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지상파 평일 뉴스 최초 여성 메인 앵커가 탄생했다. 2003년 KBS에 입사해 △경제부△사회부△탐사제작부 등을 두루 거친 이소정 기자다. 2006년 전 세계 언론 중 가장 먼저 멕시코 반군 ‘사파티스타’를 단독 취재해 그해 한국여기자협회 ‘올해의 여기자상’을 수상했으며, 지난해엔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받았다. 메인 앵커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의 인생과 걸어온 발자취를 알아보자.
Q1. 대학 시절, 언론인이 되기 위해 했던 활동이 있나요?
대학교 3학년 전까진 언론인이 되겠단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아 특별히 한 활동은 없어요. 기억에 남는 활동이라면 삼성에서 추진했던 국제지역학 동아리가 있습니다. 지역별 전문가 양성을 위해 부원을 선발했는데, 그때 중남미권 지원자로 합격했어요. 그래서 지역연구를 하고 발표와 세미나를 경험했죠. 당시 중남미에 관심을 갖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흔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인맥이 소중했어요.
Q2. 스페인어과를 졸업한 경험이 현재의 직업을 선택하시는 데 도움이 됐나요?
사실 스페인어는 언론과 연관이 없죠. 관련된 전공을 공부해야 언론사 시험을 볼 수 있단 생각은 편견입니다. 오히려 현직엔 다양한 전공의 사람이 있고 본인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중남미에 다녀왔던 경험과 스페인어를 한단 특수성을 강조해 입사 면접 때 어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방송국에서 스페인어로 인터뷰할 때나 해외 유명인사가 스페인어를 사용할 때 해석을 해달란 부탁을 많이 받아요. 그래서 입사 전이든 후든 본인만의 전문성을 갖는 게 유용한 것 같습니다.
Q3. 언론인의 길을 택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도 많고 남들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주변에서 기자란 직업을 많이 추천하곤 했죠. 이로 인해 막연히 기자란 꿈을 가졌는데 크면서 그 꿈을 잊고 살았습니다. 해외 연수를 갔다 복학을 위해 귀국 준비를 할 때, 아빠가 국제전화로 제게 ‘너 어릴 때부터 기자 한다고 했잖아’라고 했던 한마디가 제 머릿속을 파고들어 떠나질 않았어요. 그때부터 고민하다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고 싶단 마음에 4학년 때 무작정 뒤늦은 시작을 했습니다. 결국 기자가 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지만 후회하진 않아요.
Q3-1. 기자 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셨다고 했는데 그 과정이 어떠셨나요?
요즘 들어오는 후배들은 일찍부터 일명 ‘언론고시’를 준비합니다. 스터디도 하고 책도 미리 많이 읽는데 전 그렇지 못했어요. 그래서 일단 케이블 방송사에 입사했다가 1년 반 만에 뛰쳐나와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다시 공부를 하고 입사해 동기 여기자 중 나이가 제일 많았습니다. 당시 대다수 언론사와 달리 KBS는 공영방송이라 나이 제한이 없어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입사는 수석으로 했어요.
Q4. 2003년 KBS 입사 후, 2006년 멕시코 반란군 사파티스타를 단독 취재해 한국여기자협회로부터 올해의 여기자상을 받았는데, 이와 관련해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나요?
대학생 시절 멕시코로 해외 연수를 갔을 때 남부 밀림으로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군인들이 버스에 올라와 살벌한 분위기로 여권을 검사하고 몇몇을 끌고 갔어요. 같은 어학당을 다녔던 프랑스 사람은 그때 추방당했습니다. 알고 보니 멕시코 반군 사파티스타를 지원하는 외국인 시민단체를 단속하는 거였죠. 그 프랑스 사람이 추방당하기 전, 당시 끔찍한 현장을 찍은 사진과 조사자료를 제게 다 넘겨줬습니다. 이후 방송국에 입사해 KBS 국제부의 ‘특파원 현장보고’ 프로그램을 참여하게 됐을 때, 간직하던 자료를 바탕으로 취재에 나서게 됐습니다. 그러다 운 좋게도 반군 지도자까지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죠.
Q5. 지상파 방송국 최초의 여성 메인 앵커란 타이틀을 갖고 있는데, 당시 소감이 어떠셨나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사실 지난해엔 육아휴직을 고민했는데 갑자기 평일 저녁 9시 뉴스를 맡게 돼 당황했죠. 언론고시 공부를 할 때만 해도 연륜 있는 남자만 메인 앵커를 하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메인 앵커 자리를 제의받았을 때 의아했습니다. 이후 이 기회가 여기자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일이기도 하다고 느껴 짧은 고민 후 맡게 됐습니다.
Q5-1. 메인 앵커가 되기 전, 직장 내 ‘유리천장’을 느끼셨나요?
KBS는 비교적 육아휴직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대우도 괜찮아요. 하지만 편견은 항상 존재합니다. 특히 과거 정치계나 법조계 관련 취재현장에서 단순히 ‘어린 여자’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최근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 사회가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Q6. 메인 앵커 역할을 수행하신지 9개월 정도 지났는데 그동안 느낀 바나 지향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메인 앵커가 차려입고 나와 원고를 잘 읽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화면에 나오는 그 시간은 정말 일부일 뿐입니다. 매일 편집 회의를 하고 취재 기자의 원고를 받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죠. 시청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요. 선입견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사실만을 전달하고 판단은 시청자에게 맡기죠. 시청자가 제보한 사실과 제가 전달한 사실이 쌓여 공론의 장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둡니다.
Q7. 현재 9시 뉴스 메인 앵커로서 현시대에 언론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요즘은 유튜브와 SNS상의 미디어를 쉽게 언론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무게감과 책임감을 느끼며 정보를 판단하는 것이 언론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언론인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진실이 뭔지 냉철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해요. 수많은 정보와 가짜 뉴스의 홍수 속에서 기준이 되는 언론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8. 앞으로 언론인으로서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앵커가 물론 영광스러운 직책이고 명예도 있지만 오래 하고 싶진 않아요. 자랑스럽지만, 더 나이가 들기 전에 현장에서 발로 뛰며 취재하는 기자의 역할을 맡고 싶습니다. 보직을 맡기보단 열정을 갖고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Q9. 일과 관련된 부분이 아닌 삶의 가치관에 대해 궁금합니다.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면 좋겠어요. 쉽진 않지만 좋은 사람이 되는 여정 중에 좋은 기자가 되는 것도 있습니다. 좋은 기자란 확신이 들면, 좋은 사람에 가까워지고 있단 생각이 드니까요.
Q10. 마지막으로 언론인을 꿈꾸는 재학생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개인적인 한계를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집안이 안 좋다거나 스펙이 부족하단 것 등에 넘어지지 않았으면 해요. 그리고 사회를 바라볼 때 선을 긋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한쪽 얘기에만 치우치지 말고, 모든 정보를 열어놓고 판단하며 내공을 쌓으세요. 여러분은 모든 일에 자신 있게 도전할 수 있습니다.
김현익 기자 01hyunik@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