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 및 감금 사건이 잇따라 보도돼 사회적 충격을 일으켰다. 캄보디아 현지에서의 한국인 대상 범죄는 지난 2020년대 초부터 꾸준히 발생해오다 지난 8월 캄보디아에서 숨진 채 발견된 20대 대학생 사건이 보도된 뒤 피해 사례 및 실종 신고가 급증했다. 범죄에 가담한 한국인과 현지 범죄조직의 실체가 드러나 심각한 국제 문제로 번진 가운데 △캄보디아 납치 사건 현황△캄보디아 납치 사건의 대응과 현실△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 캄보디아 납치 사건 현황
이번 캄보디아 납치 및 감금 사건의 피해자들은 △범죄에 연루된 지인의 알선△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 메시지△온라인 구인광고를 통한 고수익 아르바이트 제안 등으로 현지로 유인된 뒤 △감금△강제 노동△폭행과 같은 범죄에 노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범죄조직은 피해자 가족에게 몸값을 요구하거나 명의를 도용해 자금을 인출했다. 김충남 논설위원은 문화일보에서 “중국계 범죄조직들이 고수익을 미끼로 납치해 온 한국인 대학생 등을 감금해 각종 범죄에 가담시키는 구조가 주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지난 7월 17일 20대 대학생 박 모 씨가 선배 홍 모 씨의 유인으로 캄보디아로 향했다 중국계 폭력 조직이 운영하는 범죄 단지에 감금돼 고문당한 후 지난 8월 8일 캄폿주 보코산(Bokor Mountain in Kampot) 일대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또 뉴스1에 따르면 지난 7월 고액의 일자리 공고를 접하고 캄보디아로 향했다 납치돼 고문을 당한 여성이 한국에 있는 남자친구에게 몰래 보낸 연락으로 해당 피해자를 포함한 한국인 14명이 구출됐다. 이 외에도 KBS뉴스에 따르면 자유여행으로 캄보디아에 간 40대 남성이 납치를 당해 보이스피싱 조직에 팔려갔다 극적으로 구조되는 등 연령대와 경로를 구분하지 않고 피해가 발생했다.
캄보디아 현지에서 신고된 한국인 실종 사건과 범죄 연루 사례는 지난 2020년대 초에 등장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대사관은 캄보디아의 수도인 프놈펜(Phnom Penh)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2021년까진 20건 미만이었던 연간 신고 건수가 지난해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캄보디아 내에서만 온라인 사기 범죄를 조직적으로 운영하는 범죄 단지가 50여 곳에 달하며 약 20만 명이 그곳에서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고 정보위원회(이하 정보위)에 보고했다. 캄보디아 이민청 통계에 따르면 현지에 입국한 한국인은 △2021년 6,074명△2022년 6만 4,040명△2023년 17만 171명△2024년 19만 2,305명으로 급증했으며 일부 연도는 우리 정부가 제시한 입국자 수 통계보다 약 두 배 가까이 많다. 주간조선은 이런 상황에 대해 “단기 관광 및 출장 인원을 감안해도 현지에서 불법 고용이나 스캠 범죄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 외에도 국경 관리의 허술함과 공권력 부재 등 구조적인 문제가 내재해 있다. 우선 이번 사건엔 웬치(园区)*라 불리는 대규모 범죄 단지가 연루돼 있다. KBS뉴스는 지난달까지 넉 달간 범죄 단지 관련자 3,400여 명이 체포됐으나 이미 상당수가 미얀마나 라오스 등으로 근거지를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캄보디아의 주 범죄 발생 지역은 △라오스△베트남△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밀림 지대의 공권력 부재를 틈타 인신매매와 온라인 사기 조직이 활개하고 있다. 박진영 전북대 동남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국경이 1,000km에 달하고 밀림 한가운데 있어 국경 수비가 우리나라처럼 촘촘하지 않다”며 “태국 또는 미얀마 등과 접한 일부 국경은 분쟁 중이라 무국적 지대인 경우도 있어 밀입국이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납치 사건의 대응과 현실
현재 우리나라는 해당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국내외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외교부는 지난달 16일을 기점으로 △바벳시(Bavet)△캄폿주 보코산 지역△포이펫시(Poipet)에 대해 4단계 여행금지 경보를 발령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경찰청△국정원△외교부 등이 참여하는 정부 합동 대응팀이 캄보디아 현지에 파견됐다. 더불어민주당 재외국민안전대책단은 지난달 19일 캄보디아 상원에 양국 경찰이 참여하는 ‘한-캄보디아 스캠 합동 대응 태스크포스(Task Force)’ 설치를 제안했다. 이어 지난달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에서 열린 양자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훈 마넷 캄보디아 총리(이하 훈 마넷 총리)가 이번 달부터 한국인 전담 한-캄보디아 공동 태스크포스인 코리아 전담반을 가동하기로 합의했다. 훈 마넷 총리는 이 자리에서 “사안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다”며 합동 수사에 협조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합동 수사엔 여전히 복잡한 절차와 합의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회담 이전에 박성주 국가수사본부장은 캄보디아 정부를 상대로 △경찰관 추가 파견△구금된 한국인 송환△코리안 데스크** 설치 등의 협의를 시도했으나 수사권과 언어 환경 차이 등의 문제로 캄보디아 측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지난달 13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캄보디아가 동남아시아의 다른 국가에 비해 경찰 간 협조가 원활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며 수사 진행의 난항을 인정한 바 있다.
