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읽고] 격변하는 세상과 인간의 삶

등록일 2025년03월05일 16시3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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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발버둥 치며 살아간다. 이 책의 주인공 한탸(Hantya)의 삶도 그러했다. 보후밀 흐라발(Bohumil Hrabal)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그의 정수가 담긴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출간 당시 체코를 점령한 소련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담았단 이유로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나아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과 노동자의 삶에 대한 고찰을 통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고민해 보게 한다.

 

주인공 한탸는 삼십오 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의 지하실엔 폐지 더미와 맥주가 가득하다. 한탸는 압축공이지만 책을 손수 압축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됐다. 일하는 동안 폐지 더미 속에서 반짝이는 책을 찾고 온전히 음미한다. 그의 뇌는 압축기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사고로 형성돼 있다.

 

한탸는 이 삶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지만 거대한 공장과 자동 압축기의 등장은 그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고 만다. 기계를 이용해 엄청난 양의 책을 단숨에 압축해 버리는 공장 노동자들을 본 한탸는 절망에 빠진다. 종이의 감촉을 더 잘 느끼기 위해 맨손으로 책을 음미해 온 그는 장갑을 낀 노동자들을 보며 모욕감을 느꼈다. 이어 거대한 압축기가 자신의 직업과 시대에 치명타를 가할 것이고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을 직감한다. 더구나 일하는 동안 맥주를 마시는 한탸와 다르게 공장 노동자들은 우유를 마신다. 똑같은 유니폼(Uniform)을 입고 똑같은 우유를 마시는 그들의 모습은 현대 사회의 획일화를 보여준다.

 

지하실로 돌아온 한탸는 더 이상 책을 펼쳐보지 않는다. 자신보다 스무 배나 빠르게 책을 압축해 내는 기계와 공장 노동자들을 떠올리니 책을 펼쳐볼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계가 한탸를 완전히 대체하면서 소장으로부터 앞으로 백지 꾸리는 일을 하란 통보를 받는다. 새하얀 백지는 마치 더 이상 책을 펼쳐보지 않게 된 한탸와 기계처럼 일하는 공장 노동자를 상징하는 듯하다. 압축공으로서의 삶이 끝났다고 느낀 한탸는 절망에 빠지고 더는 자신의 세계에 머물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결국 신체의 일부와도 같았던 압축기와 한 몸이 되고 만다.

 

각 장의 첫 문장은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를 반복한다. 한탸는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과 격변하는 세계 속에서 자신의 실체를 자각하려 했다. 맥주를 마시며 문장을 음미하고 책을 삼키는 한탸의 모습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우린 유니폼을 입고 우유를 마시며 책을 펼쳐보지도 않고 기계로 압축해 버리는 공장 노동자와 같지 않은가? 한탸의 맥주는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고 책은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한다. 빠른 속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현대 사회에서 맥주는 불필요한 생각을 자극하며 책은 일의 효율을 저하할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기계적으로 살아간다. 기술과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기술의 발전이 더 나은 세상을 가져다줄 것이란 믿음 아래 우리 스스로 기계가 되고 있진 않은가? 한탸가 느꼈던 고독과 절망은 곧 우리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박지연 기자 10jiyeon@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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