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과 불안정한 소득 구조가 이어지며 학자금대출은 청년 세대가 사회로 나서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부담이 되고 있다. 금리가 5년째 동결되고 각종 이자 지원책이 마련됐으나 상환 부담은 줄지 않는다. 빚을 먼저 갚기 위해 사회 진출을 미루는 현실은 청년층의 신용과 경제 활동 전반을 제약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우리 사회가 개인의 재정 관리 문제로 치부해 온 학자금대출이 청년층 전체의 구조적 위기로 드러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제도 개선과 일자리 확충 등 근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단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청년 학자금대출의 현황과 원인△학자금대출 부담의 사회적 영향△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청년 학자금대출 문제의 현황과 원인
청년층의 학자금대출 문제는 최근 몇 년간 빠르게 심화하며 구조적 위기로 번지고 있다. 지난 2020년부터 5년 연속 금리가 동결되고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이자 지원을 확대했음에도 상환 부담은 줄지 않았다. 실제로 상환 의무가 발생했지만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청년은 지난 2020년 3만 6천 명에서 지난해 5만 4천 명으로 증가했고 전반적인 대출 규모 역시 증가했다. 이번 해 1학기 학자금대출 금액은 1조 원을 돌파했으며 사립대 학생의 대출 이용률이 15.4%로 국공립대 6.7%의 두 배를 넘어섰다.
체납 현황도 심각하다. 국세청의 ‘취업 후 학자금 상환 체납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체납액은 전년 대비 11.95% 증가한 740억 원이며 납부액 대비 체납액 비중은 17.3%로 지난 2012년 이후 1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와 함께 상환 시기가 도래했음에도 소득 부족으로 상환하지 못하는 이른바 ‘실질 체납’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상환 회피가 아닌 기본 생활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청년층의 비율이 꾸준히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우리학교 재학생 A 씨는 “학자금 상환 제도를 이용하는 학생들은 비교적 낮은 금리에도 상환 자체가 어렵다”며 “취업이 늦어지면 이자가 붙기 때문에 적금이라도 깨야 하나 걱정된다”고 전했다.
특별상환유예 신청자가 지난 2020년 6,731명에서 지난해 1만 1,753명으로 약 75% 증가한 것 역시 같은 흐름에 있다. 이는 △실업△육아휴직△폐업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 최대 2년간 상환을 미룰 수 있는 제도다. 이를 찾는 청년이 늘어난 현실 자체가 청년층의 취약한 경제 여건을 방증한다.
고용 환경 또한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지난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청년이 첫 일자리를 얻기까지 평균 11.5개월이 걸린다. 이마저도 상당수가 비정규직이나 단기직에 머무르기에 초기 소득이 불안정하다. 지난해 청년층 계약직 비율은 43.1%로 1년 사이 12%P 증가했고 국가데이터처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평균 임금 격차는 약 180만 원에 달했다. 지난해 3월 국무조정실에서 발표한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은 평균적으로 소득의 약 80%를 생활비로 지출하며 이 중 절반 이상이 주거를 비롯한 고정 비용으로 나타났다.
이런 구조에선 상환 여력이 쉽게 마련되지 않아 연체와 신용 점수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는 △일상 금융서비스 이용△전세대출△카드 발급 등 기본적인 사회활동 전반에 영향을 준다. 신용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청년 연체자의 40%가 학자금대출 보유자로 확인되며 안정적 소득 기반을 갖추기 전까지 연체 위험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학자금대출 부담이 불러온 나비효과
학자금대출은 개인 부채를 넘어 청년의 생애주기 전반을 제약하며 사회적 파장을 키우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사회 진출의 전반적인 지연이다. 부채를 안고 있는 청년일수록 취업 시기를 앞당기기보단 일정한 소득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기다리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닌 첫 직장 선택 자체가 향후 상환 부담을 좌우한단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학자금대출로 인한 부채 규모가 클수록 청년들이 소득 안정성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뚜렷해지며 이로 인해 진로 선택의 폭이 축소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흐름은 직업 선택의 유연성을 떨어뜨리고 경력 전환의 기회도 제한한다. 학자금대출을 보유한 청년은 자신의 관심 분야나 새로운 도전을 선택하기보단 상환 가능한 급여 수준을 기준으로 직업을 결정하는 경향이 늘어난다. 부채를 짊어진 상태에서 △대학원 진학△전공 변경△해외 연수 등 장기적인 투자 결정이 한층 더 어려워진다.
