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밴쿠버 총영상관 영사△주제네바 대표부 참사관△주슬로바키아 대사관 대사 등을 지낸 박용규(사회· 정외 74) 동문은 37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보낸 우리나라 외교계의 살아있는 역사다. 현재 우리학교 LD 학부 초빙교수로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는 박용규 동문이 걸어온 여정을 따라 가보자.
Q1 대학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대학생일 때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당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우리학교가 시위 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학교 중 하나여서 경찰들이 정문 앞에서 우리를 통제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물 론데모만한것이아니라대학생만누릴수있는낭만 도 즐겼습니다. 지금은 본관이 들어선 공간엔 당시 미네 르바 동산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동기들끼리 자주 모여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카드 게임을 하는 등 재미 있는 학교 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땐 지금과 달리 취업에 대한 압박감이 심하지 않았기에 대학생의 낭만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2 외교관이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저는 중학교 시절부터 외국어를 좋아했습니다. 특히 우 리학교 입학 후엔 외국어를 배울 기회가 많았습니다. 언 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국 문화와 역사에도 자연스레 흥미를 느끼고 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왔습니다. 국가에 이바지할 수 있 는 직업을 갖고 싶어 국가 고시를 알아보다가 외무고시를 선택했습니다. 제가 평소에도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 고 공부도 했었으니 외무고시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 추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외교관이었던 사촌에게 외교관에 대한 정보를 들었기에 거부감 없이 진로를 정할 수 있었습니다.
Q3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외무고시를 합격하셨습니다. 2년 반만에 고시에 합격할 수 있던 비결이 있을까요?
저의 외무고시 합격 동기가 30명인데 그 중에서 절반이 재학 중일 때 합격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특출난 실력 으로 합격한 실력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외무고시 특성 상 수험생들은 외국어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저는 학교에 다니면서 기본적으로 외국어를 익힐 수 있었기 에 고시를 준비하는데 남들보다 이점이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이를바탕으로헌법과같은암기과목을더꼼 꼼하게 준비할 수 있었고 경쟁자들보다 이 분야에서 성 적을 더 잘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4 37년간의 외교관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언제였나요?
대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아셈(ASEM)’정 상회의를 두 차례나 준비한 것입니다. 첫 번째 회의는 2000년에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는데 이 회의에 아시아 와 유럽을 망라한 약 30개국 정상이 참석했습니다. 게다 가 제가 당시 준비 기획 단장이란 중책을 맡았기에 큰 책 임감을 가지고 정상회의 준비에 몰두했었습니다. 두 번 째 정상회의는 2010년에 브뤼셀에서 개최됐는데 이때 에도 저는 준비 기획 단장을 맡았습니다. 같은 회의에서 두번이나 중책을 맡는 게 쉬운일이 아닌만큼 저의 외교생활 중 잊지 못할 순간이었습니다.
슬로바키아 초대 대사를 지낸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2006년 12월에 대사로 임명됐는데 한정된 예산과 인력이란 한계 속에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슬로바키아란 낯선 나라에 처음 발걸음을 내딛다 보니 외 교활동을 진행하는 데 있어 인프라가 열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 안정된 슬로바키아 대사관을 보면 첫 주자로서 임무를 잘 수행한 것 같아 뿌듯함을 느낍니다.
Q5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직업 특성상 해외 생활을 오래하다보니 가족과 친구들 을 볼 수 없다는 외로움과 단절감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 었습니다.또한 자녀교육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자녀가 어릴 적부터 잦은 이사로 인해 정착되지 못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이사를 가는 것 도 어린이들에겐 큰 스트레스인데 해외 이주는 오죽했을까 생각하니 아직까지도 가장 미안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걱정만 한다고 해서 걱정이 사라지지 않기에 애 로 사항들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생활했습니다. 힘든 타지 생활인만큼 아내와 자녀를 이해하고 격려하 면서 서로 합을 맞추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자기계발 에 집중해 외로움과 단절감 같은 부정적인 생각에 잠식 당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마라톤을 좋아해서 해 외에서도 꾸준히 연습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타국의 외교관과 함께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는 등 성취를 이 뤄내며 의미 있는 외교관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Q6 외교관이 갖춰야 할 덕목은 뭐라고 생 각하시나요?
우선 우직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외교의 목적은 국력과 외교관의 개인적 역량의 조화를 통해 국익을 극대화하 는 것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타국과의 신뢰를 하나하 나 쌓아 올려야 하는데 저는 이러한 과정을 블록을 쌓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일례로 뉴질랜드 대사 시절엔 우리나라 문화를 알리기 위해 직접 강남 스타일 춤을 추며 뉴질랜드 현지인들과 함께 어울렸습니다. 이처럼 진정성을 가지고 다가가니 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 었고 뉴질랜드에서 수월한 외교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외교는 천재성과 기적이 아닌 철저한 노력과 땀으로 이뤄진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는 사명감입니다. 외교관은 세계의 수많은 국가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중 선진국이 아닌개발도 상국이나 빈민국에서 근무하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저는 파키스탄 대사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열악한 국가환경으로인한범죄,위생등의 문제들 때문에 파견기간 내내 고생을 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외교관의 본분을 떠올리며 임무를 수행했고 파견 생활을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낯선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친화력이 있 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중에 외교관 을그만두는이유중하나가잦은해외파견입니다.저 는 37년의 외교관 생활 중 20년을 해외에서 보냈는데, 원래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는 걸 좋아하는지라 남들보 단 타지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를 덜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Q7 현재 우리학교의 초빙교수로서 후학양 성에 힘쓰고 계시는데, 학교 후배들에게 조 언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요즘 문과가 취업 시장에서 불리한 입장에 직면하면서우리학교 학생들도 의기소침해진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문과라고 해서 취업에 불리 하다는 편견을 갖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회 곳곳엔 우리 학교출신사람이주축이돼자리잡고있습니다.제가 몸담았던 외교부는 물론 국가 기관의 요직에 동문이 포 진하고 있으며 언론계와 사기업에서도 마찬가지로 우 리학교 출신들이 빛을 내고 있습니다. 이들의 존재는 여 러분이 훗날 사회에 진출했을 때 밀고 끌어줄 수 있는 동 아줄이돼줄것입니다.대학생활을하면서진로를설 정하고 능력 개발에 힘쓴다면 여러분은 충분히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학교의 장점을 살렸으면 합니다‘. 우리학교를 보면 세계가 보인다’는 말처럼 국내가 아닌 세계에 눈을 돌렸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김우중 전 대우 그룹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는 말을 좋아합니다, 이 말처럼 자신의 능력을 믿고 보다 진취적으로 미래를 그려나가길 기원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생각 이상으로 훌륭한 인재입니다.
이상우 기자 99sangwoo@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