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최초 캐나다 온타리오주 장관 조성준을 만나다.

등록일 2019년11월24일 19시54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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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영어·영어 56) 동문은 1967년 캐나다에 이민을 간 이후 1991년 토론토 시의원을 시작으로 선거에서 8선을 했으며, 지난해엔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노인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돼 현재까지 캐나다 노인들과 장애인들의 복지를 위해 일하고 있다. 이에 그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 봤다.

Q1 우리 학교 영어과에 진학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중·고등학교 시절 영어를 가장 좋아하고 성적도 다른 과목보다 높았습니다. 또한 영어는 세계적인 언어이기에 공부해보고자 우리 학교 영어과 진학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이처럼 영어를 열심히 공부한 것이 캐나다에서 장관이 될 수 있었던 큰 요인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Q2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궁금합니다.

입학 첫 해엔 하루에 5시간 이상 자 본적이 없을 정도로 학업에 열중했고 졸업한 뒤엔 미국 대사관 문화부에 입사했습니다. 당시 대사관 입사 시험에 우리학교 졸업생 2명만 합격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사관 근무시절 당시 막 제대한 남동생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고 싶다고 통역을 부탁해 면접을 같이 보러 갔습니다. 이민관이 제게도 이민 갈 의향이 있는지 물으며 서류를 줬습니다. 결과적으로 동생은 이민 심사에서 탈락했으나 저는 합격해 캐나다로 가게 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1967년 3월 캐나다 밴쿠버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밴쿠버에서 생활하다 보니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사업을 크게 해 거부가 되거나 열심히 공부해 전문가가 돼 사회에 봉사하는 것 두 가지 중 하나라고 느꼈고 저는 공부의 길을 택했습니다. 대학원을 진학하기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해 임금을 많이 주는 광산에서 광부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저녁엔 웨이터로 밤엔 청소부로 두 가지 일을 더 했기 때문에 자정이 넘어야만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학비를 마련한 뒤 공부를 시작했지만 건강문제로 학업을 마치지 못했습니다. 한국 귀국도 생각했으나 마음을 다잡고 캐나다에서 제일 큰 도시인 토론토로 이주했습니다. 이후 토론토 종합병원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고 토론토 대학교 사회사업 대학원에 찾아가 입학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회사업을 공부한 경험이나 근무한 경험이 전혀 없었던 저는 사회사업 기관인 천주교 아동 보호소에서 1년간 일하고 오면 입학을 허락하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후 좋은 평가를 받아 2년간 장학금을 학위를 받고 졸업 후엔 토론토 교육청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일을 하며 사회사업가로 남을 돕기 위해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다시 토론토 대학교 교육대학원에 들어가 상담심리학으로 석사를 마치고 박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재일동포 지문날인 제도 반대운동을 시작하며 미국 대통령으로 출마했던 제시 잭슨 목사와 함께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박사 공부를 하는 도중 한국에서 서울대학교의 박종철 열사가 고문치사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일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저는 학업을 중단하고 북미에서 한국 민주화 운동에 집중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한인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 떠올랐고 한인 커뮤니티에서 연방국회의원으로 출마해 달라는 간청을 받아 연방 국회의원후보로 출마했습니다. 당시 저와 경합을 하게 된 후보자는 캐나다인으로 토론토 대학교 정치학박사이자 교수였고 그 분과 맞서기 위해 저도 상담심리학과 교육학 박사 학위과정을 마쳤습니다. 그 결과 연방선거에선 낙선했지만 인지도를 쌓은 덕분에 3년 후에 토론토 시의원에 당선됐습니다. 유색인종이 토론토 시의원으로 당선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후 8선을 하고 온타리오 주 정치로 무대를 옮겨 재선까지 성공한 뒤 장관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Q3 캐나다에 가셨을 때 힘드셨던 부분이 어떤 것이었나요?