부채가 개인의 생활을 넘어 심리적 압박과 사회적 낙인을 초래한단 점도 문제다. 일부 청년들은 상환일이 다가올 때마다 마음 한켠이 무겁다고 말한다. 우리학교 재학생 남우현(사회정외 22) 씨는 “주변 친구 중에도 상황이 안 좋아 보이는 친구가 있다”며 “학자금대출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경제적 약자로 느끼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처럼 장기간 이어지는 심리적 압박은 일상적 △사회활동△소비△직장 내 관계 유지에도 영향을 주며 정신건강에도 부담을 준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기회 격차를 확대해 사회적 양극화로 이어진단 점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자산과 소득이 충분한 학생은 부채 없이 진로를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학생은 학업 단계부터 대출에 의존하게 되고 졸업 이후에도 상환 부담에 얽매인다. 이로 인해 △결혼 및 출산 계획△주거 이동성△취업 안정성 등 생애 전반의 선택지가 차등화되며 결국 동일 세대 내부에서도 출발선의 격차가 구조적으로 고착되는 양상이 심화하고 있다.
결국 학자금대출이 남긴 나비효과는 단순한 부채 증가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청년의 경제 활동 안정성뿐 아니라 사회 진입 경로와 미래 설계 나아가 우리나라 사회의 기회 구조 전반에 깊이 얽혀 있는 문제며 지금의 부채 구조가 지속될 경우 청년층의 이동성과 혁신성이 장기적으로 둔화될 수 있단 우려도 제기된다.
◆나아가야 할 방향
현행 학자금대출 제도는 우리나라의 청년층이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에 그치고 있다. 등록금 부담은 해마다 유지되거나 높아지고 있고 청년층의 취업 안정성은 학자금대출 제도로 인한 파장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월 국회에서 열린 ‘청년 부채 악순환, 구조를 바꿔야 끊어진다’ 토론회에서 이학영 부의장은 “청년 부채는 국가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문제”라며 “학자금대출 문제는 청년 세대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징후”라고 밝혔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청년 일자리 안정성 확보다. △경기 침체로 인한 기업의 신규 채용 축소△비정규직 비율 증가△초기 급여 수준 정체 등 노동시장 전반의 문제는 학자금 상환 능력 악화로 직결된다. 현재 시행 중인 상환유예 제도는 한정된 사유에만 적용되기에 실제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다. 상환 능력 자체가 없는 시기엔 유예 제도가 적극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대상을 확대하고 유예 기간 중 이자 부담을 줄이거나 일정 부분 감면하는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청년 금융 역량 강화 역시 필수적인 과제로 제기된다. 통상적으로 대출 구조 및 상환 방식에 대한 이해도와 연체 위험 간에 반비례 관계가 성립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오늘날 많은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은 금융 지식 이해도가 낮은 실정이다.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공공기관△대학△지방자치단체가 연계해 △기초 금융 교육△신용 점수 관리법△장기 자산 전략 등을 단계적으로 안내하는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신용 불이익 완화 장치의 정비가 요구된다. 현행 제도는 단기간의 연체만으로도 신용 등급이 크게 하락해 사회초년생의 금융 접근성을 심각하게 제한한다. △갑작스러운 생활비 증가가 발생하는 시기△소득이 불안정한 시기△첫 직장을 찾는 시기 등을 고려하면 일시적 연체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되는 부분이다. 일정 기간 성실 상환 시 자동으로 점진적 신용 회복이 이뤄지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청년층에 한해 연체 등급 하락 폭을 조정하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청년층의 중장기적 경제 활동을 정상 궤도로 올려놓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학자금대출 문제는 다양한 영역이 중첩된 복합적 현상이다. 따라서 단편적 조치만으론 실질적 개선이 어렵다. △대출 제도 현실화△등록금 구조 개편△신용 회복 장치 마련△청년층 일자리 안정성 강화 등 서로 다른 영역의 정책이 조화를 이룰 때 청년들이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다. 현시점 필요한 것은 개별 부채를 줄이는 차원의 소극적 대응이 아닌 청년의 삶 전체를 바라보는 지속 가능한 정책 설계다.
이나경 기자 10leenagyeong@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