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한국항공대학교(이하 항공대)에서 학생들이 단체채팅방(이하 단톡방)을 통해 성희롱을 했단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하지만 해당 사안이 현행법상 디지털 성범죄에 포함되지 않아 성범죄로서의 법적 처벌이 불가능하단 사실이 밝혀졌다. 사건 발생 이후 학생사회에선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어떤 절차를 거쳐 어느 수위의 처벌을 받게 될지에 대한 관심이 쏠렸다. 이에 △디지털 성범죄 성립 조건△교내 성범죄 인식 및 대처△나아가야 할 방안을 알아보자. ◆불분명한 디지털 성범죄 성립 조건 최근 단톡방 성희롱 사례가 증가하며 일각에선 디지털 성범죄 인식 재고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조사한 디지털 성범죄 관련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성범죄 및 디지털 성범죄 심각성 인지 여부’에 대한 질문에 96%의 응답자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지난해 3월 n번방 사건이 알려진 이후 정부는 사이버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을 디지털 성범죄란 명칭으로 통일했다. n번방 사건은 해외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텔레그램 특성상 사용자의 기록이 남지 않아 n번방 사건이라 불리게 됐다. n번방 사건의 가해자는 단톡방을 만들어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의 성 착취 영상을 공유했고 비슷한 형태의 채팅방이 급속도로 증가해 피해는 더욱 심각해졌다. 가해자는 낮은 형량을 선고받았고 이를 알게 된 국민은 분노했다. 이에 국회에선 디지털 성범죄 형량을 높이는 내용의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됐다. 그러나 n번방 방지법에도 빈틈은 존재했다. 해당 법안은 △불법촬영△성적 촬영물 유포△음란물 소비에 대한 처벌만 포함됐을 뿐 단톡방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이하 단톡방 성희롱)은 포함되지 않았다. 현재 단톡방 성희롱은 성폭력처벌법이 아닌 형사법상 모욕죄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로 처벌받는다. 피해자가 사건이 벌어진 단톡방에 속해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가해자의 성희롱이 피해자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단 것이다. 이에 모든 범위의 성범죄 처벌이 가능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단 목소리도 들린다. 지난해 11월 청주교육대학교(이하 청주교대) 본관과 체육관엔 단톡방 성희롱을 고발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해당 대자보에 따르면 5명의 남학생이 단톡방에서 여학생의 사진을 올리고 돈을 걸며 외모 비하를 하거나 성적 대상화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청주교대 측은 자체 진상 조사를 통해 가해자를 중징계 처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2차 피해와 인권 문제를 이유로 징계 수위는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항공대에서도 학생들이 단톡방 내에서 성희롱을 했단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가해자들은 ‘누드사진을 확보해 협박하는 방법밖에 없다’, ‘첫 경험에 임신해 버리면 어떡하지’ 등 일면식도 없는 학생과 교수를 대상으로 성희롱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단톡방 성희롱이 현행법상 성범죄로 처벌되지 않아 가해자를 성범죄로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학교의 징계뿐이다. 이마저도 학교마다 다른 징계 수위로 인해 혼란을 빚어냈다. ◆우리학교 재학생의 디지털 성범죄 인식은? 지난 1일 우리학교 재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엔 항공대 단톡방 성희롱 사건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서 몇몇 학생은 가해자가 잘못된 성인식을 가졌다며 비판했다. 그러나 일부 학생은 해당 사안이 물리적인 피해를 주지 않아 범죄로 인식하긴 어렵다며 엄정한 처벌은 불필요하단 의견을 비쳤다. 이에 외대학보는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우리학교 재학생의 디지털 성범죄 인식 조사를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어떤 말과 상황이 사이버 범죄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 중 54.6%는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등을 포함한 SNS 이용 중 얼굴에 관한 평가도 성범죄에 해당한다’고 답했다. 이어 40.9%는 ‘SNS 이용 중 노골적 신체에 관한 표현만이 성범죄에 해당한다’고 답했다. 반면 응답자의 4.5%는 ‘SNS 이용 중 발생한 얼굴에 관한 평가와 노골적 신체에 관한 표현 모두 성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2017년 우리학교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영어대학 성희롱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조위)가 ‘우리학교 영어대학 성희롱 사건 진상위원회’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글에 따르면 해당 사건은 우리학교 페이스북 페이지 ‘한국외대 대나무숲’에 익명으로 게시돼 공론화됐다. 