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보고] 비극을 외면하지 않을 용기에 대하여

등록일 2026년05월13일 18시11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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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1980년대 아일랜드(Ireland)를 배경으로 막달레나(Magdalene) 세탁소에서 벌어진 폭력을 드러낸 작품이다. 주인공 빌(Bill)은 석탄을 배달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으로 묵묵히 자신의 삶을 지켜나간다. 어느날 새벽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간 그는 창고에 방치된 소녀들과 세탁소에서 혹사당하는 여성들을 목격한다. 그 순간부터 그의 일상은 이전 같지 않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집단 폭력의 참혹성을 직접적으로 알리려 하기보단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 침묵의 구조에 주목하고 있다. 빌 역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는 인물로서 약자의 시선에서 약자를 바라본다. 그의 아내는 “걔넨 우리의 아이들이 아니야. 우린 우리가 가진 것을 지키고 사람들과 척지지 않으면 우리 딸들은 그런 일을 겪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이는 연민이 곧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현실 인식을 보여준다. 당시 사회에서 가톨릭교회의 권위는 절대적이었고 이에 맞서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일이었기에 약자가 또 다른 약자를 외면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도덕과 생존이 충돌하는 상황을 드러낸다.  

 

그러나 빌은 끝내 수녀원의 폭력을 외면하지 못한다. 그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한 가정의 선택으로 시설에 보내지지 않고 보호받으며 자랐다. 누군가의 작은 선택이 한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단 사실을 몸으로 겪은 인물이기에 수녀원에 갇힌 소녀들은 단순한 타인이 아니라 한때 자신일 수도 있었던 존재로 다가온다. 폭력에 침묵할 것인지 행동할 것인지의 갈등 앞에서 그는 결국 소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그의 선택은 거창하지 않지만 오랫동안 유지돼 온 침묵의 구조에서 자신의 소신을 지킨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영화 속의 문제는 특정 국가의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선감학원△영화숙재생원△형제복지원 등의 집단 수용시설의 존재가 뒤늦게 밝혀지며 집단 폭력의 역사가 드러난 바 있다. 이러한 시설들 또한 보호와 교화를 명분으로 운영됐지만 실제론 개인의 삶과 존엄을 침해하는 공간이었다. 최근 과거사법 개정을 통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가 시사하는 비극이 결코 다른 나라의 과거 이야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현재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문제란 점을 환기한다.  

 

이 영화가 말하는 “비극을 외면하지 않을 용기”란 거창한 영웅적 행동이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침묵이 당연해진 상황에서 끝내 폭력을 모른 척하지 않는 선택에 가깝다. 빌이 소녀를 외면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을 단순한 타인이 아니라 자신과 연결된 존재로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비극적인 상황을 보고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공감’이 그 경계를 무너뜨리는 가장 작은 시작일지도 모른단 의미를 전달한다.

 

 

강수현 기자 12soohyeon@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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