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시위, 원인과 앞으로의 방향은?

등록일 2020년11월10일 13시02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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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해 7월, 태국에서 학생단체와 반정부 시민단체 등을 주축으로 한 시위가 시작됐다. 약 10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대는 총리 퇴진과 왕실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태국 정부는 물대포를 동원하는 등 강력 진압하며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정환승 우리학교 태국어통번역학과 교수를 만나 태국 시위의 원인과 전망을 알아봤다.


Q1. 태국 반정부 시위가 3개월간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위의 원인과 배경은 무엇인가요?

이번 시위는 쁘라윳 짠오차 총리(이하 쁘라윳 총리)의 실정과 억압 정치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는 지난해 총선에서 승리해 연임하며 반정부 시위를 금지하고, 집회·결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어요. 민간인 사찰과 반정부 인사 탄압도 시행했습니다.
또한 현재 태국은 경기침체를 겪고 있어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경제 사정이 더욱 악화돼 국민의 불만이 고조된 겁니다. 이번 해 태국의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 6~8%로 전망되고 800만 명의 실업자가 나올 거란 예상도 있어요. 이런 이유가 더해져 젊은 계층은 더욱 쁘라윳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Q1-1. 쁘라윳 총리는 2016년 개헌을 통해 군부 통치를 현실화했고 이를 바탕으로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당시 개헌이 가능했던 배경은 무엇입니까?

2014년 5월 쁘라윳 총리가 이른바 ‘소프트 쿠데타’를 통해 집권할 때,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하 푸미폰 국왕)의 윤허가 있었습니다. 직전 총리인 잉락 친나왓 총리(이하 잉락 총리)는 당시 탁씬 친나왓 전 총리(이하 탁씬 총리)를 포함한 정치권 인사의 사면을 무리하게 추진해 국민의 강한 저항을 받고 있었어요. 그러던 잉락 총리가 권력을 남용했단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바로 실각하게 됐죠.
2016년 쁘라윳 정권은 군부의 정치개입을 허용한단 내용의 개헌을 추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토론회도 열리지 않았어요. 또한 쁘라윳 정권은 새 헌법안에 반대하는 사람을 억압하고 120명의 반대파 인사를 체포했습니다.
국민들은 잉락 총리와 탁씬 총리를 거치며 의회 독재와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꼈어요. 잉락 총리와 탁씬 총리 정권 인사들을 몰아내고자 찬성표를 던졌죠. 결국 61.35%의 찬성으로 2016년 개헌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지난 정부 세력을 몰아내는 데 몰두한 나머지 국민들은 군부의 정치개입 허용 가능성을 등한시했습니다.

Q1-2. 지난 2월, 태국 헌법재판소는 야당 ‘퓨쳐포워드당’을 강제 해산시켰습니다. 이에 대한 법적 근거가 있나요?

2018년 3월, 신인 정치인 타나턴 쯩룽르앙낏(이하 타나턴 의원)은 퓨쳐포워드당을 창당했습니다. 퓨처포워드당은 지난해 3월 총선에서 500석 가운데 81석을 얻어 원내 제3당으로 등장했어요. 창당 당시 타나턴 의원이 선거자금으로 191만 바트(약 72억 5천만원)를 조달했는데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개인 후원금으로 여겨 선거법 위반 판결을 내렸습니다. 태국 선거법상 개인 후원금은 1인당 10만 바트(약 380만원)를 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어요. 퓨쳐포워드당은 선거자금을 적법 절차에 따라 대출했으며 사용내역도 투명하게 공개했다고 주장합니다. 태국 선거법엔 대출에 관한 명확한 법 조항이 없어요. 이를 쁘라윳 총리가 악용해 퓨처포워드당을 강제 해산시킨 셈이죠.
사실 이전에도 사법부에 의한 총선 무효나 정당 해산 같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왕실과 군부 세력은 자신들이 원하는 구도로 태국을 이끌어나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모두 사법부가 왕실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있기에 가능한 일이죠.
Q2. 2006년 9월 19일, 탁씬 전 총리가 군부 쿠데타로 쫓겨난 이래 빈번한 쿠데타가 이뤄졌습니다. 태국에서 유독 쿠데타가 많이 일어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태국은 1932년 ‘입헌혁명’을 통해 입헌군주제를 채택했습니다. 이는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한 태국의 민주정권이 시작됐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민주정권이 무능하거나 부패한 경우 군부가 이를 명분 삼아 정권을 장악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쿠데타를 기반으로 한 군부는 국왕의 윤허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했어요.
푸미폰 국왕은 70년 통치 기간 동안 선정을 베풀며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국왕이 군부의 쿠데타를 윤허하면 국민들은 이를 받아들였어요. 중재자 역할을 한 푸미폰 국왕 덕에 태국이 점진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단 평가가 있습니다. 이런 국왕의 역할은 역설적으로 군부 쿠데타가 자주 일어날 수 있던 원인이란 분석도 가능합니다.

Q3. 시위대는 왕실 및 정부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나요?

