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세계’에서 “죽기 딱 좋은 날씨네”란 대사가 등장하자 관객은 열광했다. 그 열광의 주인공은 박성웅 배우(법·법 96)(이하 박 배우)다. 박 배우는 △멜로△액션△코미디 등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40개가 넘는 작품에 출연한 다작 배우다. 지난해엔 제27회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에서 영화 ‘내안의 그놈’으로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연기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는 박 배우를 만나보자.
Q1. 우리학교 법학과에 진학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아버지 권유였습니다. 집안에 △변호사△의사△판·검사가 있어야 한다고 하셔서 다른 대학에 다니다 다시 수능을 봤습니다. 이후 우리학교 법학과 96학번으로 진학했어요. 군대를 갔다 온 뒤라 다른 입학생보다 늦은 나이였죠.
Q1-1. 대학생 시절 인상 깊었던 활동이 있나요?
친구들과 야구 동아리 ‘빠따스(Batters)’를 만들어 야구 시합을 다녔던 게 가장 인상 깊습니다. 당시 일본어과와 법학과의 연합 동아리예요. 1학년부터 배우의 꿈을 가져 수업엔 흥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주로 동아리 활동과 대학로에서 연극 활동을 했습니다.
Q2. 어떻게 배우로 진로를 구체화하게 됐나요?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공부를 하던 중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공 관련 직업을 가졌을 때 행복할지 의구심이 들었어요. 그렇게 일주일간 시험공부를 뒤로하고 고민하다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단 결론을 내렸죠. 물론 주변 법조인분들은 그 직업을 사랑하지만, 전 그 직업을 죽을 때까지 사랑하지 못할 것 같았어요.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생각했더니 연기란 답이 나왔습니다. 네 개의 수업에서 F 학점을 받은 대가로 꿈을 찾았죠. 그래서 2학년 때부터 맨땅에 헤딩하듯 영화계에 이름을 알리려 노력했어요.
Q2-1. 법학과 졸업사진에 △금발△선글라스△흰색 정장 차림이었던 모습이 화제가 됐는데, 비하인드가 궁금합니다.
당시 대학로에서 공연하던 중이라 금발로 졸업사진을 찍게 됐습니다. 첫 염색이었죠. 금발에 검은 정장을 입으니 어울리지 않아 흰 정장을 입었습니다. 어차피 졸업사진은 몇 명 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선글라스는 사진기사님이 써도 된다고 해서 썼습니다. 한껏 멋을 낸 사진이 이렇게 관심을 많이 받게 될 줄은 몰랐어요.
Q3. 1998년,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후 액션스쿨에 1기로 들어갔습니다. 액션스쿨은 강도 높은 훈련량으로도 유명한데요. 이 경험이 배우 활동에 어떤 영향을 줬나요?
액션 연기를 할 때 큰 도움이 됐어요. 우리나라 남자배우는 액션 연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드라마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영화 ‘무뢰한’△영화 ‘황제를 위하여’ 등에서 액션 연기를 직접 했어요. 대역 없이 액션 연기를 할 수 있단 것에 자부심이 있습니다. 목과 허리에 디스크가 생겼지만 영광의 상처로 생각해요. 후배 배우들도 성별과 관계없이 액션 연기를 할 줄 알았으면 좋겠어요.
Q4. 데뷔 후 40개가 넘는 작품에 출연해 ‘다작 배우’란 별명도 갖고 있습니다. 다작하는 원동력엔 무엇이 있을까요?
할 수 있는 연기는 다 해보겠단 마음가짐입니다. 무명이던 10년간 기회가 없어 마음껏 연기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만큼 최대한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 연기하고 싶어요. 한 해에 △드라마△뮤지컬△영화 등 4개의 작품에 동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바쁘게 살 때 힘이 나는 것 같아요. 특히 뮤지컬 ‘보디가드’는 관객과 소통하는 작품이라 더 행복했죠.
Q4-1. 연기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연기력이라 생각합니다. 작품 내 인물을 어떻게 구현해야 관객분들께 입체적으로 보일지 고민하며 연기해요.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의 경우 ‘강동철’이란 인물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지 많이 고민했죠. 그래서 대본에 쓰여있는 정보 외에 상상한 인물 정보를 덧붙여 연기하기도 했어요. 어떤 배우는 자신의 특징을 살려 배역에 접근하기도 하지만 전 배역 자체에 녹아 연기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는 배우가 됐죠.
Q4-2. △액션△멜로△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했는데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영화 ‘테이큰’처럼 액션이 주가 되는 장르나 중년 멜로를 연기하고 싶습니다. 아직 젊기에 앞으로 도전할 장르는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Q5. 영화 ‘신세계’의 악역 ‘이중구’ 연기가 인상적이라 대중은 ‘박성웅’하면 무서운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배우로서 하나의 이미지만 주목받는단 것에 속상하진 않은가요?
속상하진 않아요. 관객이 제게 관심이 있단 증거니까요. 이중구란 캐릭터가 그만큼 인상 깊었던 거겠죠. ‘무슨 행동을 해도 무섭다’고 말씀하셔도 농담인 걸 아니까 웃고 넘길 수 있습니다. 그래도 영화 ‘신세계’ 외에 많은 활동을 했으니 다른 작품에도 관심 가져주셨으면 해요.
Q6. 10년이란 짧지 않은 무명 시절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배우의 길을 놓지 않았는데, 배우란 어떤 의미인가요?
배우는 제 삶 자체입니다. 운명이나 행복이라 할 수도 있겠네요. 무명 시절엔 힘든지 잘 몰랐어요. 주변에 배우가 없다 보니 어떻게 무명 시절을 이겨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죠. 그래서 이 힘듦이 당연하다 생각했어요. 연기로 한 해에 50만 원을 벌었을 때도 크게 힘들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그 생활을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그래도 꿈을 놓지 않고 끝까지 달려온 절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그때의 피와 땀이 지금의 박성웅을 만든 거니까요.
Q7. 현재 출연한 영화 ‘대무가:한과 흥’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해나갈 예정인가요?
영화 ‘대무가:한과 흥’은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오픈 시네마’ 초청을 받은 작품입니다. 무당이란 흔치 않은 소재로 관객분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곧 다음 해 방영 예정인 드라마 ‘설강화’ 촬영에 들어갑니다. 다음 해 초엔 영화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고요. 몸이 허락할 때까진 계속 연기를 할 것 같아요.
Q8. 배우 박성웅이 아닌 ‘사람’ 박성웅으로서 갖고 있는 가치관은 무엇인가요?
가정에선 친구 같은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바깥에선 남들에게 부끄러운 일 하지 않고 내 몫은 반드시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주변 사람을 잘 챙기려 노력하고 있어요. 매니저에게 잘 대하고 있는지도 고민합니다. 매니저를 수직관계가 아닌 동료로 대하는지 스스로 물어보기도 해요. 주위 사람과 오래 공생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Q9.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세상에 정해진 것은 없어요. 겁나더라도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야 합니다. 무명 시절엔 끝없는 터널에서 전력 질주를 하는 느낌이었어요. 벽에 부딪힐 수도 있지만 이를 악물고 달리다 보면 언젠가 빛을 보게 됩니다. 실패가 두려워 편한 일만 찾으면 오히려 편안해지지 않아요. 사랑하는 일을 해야만 인생에 만족하며 살 수 있죠. 물론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만만하다면 무슨 재미겠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현지 기자 100hyunzi@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