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느린 사람이다. 남들이 쉽게 지나가는 순간에도 나는 한참을 더 머문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런 스스로가 답답했고 때로는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했다. 사람은 각자의 속도가 있다고 확신을 주던 어머니의 말씀도 종종 나를 조여오는 족쇄처럼 느껴졌다.
학창 시절 나는 친오빠와 함께 도서관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오빠는 여러 권의 책을 빠르게 읽어냈던 반면 나는 하나의 책을 오래 읽는 편이었다. 그래서 주변에는 책에 흥미가 없는 아이로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마음에 드는 문장을 여러 번 읽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오래 생각하는 일을 좋아했다. 나는 책을 읽다가 마음에 박히는 문장이 있다면 본인이 그 문장을 찾아다녔기 때문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글을 오래 곱씹는 나의 습관은 다른 분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관심사가 생기면 얕게 좋아하는 법을 몰랐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오래도록 궁금해하고 이해할 때까지 파고들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가진 느림은 무언가를 대충 지나치지 않고 깊이 생각하면서 오래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그 느림이 분명한 단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사회가 정한 기준에 나의 속도를 맞춰야 했기에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특히 국어 지문을 읽을 때면 늘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주변 이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해 느림을 극복하기도 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한국명작 이해와 감상’이라는 교양 수업을 통해 매주 책을 읽었다. 입시를 위해 급하게 읽었던 모의고사 지문과 달리 온전히 나만의 속도로 읽는 책은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줬다. 매주 책을 읽는 과제는 설레고 기다려지는 일이었다. 불이 꺼진 기숙사 방에서 밤늦게까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 내려갔다. 블로그(Blog)에 책에 대한 생각을 기록하고 조원들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한 권의 책에서 출발한 생각을 확장해 나갔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읽고 기록하며 생각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도 깊어졌다.
나 역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이야기를 오래 바라보는 글을 쓰고 싶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박히는 문장이 있다면 본인이 그 문장을 찾아다녔기 때문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나의 글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오래 남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빠르게 읽고 지나가는 글이 아니라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고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글을 쓰고 싶다. 그러기 위해 눈앞의 이야기를 쉽게 지나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오래 고민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
이처럼 나는 글을 쓰고 싶어 외대학보에 지원했다. 외대학보는 경쟁적인 보도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와 닮아 있다. 한 걸음 늦더라도 사실을 확인하고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후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빠르게 소비되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천천히 단단하게 완성되는 글은 더 의미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