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가꾸길 사랑하는 한 사람이 있다.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Karel Čapek)는 아마추어 정원가로서 정원을 가꿔낸 열두 달의 시간을 기록했다. 책엔 새로운 생명을 키워내는 것에 대한 설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식물을 키우기 위해 △변화무쌍한 날씨에 울고 웃고△씨앗을 심고△흙을 뒤집는 그의 분투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진지하다. 어설프지만 진심 어린 태도는 생명과 존재에 대한 사유로 확장된다.
책은 계절의 흐름을 따라간다. 식물이 자라고 잠에 드는 열두 달의 시간은 변함없는 생명 순환의 이치다. 겨울을 견디지 않고선 봄을 맞을 수 없듯 생명은 싱그런 열매를 그리며 거름이 될 인고의 시간을 전제로 한다. △싹이 트지 않는 씨앗△예기치 못한 서리△예상 밖의 병충해. “열정은 반복되는 성공을 통해 기운을 얻고 새로운 실패에 의해 자극을 받는다”라는 그의 말처럼 이 모든 시행착오는 다음 계절의 거름이 된다. 머지않아 자라날 작은 새싹은 역경을 견뎌낸 승리의 결실이다. 흙속에서 버틴 작은 씨앗의 뿌리가 꽃으로 이어지는 일은 인간이 삶을 가꾸는 일과 닮아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헝가리 오스트리아 제국의 해체와 함께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했으나 사회는 새로운 정치적 격변과 불안 속에 놓였다. 시대의 혼란을 온몸으로 겪은 문인이 선택한 것은 흙과 씨앗의 세계였다. 그는 정원이란 공간에서 하루하루의 희망을 가꾸며 삶을 지탱하는 의지를 기른다. 정원가는 마냥 낭만적인 존재가 아니다. 새소리를 벗삼아 자연을 음미하는 고상한 관조자가 아니다. 그는 흙을 가꾸는 사람으로서 과정과 근원에 뿌리를 두고 비옥한 토양을 만든다. 흙속 깊이 자리잡은 생명을 기다리며 보람찬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맞이한다.
그는 싹이 트는 현상을 행진에 비유한다. 라일락(Lilac)이 경쾌한 발걸음과 함께 앞장서고 열매 맺는 나무들이 그 뒤를 따르며 봄은 웅장한 열병식처럼 전진한다. 그 다채로운 자연의 개선 행진 속에서 정원가는 방관자이면서도 지휘자다. 자연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인간은 조건을 마련하고 삶을 가꾼다. 차페크는 자연의 끝을 단절로 보지 않는다. 계절은 스러짐을 거쳐 다시 이어지고 생명은 다른 모습으로 순환한다. 반복된 봄을 맞이하며 생명의 숲을 일구는 정원가의 모습은 인간이 지닌 불굴의 의지와 열망을 보여준다. 고대하던 꽃이 피어난 순간 우린 살아 있으며 동시에 성장하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우린 각자의 방식으로 씨앗을 심고 저마다의 정원을 가꾼다. 나의 작은 정원에 대한 기쁨과 자부심으로 함께 성장한다. 그렇게 또다시 다가올 한 해를 위해 삶을 일구며 다음 계절을 기다리고 미래를 향해 전진한다.
백채린 기자 11chaeli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