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 씨의 사망 사건으로 ‘직장 내 괴롭힘’ 법의 한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실효성 부족과 미흡한 대응이 계속해서 지적된다. △직장 내 괴롭힘 현황△‘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문제점△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직장 내 괴롭힘 현실
직장 내 괴롭힘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지칭한다.
민간공익단체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동안 직장인 3명 중 1명(35.9%)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보고됐으며 이는 전년 대비 5.4% 증가한 수치이다. 주요 괴롭힘의 유형으론 △따돌림차별△모욕과 명예훼손△부당지시△업무 외 강요△폭행폭언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괴롭힘은 정규직보다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해 비정규직의 ‘괴롭힘 심각’ 응답 비율은 정규직보다 8.1%p 높게 나타났다. 또한 고용관계가 없는 프리랜서(Freelancer)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보다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피해자 중 54%는 괴롭힘의 수준이 ‘심각하다’고 응답했으며 피해자 중 22.8%는 자해나 죽음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노동인권위원회의 조사결과 직장인 자살사유 중 1위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확인된 만큼 직장 내 괴롭힘은 근로자의 정신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중 절반 이상은 괴롭힘을 겪으면서도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고 응답했다. 반면 회사나 노동조합에 신고한 사람은 12.8%이며 고용노동부 등에 신고한 사람은 5%에 불과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문제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2019년 시행된 이후에도 직장 내 괴롭힘이 줄지 않는 이유론 법적 한계와 미흡한 제도적 대응이 지적된다. 우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보호 대상을 제한한다는 한계가 있다. 현행법상 5인 미만 사업장과 프리랜서 노동자에게 적용되지 않아 보호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근로기준법’ 제11조 제1항에서는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고 명시돼있다. MBC뉴스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박현정 전라남도청 여성인권보호관은 “국내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 수준인 약 455만 명이다”며 “전체 노동자 10명 중 3명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밝혔다.
또한 모호한 법 규정 역시 문제다. 현재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를 처벌하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법에서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으나 어느 정도 수위를 요구하는지 기준이 모호한 것이다. 그렇기에 허위과장 신고가 늘어나며 행정력이 낭비되고 ‘진짜 피해자’는 되려 보호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임이자 국민의 힘 의원은 “지난해 8월까지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사건 4만 3000여 건 중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800건이지만 실제 기소는 350건 정도에 불과하다”며 “반면 ‘법 위반 없음’이 1만 2000여 건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지난해 신고가 접수된 단계에서 ‘직장 내 괴롭힘 법 위반’으로 판정된 비율은 12.4%에 불과하여 8건 중 1건만 행정 조치가 내려진 셈이다.
다음으로 신고 이후 괴롭힘 대처 과정도 문제다. 과거엔 사용자의 괴롭힘 사건에 대해 근로감독관이 직접 조사하도록 규정돼 있었지만 변경된 후엔 사용자가 괴롭힘을 한 경우에도 사업장에서 자체 조사를 병행하는 지침으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사용자가 가해자인 경우 자체 조사를 진행할 수 있으므로 객관적 조사가 이뤄질 수 없는 구조를 만든다. 이러한 자체조사는 증거 인멸과 목격자 회유의 가능성을 높여 피해자의 보호를 더욱 어렵게 한다. 실제로 SBS 뉴스 인터뷰에 따르면 한 익명의 근로감독관은 “이러한 지침은 근로자의 패를 공개하는 상황이 되며 사용자가 어디까지 방어를 하면 되는지 알려주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실제로 사용자가 얼마나 객관적으로 조사를 진행할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위와 같은 지침 변경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항은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등 어디에도 공개돼있지 않았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고용노동부가 사건에 직접 적용하는 지침을 예고 없이 변경하고 이를 별도로 고지도 하지 않기에 근로자는 물론 사용자조차 정확한 법을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로 인해 현장에선 혼란이 가중되고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는 예측할 수 없는 절차 속에서 더욱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마지막으로 미흡한 처벌과 낮은 실효성이 문제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접수 후 시정 조치를 하지 않아 신고당한 사업장 사례가 총 884건이며 이 중 과태료가 부과된 건수는 55건으로 전체의 6.2% 수준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에 따르면 괴롭힘 피해 신고를 받은 뒤 이를 방치한 사업장에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지만 ‘조치 의무 위반’만으로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는 사실상 0건으로 전무하다. 