 위험을 줄이는 것이에요. 하지만 인건비가 올라가고 생산 비용이 급증하며 생산 기지가 조금씩 발칸 반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을 보면 이 추세는 더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동유럽을 단순히 여행을 가고 놀고먹기 위한 장소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우리나라의 중요한 생산 기지이자 유럽을 공략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이며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국가들이에요. 동유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은 우리학교밖에 없기에 후배들이 이런 인식을 갖고 준비한다면 미래가 탄탄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기업들이 동유럽에 진출 할 때 필요한 인력은 동유럽 전문가들이고 이러한 인재를 배출하는 곳은 우리학교뿐입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우리나라의 미래입니다.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소련의 경제사회 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혁하려 한 정책

**글라스노스트(Glasnost): 정부 활동을 공개하고 사회 전반의 표현정보 자유를 확대하려 한 개방 정책

***림랜드(Rimland): 유라시아 대륙의 주변 해안지역으로 세계 지배의 핵심 지역이라고 보는 스파이크먼(Spykman)의 지정학 이론.

 

 

이해봄 기자 11haebom@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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