캄보디아 정부 역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인도 태평양 디펜스 포럼에 따르면 캄보디아는 이번해 상반기 동안 스캠 사기 센터를 대상으로 전국적인 합동 단속을 실시해 2,418명을 체포했다. 주 시엠립 분관에 따르면 훈 마넷 총리는 온라인 사기 근절위원회(Commission for Combatting Online Scams)를 신설해 국제 공조 확대와 외국인 범죄자에 대한 이민 통제 등 종합적 대응 전략을 추진 중이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훈 마넷 총리는 비공개 회담에서 “스캠 집중 단속으로 캄보디아 치안이 상당히 개선됐다”며 “캄보디아 경찰 당국도 즉시 조사해 범인을 체포하고 스캠과 관련된 인사들을 추적하기 위해 한국과 공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캄보디아는 현지 수사당국과 공무원 사회 전반에 부패가 만연하다. 현지 공무원이 뇌물을 받고 피해자의 정보를 범죄조직에 넘기거나 체포된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재판매되는 인신매매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중국계 캠프 운영자들과 캄보디아 경찰 간 협조 또는 공모가 있었으며 캠프 내부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가 발생했음에도 경찰은 이를 폐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 역시 초동 대응과 모니터링 체계의 미비로 비판을 받았다. JTBC에 따르면 캄보디아 주재 한국대사관은 구조를 요청한 국민에게 “캄보디아 경찰에 신고하거나 스스로 탈출하라”고 안내한 것으로 알려져 큰 논란이 일었다. 또 YTN뉴스에 따르면 지난해엔 120억 원대 로맨스 스캠 조직의 총책을 모양새가 좋지 않단 이유로 그대로 돌려보내는 등 한국대사관의 허술한 대응이 이어져 비판을 받고 있다.
◆나아가야 할 방향
현재 외교부와 우리 정부가 캄보디아 경찰청 등과 공조 수사를 진행 중이지만 캄보디아와의 협력만으론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동남아시아 국경지대에서 대규모 스캠 단지와 인신매매 사례가 연이어 보고되고 있는 만큼 인접국 간 연대 수사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일례로 유럽연합(EU)은 인신매매 관련 정보를 각국이 의무적으로 공유하며 국경 간 수사를 통합 관리하고 있다. 실제로 인터폴(Interpol)이 주도한 합동 작전(Operation Global Chain)엔 43개국이 참여해 잠재 피해자 1,194명을 구출하고 피의자 158명을 검거하는 성과를 거뒀다. 우리나라 역시 동남아시아 주요국 및 인터폴과의 실시간 정보 연계 및 합동 수사를 통해 범국가적 공조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자국민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검토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Trafficking Victims Protection Act)을 통해 △범죄조직 추적△재활△피해자 구제를 동시에 수행하는 전담 태스크포스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를 참고해 피해자 지원 및 사전 사후 대응 관리 시스템을 강화할 수 있다. 또한 국제 범죄조직의 금융망 차단 조치는 범죄 근절의 핵심 수단이다. 지난해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캄보디아 프놈펜 기반의 후이온 그룹(Huione Group)을 국제 온라인 사기 및 인신매매 조직의 핵심 금융 네트워크로 지정하고 △거래 차단△계좌 동결△암호화폐 자산 압류 등의 제재를 시행했다. 또 미국의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는 ‘USA Patriot Act 311조’에 따라 이 단체를 미국 금융 시스템에서 완전히 배제했다. 이는 다국적 범죄조직의 금융망을 차단하고 자금 흐름을 추적해 실질적인 타격을 입힌 사례로 참고할 만하다.
해외 고수익 일자리 광고나 SNS 모집 제안 등 범죄의 진입로가 쉽고 넓은 만큼 대학과 공공기관 중심의 해외취업 사기 예방 교육과 안전 신고망 홍보 병행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첫걸음이 된다. 지난달 17일 교육부는 대학생 해외 취업 사기 예방 회의를 개최했으며 20일엔 경기도 도내 70여 개 대학에서 학생 대상 국제교류와 진로 및 취업 상담 전담 부서를 중심으로 포스터와 SNS 공지 등을 통해 해외 취업 사기 유형과 여행 경보 발령 국가 방문 금지 등을 안내했다. 학교 및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예방 교육을 통해 해외 고수익 일자리 광고나 SNS 모집 제안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고 국민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국경선 너머 누군가는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젠 국제사회가 함께 경각심을 갖고 대응해야 할 때다.
*웬치(园区): 동남아 현지에서 보이스피싱 등 온라인 사기를 조직적으로 하는 범죄 단지를 뜻하는 단어로 중국계 조직 사이에서 통용되는 은어다.
**코리안 데스크(Korean Desk): 해외에서 일어나는 한인 관련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 부서.
백채린 기자 11chaeli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