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무뢰파 단편소설선> - 전쟁이 불러일으킨 허무와 절망감 -

등록일 2022년03월03일 22시3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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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며 장기간 지속됐던 제2차 세계대전이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이후 더 이상 폭격이 지속되진 않았지만 일본인들의 마음 속엔 여전히 전쟁의 혼란과 후유증이 남아있었다. 절대적으로 믿고 있던 도덕과 가치가 전쟁의 충격으로 함께 무너져 내린 와중에 작가 다자이 오사무를 필두로 ‘무뢰파’ 문학사조가 등장한다. 무뢰파 작품은 기존 사회의 △권위△윤리△질서를 부정하는 특징을 가진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나타난 허무한 감정과 자기 파괴적인 작품 세계가 짙게 드러난다. 책 ‘일본 무뢰파 단편소설선’엔 무뢰파에 속하는 △다나카 히데미쓰△다자이 오사무△다카미 준△사카구치 안고△오다 사쿠노스케의 작품이 각 두 편씩 수록됐다.  

무뢰파 소설 속 등장인물은 대개 전쟁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잃은 퇴폐적 인물들로 이뤄져있다. 다나카 히데미쓰의 작품 ‘사요나라’와 ‘여우’는 작가 본인의 생애가 반영된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 본인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주인공은 주변 사람들이 전쟁 속에서 쉽게 죽어나가는 광경을 지켜본다. 처음엔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괴로워했으나 어느새 체념하며 허무한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이 영향으로 주인공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주인공은 처자식이 있는데도 당당하게 바람을 피고 동시에 죄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죄의식을 이겨내지 못하고 타락한 자신의 윤리관에 체념하며 결국 가정이 파탄나기에 이른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비용의 아내’에 나타나는 주인공 부부도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유지하지 못한다. 주인공 삿짱의 남편 오오타니는 술값 외상을 갚지 않는 것으로 시작해 그 술집의 돈을 도둑질하기까지 한다. 삿짱은 그 돈을 대신 갚으려 했으나 금액이 모자라 술집에서 일을 도우는 것으로 삯을 치른다. 오오타니는 가끔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데리고 그 술집을 방문한다. 이처럼 무뢰파 소설에 나타나는 인물은 대부분 퇴폐적인 모습을 보인다. 또한 작중 인물들의 연인 관계 역시 정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무뢰파 소설에 나타나는 미의식 역시 기괴하고 비도덕적인 측면이 강하게 나타난다. 귀족의 딸을 위해 불상을 만드는 내용의 소설 ‘요나가 아씨와 미미오(사카구치 안고)’ 속 인물 요나가 아씨는 고운 외모와 고상한 분위기를 갖췄다고 묘사된다. 하지만 이런 외양과 달리 요나가 아씨는 심심하단 이유로 본인을 위해 불상을 만드는 미미오의 귀를 자른다. 또한 온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즐겁게 감상하는 등 가학적이고 비윤리적인 모습을 보인다. 미미오 역시 요나가 아씨를 위해 만든 불상에 △너구리△사슴△토끼의 목을 잘라 터져나온 피를 흩뿌리며 저주를 건다.    

작가들 중 상당수가 실제로 자살했거나 단명했단 점도 눈길을 끈다. 다자이 오사무는 다섯 차례의 자살 시도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다나카 히데미쓰는 그런 다자이 오사무의 무덤 앞에서 자살했다. 오다 사쿠노스케 역시 33세에 결핵으로 요절했다. 이렇듯 무뢰파 작가들이 느끼는 허무와 절망감은 작품 세계에만 드러났을 뿐 아니라 실제 삶 속에까지 드리웠다.   무뢰파 작가들의 퇴폐적인 작품 세계는 당시 일본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는 그들의 작품이 당시 일본 국민의 정서를 제대로 반영했단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청년 세대의 대다수는 실질적인 전투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휴전 국가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여전히 전쟁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 무뢰파 단편소설선’을 읽으며 전쟁의 참담함과 심각성을 곱씹어보는 계기를 갖게 되기 바란다.

 

 

장래산 기자 03raesan@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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