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혼모노’를 읽고] ‘진짜’로서 살아가는 것

등록일 2026년09월16일 15시3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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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本物)는 일본어로 ‘진짜’ 혹은 ‘진품’을 뜻한다.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는 30년을 무당으로 살아온 문수의 삶을 통해 ‘진짜 인생’이란 무엇인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더불어 작품 속 문수의 직업을 눈에 보이지 않고 검증할 수도 없는 신을 모시고 평생을 살아가는 무당으로 설정함으로써 ‘진짜 인생’에 대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묻고 있다.

 

문수는 20대에 내림굿을 받은 중년의 남성 무당으로 두 달 전 아파트 재건축을 위한 큰 굿판을 벌였다가 실패한 뒤로 더 이상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몸주인 장수할멈은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무심하다. 그런데 어느 날 집 앞으로 이사 온 앳된 신애기는 할멈이 문수를 떠나 자신에게 왔다며 그를 비웃는다. 신이 자신을 떠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애타게 불러 보는 대목은 확신이 사라진 관계나 일에도 관성적으로 매달리게 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편으로 문수는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신애기를 지켜보며 동질감과 연민을 느낀다. 그러나 자신이 맡기로 했던 큰 굿판을 신애기가 대신 맡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분노한다. 게다가 할멈이 자신에게 무형유산이 될 기회를 주기로 했다는 신애기의 말은 그를 벼랑 끝으로 몬다. 문수가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에 차 할멈 상을 들어 올렸을 때 그것이 가볍다고 느끼는 장면은 그가 평생 섬겨온 존재의 무게가 실은 스스로 부여한 것이었다는 걸 드러낸다. 또한 이 대목에서 펼쳐지는 경력만 남은 늙은 문수와 갓 신을 받은 앳된 신애기의 대결 구도는 오늘날 경력과 재능 중 무엇이 진짜 실력을 증명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에서는 “하기야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이라는 대사가 반복된다. 처음에는 신애기가 할멈과 영통*했을 때 문수를 조롱하는 말로 쓰였으나 결말에 이르러선 이 대사의 의미도 변한다. 결말에서 문수는 신애기가 벌이는 굿판에 난입해 함께 작두를 타고 완전히 몰입해 신명을 낸다. 그는 지쳐 나가떨어진 신애기와 굿판에 모인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생각한다. ‘어떤가. 이제 당신도 알겠는가.’ 이후 소설은 다시 한번 같은 대사로 끝을 맺는다. 이번엔 문수를 향한 조롱이 아니라 문수가 스스로를 증명하는 말이다. 이 장면은 ‘진짜’란 초월적 인정을 통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몰두하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국가가 ‘진짜’를 공인 해주는 제도인 무형유산을 향한 문수의 갈망은 역설적이다. 인정받으려는 욕망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각종 스펙을 쌓아 ‘진짜 나’를 증명하려 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신이 곁에 오지 않아도 매일 제단 앞에서 기도하는 무당을 가짜라 부를 수 없듯 인생에서 ‘진짜’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몰입해 쟁취해 가는 것이 아닐까. <혼모노>가 내려주지 않는 이 질문은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물음표로 남는다. *영통(靈通): 종교나 영적으로 마음이 통한다는 뜻.

 

 

한예진 기자 13yejin@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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