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관련 공청회(이하 공청회)’가 열렸다. 이는 2007년 노무현 정부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하 포차법)을 발의한지 15년 만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 심사제1소위원회가 처음으로 개최한 공청회다. 우리나라의 포차법은 2007년 제17대 국회에서 법안 발의를 시작했지만 여러 △전문가△정치인△종교인 등이 포차법 제정에 반대함에 따라 현재까지도 입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포차법과 포차법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에 대해 알아보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란
포차법은 개별법의 사각지대에서 이뤄지는 차별의 방지를 위한 법안으로 현재 관련 법안 제정이 세계적 추세로 자리 잡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의 34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와 일본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구체적인 내용의 포차법을 제정했다. 특히 유럽연합(EU)은 모든 회원국에 포차법 제정을 요구했으며 유엔(UN)은 우리나라에 포차법 제정을 10차례 권고했다. 우리나라의 포차법 제정은 과거부터 꾸준히 논의됐다. 2007년 유엔 인종 차별철폐위원회(CERD)의 권고에 따라 법무부는 차별금지법 입법을 예고했지만 보수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지자 입법이 무산됐다. 국회에선 2008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포차법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사회적 합의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단 이유로 번번이 입법에 실패했다. 지난 2월에도 문재인 우리나라 제19대 대통령이 임기 내에 포차법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임기가 끝난 현시점까지 해당 법 제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선거 후보 시절 사회적 합의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아 논란의 여지가 크단 이유로 차별금지법 정책에 대한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엔 공적 영역에서 특정 범주에 속한 사람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돼 있다. 이는 △남녀고용평등법△단기간근 로자 보호법△양성평등기본법△장애인 차별금지법처럼 △고용△성별△장애인 등 각각 구체적인 분야에서의 사안을 다루고 있다. 반면 포차법은 △나이△성적 지향성△성 정체성△출신 국가와 지역△학력 등 더 큰 범위에서 이뤄지는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한다. 다만 모든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닌 △고용△공적 서비스의 제공△교육△재화의 공급 등 공적 영역 에서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하고 제한하는 것을 금지한다. 포차법이 제정된다면 특정한 성별만 가능한 직무 외의 고용에서 성별 제한을 두거나 귀금속 업자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동성 커플에게 예물을 판매하지 않는 등의 행위를 차별로 판단해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다.
◆난항을 겪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포차법 제정의 찬성 측은 법 제정을 통해 인간이 보장받아야 할 보편적 가치인 평등을 진정으로 실현할 수 있단 입장이다. 홍성호 숙명여자대학교 법학 과 교수(이하 홍 교수)는 “우리나라 헌정 질서가 평등을 지향하고 있단 점을 확인하는 기본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유승익 신경대학교 경찰행정 학과 교수(이하 유 교수)는 “포차법은 우리나라 평등법 체계의 마지막 퍼즐 이다”며 평등 실현을 위한 포차법 제정에 긍정적인 뜻을 내비쳤다. 우리나라 헌법 11조 1항엔 모든 이의 평등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있기에 포차법 제정은 과잉 입법이란 지적도 존재한다. 실제로 해당 헌법 조항엔 ‘누 구든지 △사회적 신분△성별△종교에 의해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 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홍 교수는 이런 지적에 대해 “헌법 에서 평등의 이념을 강조하고 있으나 이를 법률 차원에서 구체화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유 교수는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미처 담지 못한 영역에서의 차별이 존재한다”며 포차법 제정의 필요성을 전했다. 포차법 제정의 반대 측은 해당 법 제정이 우리 사회에 여러 문제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제정하려는 포차법이 외국에선 유례없는 금지 내용까지 과도하게 담고 있단 여론이 존재한다. 타 국가의 포차법은 대부분 성별과 종교 등을 이유로 이뤄지는 차별만을 금지한다. 실제로 △미국△영국△유럽연합△캐나다의 차별금지법엔 고용 형태와 학력 등에 따른 차별 금지 조항이 포함돼 있지 않다. 그러나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포차법엔 성별과 종교 이외에도 고용형태와 학력 등으 로 인한 차별까지 금지하고 있다. 이에 포차법 제정에 따른 역차별이 존재 할 수 있단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이동찬 더프렌즈법률사무소 변호사 는 “기회비용 측면에서 고등학교 졸업생과 대학교 졸업생의 임금차이를 과연 차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아직 부족하다”며 실생활에 서 발생할 수 있는 역차별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포차법 제정에 따른 개인의 발언권 규제 또한 우려 사항으로 지적받는다. 현재까지 발의된 대부분의 포차법엔 ‘△광고△방송△신문기사의 △공급△ 이용△제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차별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이에 언론의 자유가 침해당할 수 있단 여론이 존재한다. 안창호 전 헌법 재판관은 “포차법에 따르면 동성애에 대한 긍정적 보도는 허용되지만 동성 애에 대한 부정적 보도는 규제의 대상이다”며 “차별의 개념 또한 추상적이 기에 처벌 시 유무죄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미 국의 포차법의 경우엔 차별적인 발언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조항이 포함되 지 않는다.
◆나아가야 할 방향
모두가 동의하는 포차법 제정을 위해 찬반 양측의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단 의견이 존재한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포차법을 둘러싼 오해를 해소하는 것이 국회의 역할이다”며 “공청회를 계기로 이런 소통의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번 공청회에선 포차법 제정에 부정적인 입 장을 지닌 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 전원이 불참했다. 또한 국민의힘은 공청 회 진술인을 추천하지 않았다. 지난달 23일 국민의힘은 “선거를 겨냥한 더불 어민주당의 일방적인 공청회 강행이다”고 비판하며 포차법 제정에 반대하 는 보수 기독교 단체와 기자회견을 주최했다.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법 제정을 계속해서 미루는 정치인의 행보를 비판하는 여론도 존재한다. 김종훈 대한성공회 신부는 “정치인은 자신의 소임인 정치적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는 게 중요하다”며 대부분의 정치인이 특정 종교 단체의 신념에 따른 압박으로 인해 법 제정에 의욕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실효성을 갖는 포차법의 마련이 필요하단 목소리도 존재한다. 일본의 경우 △국적△성 정체성△인종△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행하는 언어폭력과 편파적인 발언인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를 규제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처벌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아 헤이트 스피치 규제의 실효 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변호사는 “포차법을 제정 한다면 현행 법체계와 비교했을 때 실효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지 파악해야 한다”고 전했다. △뉴질랜드△영국△캐나다 등의 국가는 포차법이 모범적으로 운영된다고 평가받는다. 해당 국가는 ‘모든 개인은 다른 이들과 동등하게 자신의 삶을 영위할 기회를 가져야한다’는 원칙에 의거해 △국적△성적 지향성△인 종△피부색 등을 이유로 △고용△숙박△취업 등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며 동일한 가치의 업무에 따른 동등한 임금을 법적으로 보장한다. 실제로 캐나다 에선 해당 법 제정 이후 남군과 여군이 동등한 기회를 보장받아 전투 요원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또한 영국의 경우 성적 지향을 이유로 신학대학교에 지원한 동성애자 학생의 입학을 불허할 수 없게 됐다. 최영애 제8대 국가인권 위원회 위원장은 “외국에선 포차법에 대한 거센 반발이 있었음에도 끝내 법 제정에 성공했다”며 “법 제정에 반대하는 이들과 지속적으로 대화하며 접점을 찾겠다”고 전했다. 모두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포차법 제정을 위한 세부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상연 기자 04sangyeo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