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입사△IT 회사 창업△수학 관련 도서 출판△수포자 전문 강사로 자리매김한 우리학교 재학생이 있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수학과 졸업 후 우리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에 재학 중인 신정수(일반·철학 17) 씨다. 이공계 계열에서 한 획을 그은 그가 지난해 우리학교 대학원 철학과에 입학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 철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게 된 것이며, 그의 새로운 목표는 무엇일까?
Q1. 대학교 졸업 후 IT 업계에 종사하셨는데 어떤 일을 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1984년 봄 LG전자(당시 금성사)의 소프트웨어 개발실에 입사했습니다. 이듬해에는 당시 IT 벤처였던 가인시스템이라는 작은 회사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됐고, 1991년 대학 동기와 ‘인성정보’라는 IT 회사를 공동창업했습니다. 회사의 이름은 제가 지었는데, 어질 인(仁), 별 성(星)을 써서 IT업계의 ‘어진 별’이 되자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일반 PC에서 IBM 단말기 역할을 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했는데 다행히 이 제품은 이 회사 초기 성장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이 회사는 네트워크 전문 회사로 거의 매해 100%씩 꾸준히 성장했고 1999년에는 코스닥 상장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40대까지 주로 IT 관련 비즈니스에서 일했는데 이 무렵 업계 후배들의 창업에 대한 투자도 꽤나 하곤 했습니다.
Q2. IT 업 외에도 수학 교육과 관련된 일들을 많이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2000년 이후 국내 IT 산업이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사업에 대한 흥미가 줄어들었습니다. 마침 제 나이도 오십이 되면서 비즈니스 자체보다도 무언가 의미 있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대학 전공이 수학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학 교육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잘못된 교육 방식의 피해자인 이 땅의 수많은 수학 포기자(이하 수포자)들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개념과 원리에 충실한 올바른 수학교육법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일단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학원가에서 몇 해간 수학 강사 생활을 한 후, 탈북인 자녀 학교(한겨레 중·고등학교), 교회 등에서 어려운 여건의 학생들을 위해 재능기부 강의를 했습니다. 최근에는 네이버 커넥트재단의 요청과 지원에 따라 수포자 출신 일반인들을 위한 미적분 강좌, 삼각함수 강좌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초·중·고 통합 수학 책인 <수학의 맥점>이란 책을 써서 출간한 적도 있습니다. 수학을 오랫동안 학교에서 배웠지만 막상 다시 공부하려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잖아요.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은 대부분 시험 대비 문제 유형 학습용이거든요. 그래서 한 권으로 꼭 알아야 할 초·중·고 수학의 핵심 원리들을 열심히 정리했던 책을 출판했습니다.
Q3.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학생들의 수학을 지도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이 참 불쌍하다는 거예요. 지나친 경쟁에 내몰려 오묘한 수학의 이치를 공부하는 대신 꼬인 문제 풀기에만 급급해요. 많고 어려운 문제들을 실수 없이, 재빨리 풀어내는 연습만 하다 보니 수학의 나무만 보고 숲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죠. 그렇기에 수포자도 많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부턴가 수포자 출신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수학을 가르쳐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중학생 수학 수준이더라도 미적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몇 강만으로도 잘 이해시킬 자신이 있었거든요. 마침 네이버 커넥트재단에서 저를 수포자 전문 선생으로 봐주신 덕에 이런 강의 기회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번 봄엔 한 기업에서 회장을 포함한 임직원 열 명 정도를 대상으로 90분간 네 차례에 걸쳐 중학 수학 기초부터 대학 교양 수학(Calculus)까지 강의했는데 좋은 반향이 있었습니다.
수포자 학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학교나 입시에서 평가 방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객관식이나 단답형의 꼬인 문제들만 출제하는 방식을 기본 원리 이해나 서술력을 점검할 수 있도록 변경해야 합니다. 물론 이 의견에 변별력이나 평가의 공정성을 반대 명분으로 내세우겠지만 이 부분에 개혁과 인적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해결은 어렵다고 봅니다.
Q4. 다양한 일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 무엇인가요?
40대에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고 IT 비즈니스를 할 때 인성정보를 코스닥에 상장시키는 순간이 매우 감격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내가 30대에 열심히 고군분투한 일들이 고생스럽긴 했어도 헛되진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도 생겼죠. 또 학생들을 가르칠 때 기대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낼 때가 가장 보람 있었어요. 이를테면 인터넷으로 SAT와 AP-Calculus를 가르쳤던 수포자 유학생 중 한 명은 홍콩대학교에 합격한 후 한 달간 미술학원까지 다니며 제 초상화를 그려 액자에 넣어 선물로 준 적도 있어요. 제겐 참 감동적인 추억이죠.
Q5. 수학은 이공계열이고 철학은 인문계열인데, 전공인 수학과가 아닌 철학과로 대학원을 진학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학교 대학원 철학과에 진학하시게 된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사실 학문에 있어서 이공계와 인문계 간의 구분은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수학은 철학과 매우 통하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깊이와 함께 명확한 논증적 사고가 요구된다는 측면에서 유사성이 큰 것 같습니다. 오래 전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학자가 곧 철학자인 경우가 많지 않았나요? 저는 대학 시절에 수학을 전공하면서도 ‘수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수학기초론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수리 철학자였던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을 가장 존경하는 학자로 추앙하기도 했고요. 대학원에 와서 분석철학 공부를 하다 보니 마치 전공 수학을 다시 공부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새삼 철학이라는 학문의 추상성과 치밀성에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몇 해 전 여러 대학원의 철학과를 검색해보다가 임일환 교수님의 연구 분야에 관심이 생겨 이메일로 여러 가지 질문을 드린 후부터 우리학교 철학과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때 교수님께서 자상하신 안내와 함께 일단 대학원 공부가 자기에게 맞는지 청강부터 해보라고 권유를 하시더군요. 하지만 막상 용기를 내 이를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가 않더군요. 그러다가 지난해 예순이 되면서 이제 더는 미룰 게 아니라 일단 사고부터 치고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웃음). 그래서 지난해 여름에 입학하게 됐는데 철학 공부가 이렇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줄 알았더라면 진작 시작할 걸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Q6. 철학과 석·박사 과정을 마치신 후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무슨 특별한 목표를 가지고 대학원에 들어온 건 아닙니다. 사실 학위에 대한 집착도 없고요. 다만 이쪽 공부를 새로이 시작했으니 학위를 받아도 부끄럽지 않을 수준의 전문가적 실력을 쌓고 싶다는 의욕은 있습니다. 또 좋은 여건 속에서 여러 도반들과 함께 열심히 탐구하고 토의하는 생활을 즐기다 보면 철학 분야에서 점차 내공이 쌓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나중에 철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좋은 책 몇 권을 세상에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이은지 기자 97eun_g@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