진조위에 제보된 성희롱 사건의 가해자는 총 37명으로 이 중 직접적인 성희롱 발언을 한 가해자는 12명이다. 이들은 오프라인 및 단톡방 성희롱을 일삼아 △성행위를 부추기는 발언△피해 학생의 성적 대상화 발언△피해 학생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발언 등 피해자에게 성적으로 모욕적인 발언을 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일부 가해자는 제32대 영어대학운영위원회의 요청으로 공개 사과문을 작성했고 나머지 가해자들은 교내 성상담센터에서 수차례 성폭력예방교육을 이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해 가을 미투 운동이 국내에 퍼지며 우리학교에도 성평등센터가 개설됐다. 우리학교 서울캠퍼스(이하 설캠) 성평등센터 교직원 A 씨에 따르면 “당시 학내 규정도 미비해 사건 처리 과정에 미진한 점이 있었다”며 “해당 사건은 신고인의 요청으로 조사가 중단됐고 피신고인은 재발 방지 특별교육을 이수했던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다”고 전했다. ◆나아가야 할 방안 이번 해 우리학교 성평등센터에선 ‘디지털성폭력의 이해와 예방’이란 소책자를 제작했다. 하지만 해당 책자엔 단톡방 성희롱에 관한 교육 내용이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해 n번방 사건이 큰 관심을 받아 n번방 사건 위주의 교육 내용을 다뤘기 때문이다. A 씨는 “이번 해 온라인 교육에 단톡방 성희롱에 관한 내용을 추가하는 건 어렵다”며 “보완책으로 대면교육 시 단톡방 성희롱에 대한 교육 내용을 포함한 소책자를 배부하겠다”고 전했다. 외대학보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내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 처벌 수위’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36.4%가 ‘투명한 조사 과정 공개 및 가해자의 공개적 사과’와 ‘퇴학과 정학 등 강력한 가해자 처벌’을 원한다고 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22.7%는 ‘피해자 상담 및 의료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우리학교에선 사건 발생 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공간분리△수업분리△접근금지 등의 부가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피해자가 심신을 회복해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찰과 회복을 위한 상담 등을 지원하고 있다. A 씨는 “일부 피해자의 경우 SNS상에서 가해자의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러나 해당 조치는 가해자의 인권 침해와 양심의 자유에 반해 명예훼손 등의 법률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모든 성범죄 사건의 처리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조사 과정이 밝혀지면 피해자의 신상이 공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주변인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될 경우 2차 가해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학교 성평등센터와 양캠퍼스 총학생회(이하 총학)는 디지털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성폭력센터에선 학내 구성원을 대상으로 매해 폭력예방교육을 실시하지만 학내구성원의 인원이 많아 부득이하게 온라인 교육으로 진행한다. 더불어 교직원에겐 방학에, 신입생에겐 학기 초 별도의 대면 교육을 진행한다. 2018년 설캠 제 52대 총학 ‘푸름’은 ‘학생 사회 내 반성폭력 자치규약의 토대’란 규정을 만들었다. 이는 총학만의 재학생 내 성폭력 사건 발생 시 해결을 위한 가이드라인이다. 하지만 해당 가이드라인엔 디지털 성범죄 해결을 위한 내용은 존재하지 않았다. 설캠 총학 ‘외대에게’는 “현재 다양화된 디지털 성범죄 양상을 고려해 기존 가이드라인을 보완하겠다”며 사건 발생 시 신속한 대처를 위해 노력하겠단 입장을 비쳤다. 글로벌캠퍼스 총학 ‘온(ON)’은 “교내 인권 문제에 관해 성평등센터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의 범위가 작다고 느꼈다”며 “통합인권센터를 설립하려고 건의 중이다”고 밝혔다. 이어 단톡방 성희롱을 포함한 모든 학내 인권 문제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겠단 말을 전했다.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팀 팀장은 “가해자 처벌 권한을 가진 집단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며 우리사회에서 해당 범죄가 만연하게 일어나 피해 사실에 관한 인식이 부족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한 범죄로 인식되기 위해선 법 개정을 통한 엄중한 처벌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구성원 모두의 인식을 다시 한번 개선해야 할 때다.
박채빈 기자 02chaebi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