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에선 외국어로 된 간판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식당에선 간판뿐만 아니라 메뉴판 역시 외국어로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이 늘어나는 현상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한글의 소중함을 잃어가고 있단 우려의 목소리를 낳는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간판의 외래어 현상△ 문제점과 원인△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나라 간판의 외래어 현상
최근 여러 가게에선 간판과 메뉴판을 다양한 외국어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간판과 메뉴판이 외국어임에 따른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해외여행의 느낌을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최근엔 발음으로도 유추가 불가한 메뉴판들이 등장해 불편을 가중하고 있다. 일례로 한 카페에서 ‘미숫가루’를 ‘M.S.G.R’로 표기하는 메뉴판이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한 식당에선 메뉴판 가격을 원화가 아닌 엔화로 적은 후 메뉴판 상단에 ‘엔화로 표기 된 가격은 0을 붙여 원화로 계산해 주세요’란 안내 문구를 배치해 논란이 됐다. 압구정엔 ‘편의점’이라는 글자의 표기를 일본 활자인 ‘가타카나(カタカナ)’ 를 활용해 일본어처럼 보이도록 배치한 간판도 생겼다. 2019년 한글문화연 대가 12개 자치구의 7,252개 간판을 대상으로 한글 표기 실태를 조사한 결과 외국어 간판은 1,704개(23.5%)였고 외국어와 한글을 병기한 간판은 1,102개 (15.2%)로 외국어를 표기한 간판은 40%에 육박했다.
이에 대해 외국인 유학생들은 곳곳에서 영어 안내가 잘 돼 있어 편한 것은 사실이나 우리나라 유학을 온 입장에선 한국어 공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아 아쉽다고 전하며 이러한 현상이 자신의 나라에선 나타나지 않기에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상의 문제점과 원인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며 외국어에 친숙하지 않은 노년층 등 소외계층은 간판 및 메뉴판을 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0년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글문화연대가 국민 11,07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외래어·외국어에 대한 국민 이해도 조사’에 따르면 총 3,500개의 외래어· 외국어 단어 중 70세 이상의 응답자 중 60% 이상이 이해한 단어는 256개로 7.3%에 불과했다. 이는 외국어 남용이 소외계층의 의사소통을 어렵게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성기지 한글학회 연구편찬실장은 “외국어가 지속적으로 남용되면 부족한 외국어 능력으로 인해 알 권리를 침해당하는 집단이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서울에서 영어로 된 간판으로 달고 빵집을 운영 중인 A씨는 한글로 표기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젊은 손님들에게 좀 더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밝히며 노년층 손님을 배제할 의도가 있었음을 드러냈다. 실제로 노년 층에게 외국어로 쓰인 간판은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을 준다. 82세인 송모 씨 는 “한글 간판이 아닌 음식점은 뭘 파는 곳인지 몰라서 들어가지를 못한다” 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이렇게 과도한 외국어로 작성된 간판과 메뉴판은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해 소외계층에게 불편함을 초래한다.
외국어 간판 현상이 나타나게 된 주요한 원인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시민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B씨는 “외국어 간판이 많은 거리를 걸으니 마치 해외여행 온 기분을 느낀다”며 외국어 간판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노유진 외식창업 연구소 관계자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음식점 등은 유행에 맞게 외국어 간판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외국어 간판이 주는 독특함이나 고급스러움 등이 고객 홍보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경험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는 젊은 세대의 특성 또한 그 원인 중 하나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이하 이 교수)는 “경험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SNS 등에 공유하는 것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의 특징이 간판에 반영됐다”며 “외국어 간판을 하나의 이미지로 인식해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등 여러 이점이 있어 사용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법적인 허점이 존재하는 것도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가게의 간판을 한글 없이 외국어로만 표기하는 것은 불법이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 법 시행령’ 제12조 2항에 따르면 ‘광고물의 문자는 한글맞춤법과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및 외래어표기법 등에 맞추어 한글로 표시해야 하며 외국문자로 표시할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현행법상 외국어로만 간판을 표기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모든 간판을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들이 나서서 전수조사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처벌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이에 대해 한 구청 관계자는 “처벌 규정이 따로 없어 단속은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법령의 규제를 받지 않는 예외사항 또한 존재한다. 옥외광고물 시행령 제 5조에 따르면 4층 이하에 설치된 5㎡ 이하 간판들은 규제를 받지 않는다. 또한 법률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애초에 상호명을 외국어로 등록한 경우라면 해당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스타벅스(Starbucks)’나 ‘아디다스(Adidas)’와 같이 영어로 상표권이 등록된 경우 영어 간판을 법적으로 걸 수 있다. 메뉴판의 경우 옥외광고물이 아니기에 의무 한글 표기 대상이 아니다. 즉 메뉴판 또한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 예외사항에 해당한다.
◆나아가야 할 방향
먼저 시민들의 인식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 즉 한글을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한글 간판 사용 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이하 이 대표)는 “외국어 사용이 세련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며 “기업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에서도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을 지양해 외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 했다. 또한 이 대표는 “언어사용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언어는 자연과 같아서 먹이사슬처럼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게 되기에 이를 그대로 두면 결국 우리말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더욱 정확한 기준을 갖춘 적극적인 법적 규제도 필요하다. 이에 대해 이 교 수는 “지자체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 또한 “외국어 간판이 격차와 배제를 발생시키는 면이 있다면 정부가 관련 제도와 법률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프랑스에선 자국어를 보호하기 위해 ‘투봉법’을 실행하고 있다. 투봉법은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자크 투봉(Jacques Toulxm)의 이름을 딴 법률로 프랑스 파리에선 모든 상품과 서비스 광고 등에 반드시 프랑스어를 사용해야한 다고 규정한 법률이다. 그렇기에 실제로 프랑스에선 외국어로 된 간판을 찾기 어렵다. 이 대표는 해당 법률을 소개하며 “우리나라 역시 외국어 간판이라도 한국어와 한글을 병기하도록 확실하게 규제하거나 한글이 더 돋보이도록 할 수 있는 정확한 기준이 생겨야 한다”고 전했다. 법적 규제에 해당하지 않는 메뉴판 역시 규제의 테두리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와 관련해 외국어 메뉴판을 규제하는 법안 역시 발의는 되고 있지만 아직 국회 심사를 통과한 사례는 없다.
정부 차원에서도 보조금과 같은 지원을 통해 한글 간판의 활용을 장려해야 한다. 수원시는 행궁동과 고등동에서 외국어 간판을 한글 간판으로 교체하는 사업자에게 최대 200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아름다운 한글간판 만들기’ 참여자를 이번 달 19일까지 모집하고 있다. 이에 대해 수원시 관계자는 “한글 간판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간판개선 보조금 지원사업을 전개했다”고 밝혔다.
세계화 사회에서 외국 문화가 우리 문화 속에 자리 잡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범람하는 외국 문화 속에서 우리 고유의 문화가 소외되지 않고 그 멋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와 개인 모두 노력할 필요가 있다.
강예원 기자 08yewo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