또한 사업장이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해도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한 사업장 80%가 처벌을 받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물론 현행법상 직장 내 괴롭힘을 폭로했단 이유로 신고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지만 실제론 신고 사례 총 1360건 중 20.1% 수준인 274건만이 검찰에 송치됐다. 이는 2차 피해 역시 효과적으로 막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야 할 방향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법의 적용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해당 법안이 현재 노동 시장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정규직 뿐만 아니라 파견 근로자 등 현재 법령에선 소외된 이들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현행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MBN 뉴스 인터뷰에 따르면 김성희 고려대학교 노동문제 연구소 교수는 “비정규직에게도 적용되는 조항이고 직원 여부를 따지지 말고 그 사업장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원청 사업자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모호한 법적 기준을 분명히 정할 필요가 있다. 물론 괴롭힘이란 것 자체가 마땅한 기준은 없지만 지속성과 같은 다른 요소들을 고려해 최대한 모호성을 줄여야 한단 의견이 존재한다. 실제로 ZUM 뉴스에 따르면 김민석 고용노동부 차관은 “지속성이나 반복성과 같은 기준을 두는 것이 옳지만 관련 신고의 문턱을 높일 수도 있기에 추가와 관련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른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조항 자체가 모호해 수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월간노동법률 기사에 따르면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이하 서 연구위원)은 “‘우위성’과 ‘업무상 적정범위’라는 표현이 오히려 오해와 혼란을 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관련해 서 연구위원은 ‘업무상 적정 범위’를 ‘상식적인 범위’로 수정해 괴롭힘 여부를 판단할 때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또한 법 개정 및 법의 투명성 역시 확보돼야 한다. 사용자가 자신을 직접 조사하는 것이 아닌 고용노동부에서 조사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SBS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최정규 변호사는 “적어도 노동청에 신고한 사건 혹은 피해자가 사용자의 조사가 객관적이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하면 기존 지침대로 노동부가 직접 조사해야 한다”며 “지침을 비공개로 하는 것도 문제기에 미리 공시하고 의견을 받아 법의 취지에 맞춰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벨기에(Belgium)의 경우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대응할 시 반드시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방지조언사’를 의무적으로 활용한다. 이렇게 활용되는 방지조언사의 운용 비용은 사용자가 부담하지만 방지조언사는 관련법에 따라 독립적인 위치에서 사건을 판단하고 적절한 조치를 내린다.
또한 가해자에 대한 실효성 있고 구체적인 처벌 규정으로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호주에선 직장 내 괴롭힘은 형법상 범죄에 해당해 자해 자살 충동 등을 초래한 가해자에게 최대 징역 10년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노르웨이(Norway)의 경우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방치하면 이를 위법행위로 간주해 최대 2년의 징역 혹은 벌금을 부과한다. 이와 같은 처벌규정이 생긴다면 직장 내 괴롭힘을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직 문화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은 과거부터 수직적 상명하복의 문화에 익숙해 있고 여전히 일부 직장에선 이러한 분위기가 직장 내 괴롭힘을 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예방 교육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실제로 중부일보의 인터뷰에 따르면 김형채 경기도 노동권익센터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은 하나의 단순한 사건이 아닌 조직문화 전체에서 시작되므로 법보단 문화적인 측면이 더 중요하다”며 “기업이 자체적으로 문화나 분위기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직장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제2의 집’과도 같다. 이 공간이 견디며 버텨야 하는 전장이 돼선 안된다. 이제는 직장 내 괴롭힘을 방치하는 법과 문화를 끝내고 근로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때다.
강예원 기자 08yewo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