시위대가 초기에 요구한 것은 △반정부 인사 탄압 중지△의회 해산△총선 실시△헌법 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군부정권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자 직설적인 요구를 하기 시작했어요. 최근엔 △군주제 개혁△현행 헌법 개정△쁘라윳 총리 퇴진을 주장합니다. 지금까지 태국 왕실에 대한 비판은 절대적 금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군주제 개혁을 들고나온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충격적이라 할 수 있어요.

Q3-1. 시위대가 정부에 요구하는 사안 중 하나는 왕실모독죄 폐지입니다. 왕실모독죄는 무엇이며 시위대가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태국은 헌법 6조와 형법 112조를 통해 왕실을 법으로 보호합니다. 형법 112조에 따르면 왕실 모독 시 최대 15년까지 형벌에 처해질 수 있어요. 2016년 푸미폰 국왕이 서거하고 왓치라롱껀 국왕이 즉위했는데, 그는 젊어서부터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며 군부 정권 배후에 있는 부패한 왕실을 개혁해야 한단 주장이 나왔습니다. 이에 시위대는 △국왕의 쿠데타 승인과 정치개입 금지△왕실 자산에 대한 감독△왕실모독죄 폐지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Q4. 시위대는 영화 ‘헝거게임’에 등장했던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행진하고 있습니다. 여기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세 손가락 경례는 △우애△자유△평등을 상징합니다. 순수와 열정을 가진 젊은 세대가 주장하는 내용이 함축적으로 담긴 것이죠. 태국의 기성세대는 온정주의적 국왕의 치세를 바탕으로 △군부△국왕△민주 세력 간 균형을 맞추며 형성된 태국식 민주주의를 유지했어요. 그러나 젊은 세대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더 이상 부덕한 왕과 군부의 결탁에 비롯한 불공정 세상에서 자유를 억압당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Q5. 이번 시위엔 학생들이 주축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2010년에 이뤄진 반정부 시위와는 다른 양상인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번 시위는 독재와 반독재 세력의 대립이었던 과거 태국의 정치적 시위와 상당히 다릅니다. 2012년, 태국 음료 회사 ‘레드불’ 창업주 손자가 음주사고를 내 경찰이 사망한 사건이 있어요. 당시 가해자는 음주와 마약 복용 혐의가 있었는데 보석금을 내고 석방됐죠. 이후 그는 8년간 해외 도피 생활을 했고 지난 7월 해당 사건이 불기소 처분됐습니다. 이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여론이 들끓었어요. 정부가 여론에 떠밀려 재조사해 보니 △검사△정부 고위 관료△변호사 등이 사건을 조작했단 사실이 드러났죠. 이 사건에 그동안 억압된 자유와 경기 침체 등으로 불안한 국민의 심경이 더해져 시위가 다른 양상을 띠게 됐습니다.

Q6. 이번 시위에 대해 정부와 왕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시위 지도부와 핵심인사 상당수가 검거됐지만, 시위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SNS 등을 이용해 ‘우리 모두가 지도부다’란 구호를 내세우고 있어요. 이에 정부는 한발 물러서며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야당에서도 총리 퇴진을 요구하며 쁘라윳 총리가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습니다.
왕실은 현실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군주제 개혁에 반발한 일부 시민 집회에 왓치라롱껀 국왕이 나와 격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큰 영향을 끼치진 않았습니다.

Q6-1. 태국 시위대는 지난달 24일까지 총리 퇴진을 요구했지만, 25일 총리는 퇴진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총리 집권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요?

쁘라윳 총리는 과거보다 지지 폭이 현저히 줄었어요. 왕실에 대한 충성을 담보로 얻을 수 있는 국왕의 지지나 지원도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공권력으로 시위를 진압하기에도 부담이 너무 큽니다. 시위가 성공한다면 의회 해산을 통해 총선을 실시해야 하죠. 그렇게 되면 재집권할 가능성이 굉장히 낮습니다. 쁘라윳 총리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Q7. 이번 시위는 태국 사회 내 어떤 의미이며,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게 예상하시나요?

이번 시위의 가장 큰 특징은 ‘젊은 세대 주도’와 ‘군주제 개혁 주장’입니다. 군주 개혁에 대해선 세대 간 의견 차이가 극명히 엇갈려 세대갈등이 심화될 수 있습니다.
2016년 서거한 푸미폰 국왕은 온정·법왕 주의적 국왕으로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국민을 따뜻하게 보살폈습니다. 태국의 기성세대는 이런 성군 치세에서 살아온 것에 자부심이 있죠. 그러나 젊은 세대 생각은 달라요. 그들은 기성세대가 누렸던 온정주의적 국왕의 통치 아래 살아온 시간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현재 군주는 푸미폰 국왕과 같은 어진 군주가 아니죠. 그래서 군주제의 변화를 외치는 겁니다.
앞으로 태국 사회는 젊은 세대가 구심점이 돼 변화하고 발전할 것이라고 봅니다. 태국의 기성세대가 자신의 추억 속에 젊은 세대의 미래를 가두는 우를 범하질 않길 바랍니다



김연수 기자 100yeonsue@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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