첫 번째로, 인종차별이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당시 밴쿠버에서 버스를 탔을 때 내 옆자리가 비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인들은 내가 유색인종이란 이유로 옆자리에 앉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일 큰 도시였던 토론토는 그 때도 인종차별이 심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두 번째론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없었던 것이 힘들었습니다. 직장을 구하러 찾아가는 곳마다 매번 묻는 질문은 캐나다에서의 직장경험의 유무였습니다. 이에 이민 초기였던 저는 할 수 없이 비교적 수월한 접시 닦기로 첫 일을 시작했습니다.

Q4 캐나다와 우리나라의 정치문화의 다른 점이 있을까요?
대한민국은 대통령 중심제고 캐나다는 의원내각제란 것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캐나다에선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되고 국정을 운영합니다. 캐나다인들은 평소엔 조용한 편이지만 선거 땐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힙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권교체를 이루는 방법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만 대한민국에선 캐나다에 비해 집회가 많고 그 규모가 비교적 큰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집회의 인상적인 점은 대규모 집회를 평화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시민들이 집회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함으로 그들의 목소리에 대통령도 귀를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정치 문화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두 나라 모두 민주정치와 자유를 사랑하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며 인권을 존중한다는 면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Q5 우리나라에선 노인복지부 장관이란 직책이 아직은 조금 생소한데요. 노인복지부가 생기게 된 배경과 하는 일을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 장관명은 노인 및 장애인 복지부 장관(Minster for seniors and Accessibility)입니다. 2년 전만 해도 노인 부처와 장애인 부처가 각기 다른 부처였으나 지난해 6월 총선 후에 보수당이 정권을 수립하면서 두 개의 부처를 통합했습니다. 이에 처음 장관이 임명됐고 제가 초대 장관직을 맡게 됐습니다. 현재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엔 약 1,400만 명의 주민이 사는데 그 중 250만 명이 노인이고 230만 명이 장애인입니다. 이 사람들의 가족까지 포함하면 온타리오 주의 과반을 훨씬 넘는 인구를 돌봐야 하는 아주 막중한 책임을 우리 부처가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부처가 하는 일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노인이 양질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장애인들을 위해 더 나은 복지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것입니다.

Q6 노인 복지부 장관으로 일을 하시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또는 보람이 있었던 일이 있을까요?

이 곳 캐나다에서 장관직은 크게 존경받는 직책인 것 같습니다. 어느 종합대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대학의 총장님이 대학교 정문까지 나와 환대해 주셨습니다. 또한 예술대학을 방문했을 땐 그 대학의 학장님이 학교 정문까지 나와 환송해 주셨습니다. 장관이 된 다음부턴 훌륭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고 캐나다인이란 정체성을 가지며 자부심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리고 저는 최초의 한인 캐나다 장관이라는데 자부심이 있기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항상 한국계 캐나다 사람이란 점을 강조합니다.

Q7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10년 전부터 캐나다 토론토 시는 세계청소년지도자그룹(Global Youth Leaders)을 창설해 △리더십 훈련△자원봉사△워크샵 등을 통해 한국계고등학생들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현재 고등학교를 졸업해 하버드 대학을 비롯한 일류대학에 입학한 학생도 있을 만큼 많은 학생이 성공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장관직을 수행하느라 다소 바쁘지만 차후에 대학생 그룹과 초등학생 그룹도 양성할 계획입니다. 저는 이들이 캐나다를 포함한 지구촌에서 무한히 뻗어 나가며 능력 있는 미래의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것입니다.

Q8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이나 말씀이 있으실까요?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해 크게 성공하고 그 성공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나누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창조주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무한한 재능을 주셨음을 믿길 바랍니다. 그리고 계속 분투해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늘 큰 꿈을 가지고 전 세계로 진출하는 사람들이 되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우리학교 학생이란 것에 감사하며 강한 자부심을 갖기 바랍니다.

*재일동포 지문날인 제도: 일본에서 1952년 시행된 외국인 등록법에 따라 모든 외국인에 강제한 제도로 모든 외국인을 잠재적 범죄인으로 인식하는 반인권적 제도이다.


이서미 기자 99seomi@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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