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하 류 의원)이 딥페이크 소지 처벌법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딥페이크 범죄 영상물을 소지하는 것 자체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지난해부터 우리나라에선 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한 성범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에 △사회에 존재하는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해당 범죄의 처벌 기준△딥페이크 범죄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알아보자.
◆ 대두된 딥페이크 악용 논란
딥페이크란 ‘딥러닝’(Deep learning)과 ‘가짜’(fake)의 합성어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실존하는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 부위를 합성한 영상편집물이다. 딥페이크 기술은 고인이 된 가수의 영상을 재현하거나 일반인의 신원을 보호하는 용도로 활용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3월 독일의 온라인 사이트 ‘마이헤리티지’에서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우리나라의 순국열사의 모습을 복원한 자료가 화제에 올랐다. 해당 서비스를 통해 △안중근 의사△유관순 열사△윤봉길 의사의 모습이 생생히 복원됐다. 그러나 최근 해당 기술을 범죄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증가했다. 네덜란드 사이버 보안 연구 회사가 발표한 ‘딥트레이스’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유통된 딥페이크 영상은 총 1만 4,698건이다. 그중 98%의 영상이 포르노와 같은 음란물로 소비됐다. 또한 해당 영상의 25%가 우리나라 여성 연예인을 대상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딥페이크 성범죄의 피해자는 상대적으로 얼굴이 많이 알려진 연예인인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피해자의 신원이 일반인인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6월,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성착취 동영상을 제작·유포한 ‘n번방’ 사건이다. 해당 사건의 피의자들은 자신들의 성적 취향에 따라 ‘여교사방’, ‘여중생방’ 등을 개설해 여성 지인을 음란물에 합성·유포하는 악질적 범행을 저질렀다. 또한 SNS를 통해 의뢰를 받아 지인의 얼굴을 합성하거나 음성을 위조한 일명 ‘지인능욕’ 사례도 딥페이크 성범죄가 일반인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딥페이크 기술의 접근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과거엔 딥페이크 기술의 사용 문턱이 높아 일반인이 쉽게 다룰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엔 관련 소프트웨어가 유통돼 포토샵을 다룰 수 있는 정도면 딥페이크 제작이 가능해졌다. 몇몇 딥페이크 제작 프로그램은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되기도 해 딥페이크 악용 범죄 확산에 불을 지폈다. 이흥규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는 “조금의 시간을 투자한다면 누구든지 딥페이크 합성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미성년자가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일 또한 증가했다. 부산경찰청이 지난해 12월부터 이번 해 4월까지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을 집중 단속한 결과, 검거된 피의자 중 약 70%가 10대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음란물에 동창 얼굴을 합성하거나 학교 선생님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이번 해 방송통신위원회의 사이버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불법 합성물 제작·유포 등 디지털 성범죄를 목격한 경험이 있는 학생 가운데 16%가 이에 대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최종상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사이버범죄수사과장은 “불법 합성물 제작 및 유포 행위는 명백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인 만큼 미성년자도 예외 없이 경찰 수사 대상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변화를 모색하는 딥페이크 범죄 처벌 기준
지금까지 우리나라엔 딥페이크 범죄를 처벌하는 별도의 규정이 없어 관련 피의자에게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이나 음란물 유포에 관한 책임밖에 묻지 못했다. 그마저도 명예훼손의 경우 입증이 어려워 범죄 사실이 적발되더라도 음란물 유포죄를 적용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에 피의자 처벌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해 6월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되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인 ‘딥페이크 처벌법’이 시행됐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 2항에 의해 딥페이크 영상 제작과 유포를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또한 제작을 의뢰한 자도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해당 개정안은 딥페이크 제작 및 유포자만 처벌할 뿐 처벌 대상에 소비자가 배제됐단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지난달 17일, 류 의원은 딥페이크 처벌법을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허위영상물 등을 △구입△소지△시청△저장한 자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을 포함해 허위 영상물 소지자 처벌이 가능해졌다. 법안이 통과되면 편집물 또는 복제물을 △구입△소지△시청△저장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해당 발의에서 류 의원은 “현재 일반 불법 촬영물을 구입 및 소지한 자는 처벌할 수 있으나 딥페이크 성착취물 이용자에 대한 처벌 규정은 존재하지 않아 형평성에 어긋난단 국민의 목소리가 존재했다”며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이뤄지는 모든 디지털 성범죄를 처벌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다”고 밝혔다.
◆ 딥페이크 범죄의 최소화를 위해선
지난 4월 22일,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 1년을 맞아 정책간담회를 개최했다. 해당 간담회에선 변화하는 디지털 성범죄 양상에 따른 수사와 정책적 보완이 뒤따라야 한단 제언이 나왔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불법촬영물 등 유통 방지 책임자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사업자의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경찰청△방송심의위원회△방통위 등 관계기관과 협력을 강화하겠단 입장이다. 또한 청년 대상 교육 확대 등 국민의 인식 전환을 위한 범부처 협력 의지를 보였다.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선 강화된 처벌 규정과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안착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전문가와 현장의 의견을 청취하고 관련 부처와 협력해 국민의 안전한 일상을 보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발전하는 딥페이크 악용 사례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정책적 보완은 물론 보다 고도화된 딥페이크 탐지 기술이 필수적이다. 현재 딥페이크는 인물의 △대사△입술의 움직임△표정을 합성해 정교히 표현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이에 지난해 12월, 이화여자대학교 사이버보안전공 재학생들이 딥페이크 자동탐지 시스템을 개발해 같은 달 14일, ‘2020년 스타트업 스토리텔링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들의 딥페이크 자동탐지 시스템은 경쟁 서비스 대비 2배 빠른 탐지 속도와 완벽에 가까운 탐지 성공률을 보였다. 이 같은 다양한 사회적·기술적 대책에도 불구하고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범죄 행위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선한 의도를 가진 기술 활용을 통해 사회 내 딥페이크 성범죄를 최소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김민주 기자 01minju@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