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너머의 인문학을 전하는 나영남 교수를 만나다

등록일 2026년05월27일 01시1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기사글축소 기사글확대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나영남(서양어·노어 81) 우리대학 교수(이하 나 교수)는 미네르바교양대학 교수이자 동양사 연구자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동양사에 대한 꾸준한 연구를 바탕으로 발해와 요·금 관련 여러 서적의 편저 작업에 참여한 나 교수는 이에 그치지 않고 연구를 통해 얻은 인문학적 통찰을 미네르바 교양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하고 있다. 다양한 학문적 시각을 바탕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전하는 나 교수를 만나보자.

 

 

Q1. 우리대학 노어과에 입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입학 당시에는 뚜렷한 목표 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주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진학을 준비했고 당시 성적과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노어과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소비에트(Soviet) 연방 공화국은 낯설고도 거대한 세계로 느껴졌고 그런 새로움 자체가 오히려 제게는 흥미롭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Q2. 우리대학 재학시절 어떤 학생이었나요?

대학 시절 아주 모범적인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제 학창 시절은 방황과 좌절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깊어진 열등감△남들이 원하는 모습과 사회가 인정하는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는 강박감△늘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러한 감정들은 제 삶의 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제 자신이 늘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더 깊이 고민하고 버티면서 자신을 단련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의 실패와 방황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이후 삶의 많은 시련을 견디고 극복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주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3. 재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인가요?

저는 동아리 활동이나 학생운동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마음껏 젊음을 즐기며 보내지도 못했습니다.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외무고시를 준비하며 지내던 중 축제 기간에 한 후배의 권유로 학생들이 운영하던 주점에 가게 됐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여학생을 만났고 그 인연이 결혼까지 이어져 여전히 함께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치열하고 불안했던 대학 시절이었지만 동시에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해준 시기였습니다.

 

Q4. 노어과에 진학하셨지만 이후 중국사 및 동양사 분야로 박사과정을 이어가셨습니다. 학문적 방향이 바뀌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과거 저는 역사학을 전공하고 싶었으나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표현처럼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 결과로 노어과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졸업 후에는 직장 생활과 개인사업을 하며 어느 정도 경제적 자유를 얻었으나 시간이 흘러 40대에 이르자 더 이상 그 꿈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업을 정리한 뒤 만학도로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학부 시절에 러시아어를 전공하며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던 유라시아 세계와 유목사에 대한 관심이 긴 우회 끝에 동양사 연구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Q5. 교수님의 연구를 보면 △거란△발해유민△북송△여진과의 관계 등 북방 민족과 동북아 질서에 관한 주제가 많습니다. 이 시기의 역사가 가진 매력과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핵심적인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연구하는 분야는 단순히 특정 국가의 흥망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와 문명이 충돌하고 공존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매력이 있습니다. 거란과 여진은 단순한 변방 민족이 아니라 당시 국제질서를 능동적으로 재편한 주체들이었으며 발해 유민의 이동과 적응 과정 역시 그 문화와 기억이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역사는 변화 속에서 어떻게 공존하고 살아갈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과정이며 북방사는 중심이 아닌 경계와 주변의 시선에서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Q6. 논문 뿐만 아니라 요·금 및 발해와 관련해 다양한 저술 작업에도 참여해 오셨습니다. 연구하신 바를 글로 풀어내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역사 서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단순히 사건과 연도를 정리하는 작업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갔던 인간들의 △불안△선택△생존△욕망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학술적인 글이라도 그 안에 인간에 대한 공감과 성찰이 함께 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과거의 이야기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어 사람들이 현재를 돌아보게 만들고 더 나아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 연구자의 중요한 역할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하되 지나친 단순화나 자극적인 해석으로 흐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Q7. 우리대학 미네르바 교양은 수업의 방식과 다루는 내용의 범위가 매우 폭넓은 편입니다. 교수님의 수업 방식과 가장 강조하시는 교수님만의 철학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느낀 오늘날의 교실은 침묵의 바다에 가깝습니다. 전달되는 지식들은 넘쳐나지만 질문과 사유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기보다 스스로 질문하고 사고하는 힘을 길러주는 수업을 하고자 노력합니다. 인문학은 정답을 암기하는 학문이 아니라 익숙한 세계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권력△불안△이념△욕망△정의△행복 등과 같은 문제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반복되기 때문에 학생들이 고전을 통해 오늘의 삶을 성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정답보다 좋은 질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질문하는 힘이야말로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 자신만의 언어와 시각을 만들어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Q7-1. 인문학이 소외되고 취업에 직결된 실용학문이 중시되는 오늘날 학생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갈고닦는 것이 앞으로의 삶이나 진로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시나요?

오늘날 학생들이 취업과 생존의 문제 속에서 실용적인 기술과 즉각적인 성과를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오히려 인문학적 소양이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듯 인문학은 단순 지식 습득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고 스스로 질문하는 힘을 길러주는 과정입니다. 결국 인문학은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사고의 기반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에는 단순한 정보 습득보다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은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며 스스로 판단하고 질문하는 힘을 길러주는 중요한 토대라고 생각합니다.

 

Q8. 앞으로의 연구 목표 및 계획이 궁금합니다.

저는 곧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늘 앞만 보며 치열하게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직장생활△개인사업△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한 학문 연구와 강의까지 쉼 없이 삶을 채워오며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사회적 역할과 책임 속의 삶에서 조금씩 벗어나 보다 ‘나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합니다. 앞으로는 거창한 성취보다는 마음속에 담아뒀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정리하고 실천해가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물론 역사 연구에 관한 관심까지 내려놓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전처럼 결과와 성과에 쫓기기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역사와 삶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Q9. 마지막으로 우리대학 후배들과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후배들에게 무엇보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쉽게 불안해지고 뒤처졌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사람마다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빠르게 변하는 시대일수록 ‘왜 살아가는가?’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인문학적 사고가 더욱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학 시절에는 다양한 경험과 관계 형성을 소중히 여겼으면 합니다. 학점이나 스펙보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은 경험과 배움이 삶의 자산이자 경쟁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Just do it!”이라는 말처럼 일단 부딪혀보고 경험해보길 바랍니다. 후배 여러분의 건투를 빕니다.

 

 

임재언 기자 11jaeeon@hufs.ac.kr

임재언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추천 0 비추천 0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기획 심층 국제 사회 학술

포토뉴스 더보기

기부뉴스 더보기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