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을 쫓는 성장한 나

등록일 2025년06월04일 15시3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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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원고를 끝으로 외대학보 기자로서 내 이름 아래 글이 더 이상 발간되지 않는다. 이제 익숙해진 열 두 번째 마감은 기자로서의 마무리이기도 하다. 마지막이기에 ‘뒷담하는 기자’란 이름에 걸맞게 한껏 시원하게 뒷담을 하며 글을 닫을 예정이기에 글의 첫 문장은 ‘나’로부터 시작되겠다. 지금의 난 그리도 기대했던 이상적인 모습과는 달리 여전히 거리가 멀다. 기자 생활의 끝자락에 이르며 혼자서도 원고를 고치고 기획안은 단 번에 통과받아 마감 앞에서도 초연한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 믿었다. 온갖 시행착오도 언젠간 후배들에게 대수롭지 않게 조언할 수 있는 여유로운 선배가 돼있을 줄 알았다. 결국엔 완벽한 글을 써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아직도 더딘 걸음으로 걷고 있단 것을 객관적으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완벽에 다가선 대신 애써 한 문장 한 문장 한 단어를 붙잡는 모습은 여전한 것 같다. 그런 날 바라보며 문득 어떤 완벽한 사람이 되길 바랐던 것일지 생각해봤다.

 

작년 학보 활동을 하며 가장 아쉬웠던 점은 학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충분하지 않았단 점이었다. 그만큼 기획 주제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고 모두가 기피하던 기획 기사에서 나 역시 자연스레 눈을 돌리곤 했다. 그러던 중 문득 나름 학보 기자로서 학교의 정책과 문제를 짚어내고 알리는 것이야말로 내가 이 역할을 맡은 이유이자 명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올해엔 애써 마음을 기울여 학교를 좀 더 들여다보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일까. 올해는 여섯 번의 기사 발행 중 다섯 번을 기획 기사로 채웠다. △제휴사업△총학생회△해외 교류 제도△휴게 공간△흡연 구역 등 작년의 나였다면 이러한 주제는 외면했을 것이지만 정면으로 마주하며 글을 썼다그리고 감사하게도 그 기사들이 몇 번이나 신문의 한 가운데를 장식하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우리학교 학생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학교 관계자들을 취재하면서 학교와 자연스레 가까워지게 됐다. 무심코 지나쳤던 공간과 제도들이 학생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됐고 그 속에서 내가 알리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점차 선명해졌다.

 

그동안 난 △기획안을 단번에 통과시키는 기자 △마감 앞에서도 침착하게 웃는 기자 △원고를 술술 써내려가는 기자와 같은 ‘완벽한 모습’을 꿈꾸며 스스로를 자주 자책하며 기자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학기엔 학교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기획 주제를 적극적으로 찾아내면서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완벽함’은 단지 멋진 문장이나 잘 다듬어진 기획안만을 뜻하는 것이 아녔다. 수없이 기획안을 고치고 다시 써 내려가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진심을 담는 그 과정 자체가 내가 진정으로 바라던 완벽함이었다. 이젠‘완벽함’이란 보이지 않는 길을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단 생각에 조금은 담담해진 것 같다.

 
학보에서 보낸 시간은 마치 나 자신을 끊임없이 되묻는 긴 편지와도 같았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어떤 목소리를 세상에 남기고 싶은가에 대해 매 마감과 기획마다 나는 그 질문 앞에 다시 선 채 고민했고 때론 헤매기도 했다. 직접 기획한 김지영 승무원님의 인터뷰를 마친 후 나는 비로소 그 질문에 대한 또 하나의 실마리를 얻은 듯했다. “승무원도 인생이라는 선 위의 하나의 점일 뿐”이라는 그녀의 말은 나의 기자 생활 역시 이 거대한 선 위에서 반짝였던 한 조각이라는 걸 일깨워줬다. 어쩌면 나는 그 작은 점들을 하나씩 찍어가며 나만의 궤적을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곤 했다. 학보는 내게 방향을 제시하기보단 방황할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해준 공간이었고 어떤 말과 시선이 옳고 필요한지를 단정하지 않고 더 나은 물음을 던질 수 있도록 나를 단련시켜 줬다. 혼란스러운 기획과 빈 칸 투성이 원고 속에서도 나는 삶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을 조금씩 찾아갔다. 완성된 답이 아닌 ‘쓰는 중인 문장’으로서의 내가 이젠 문득 방황이 두렵지 않게 됐다. 아직도 나는 어디로 향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무엇을 품고 살아가고 싶은지는 어렴풋이 알게 됐다. 삶 또한 한 편의 글처럼 다듬고 고치며 때론 지워 진심을 담아 써 내려가는 것임을 말이다.

최소윤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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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쓴 글의 가치 (2025-05-21 23: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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