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가 대중화되면서 지식의 생산 및 유통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식의 산실인 대학이 기존의 교육 체제와 관행을 답습하는 것은 시대적 소명을 저버리는 행위와 다름없다. 변화의 파고가 높을수록 교육의 본질은 더욱더 중요해진다. 특히 ‘교육의 본령은 무엇인가?’, ‘대학은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와 같은 물음은 대학의 존립 자체를 좌우할 만큼 중대해졌다.
앞서 제시한 네 가지 질문은 우리대학이 모색해야 할 교육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전히 새로운 표어가 아니라 그간 쌓아온 다양한 정체성을 오늘의 맥락에서 재해석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HUFS라는 네 글자는 다음과 같이 AI시대의 교육을 가늠하는 준거가 될 수 있다.
H (Human insight): AI시대에도 교육의 본령은 ‘인간의 통찰력’에 있어야 한다. AI는 방대한 정보를 쉽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지만, 정보 너머의 의미를 해석하고 그 가치를 판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교육의 초점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지식을 재구성하는 통찰력에 있어야 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탐구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사유와 판단이다.
U (Ubiquitous AI): 교육 환경은 ‘유비쿼터스 AI’를 전제로 재편되어야 한다. AI는 특정 학과나 전공에 국한된 도구가 아니라 학습 전반을 떠받치는 인프라로 기능해야 한다. 즉, 강의와 과제, 토론과 실습에 이르기까지 AI 활용은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일상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 우리대학은 AI가 몰고 온 변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AI를 교육 체계 전반에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를 능동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F (Flexible skills): 교육 내용은 ‘유연한 역량’을 중심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불확실성이 큰 시기일수록 지식을 쌓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오늘의 지식이 내일에도 유효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자신의 발전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태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다양한 AI 도구를 유연하게 활용하며, 낯선 상황에서도 창의적인 해법을 구상하는 힘은 오늘의 대학 교육이 길러야 할 핵심 역량이다.
S (Self-directed learning): 교육 방법은 ‘자기 주도적 학습’에 기초해야 한다. 앞서 제시한 세 가지 원리가 온전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배움의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대학 교육은 더 이상 일방적인 지식 전달과 암기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교수자는 자기 주도적 학습이 가능하도록 평가 방식과 학습 구조 전반을 재편해야 하며, 학습자는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탐구를 확장해 나가는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AI는 이러한 변화를 지원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학습의 폭과 깊이를 결정하는 주체는 결국 교수와 학생 자신이다.
위 네 가지 원리는 서로 분절된 것이 아니다. 인간의 통찰이라는 철학 위에 유비쿼터스 AI 환경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자기 주도적 학습을 통해 유연한 역량을 함양하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AI시대에 우리대학이 지향해야 할 교육 방향이다.
이제 HUFS는 혁신의 비전을 넘어 실천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교명 속에서 길어 올린 새로운 의미를 각자의 자리에서 실천해 보자.
·이상빈(영어통번역학과 교수, 외대학보 편집인 겸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