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최장수 총리 임기를 마치는 메르켈 총리

등록일 2021년10월24일 12시48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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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조만간 16년에 걸친 총리직을 마감하게 된다. 같은 기간 프랑스는 4명의 대통령, 이탈리아는 재선을 포함한 9명의 총리를 거쳤고, 양당제인 영국도 5명의 총리가 정부를 이끌었다. 민주국가에서, 더구나 의원내각제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한명의 총리가 정부를 이끄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메르켈 총리는 이미 2018년에 차기총선을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할 것임을 선언했다. 그동안 모든 독일 총리들은 타의로 사임하거나,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곤 했다. 메르켈 총리의 개인적 배경은 매우 독특하다. 1954년 서독 지역의 개신교 목사의 딸로 태어났고 출생 직후 아버지를 따라 동독으로 이주, 동독인으로 성장했다. 청년 시절 특별한 정치적 활동은 없었고 32세에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3세에 물리학도와 결혼을 했으나 5년 후 이혼을 했다. ‘메르켈’은 전 남편의 성이다. 35세였던 1989년 동서독 통일의 격동 속에서 정치에 입문하였다. 이후 1990년대에 교육부, 환경부 장관을 역임했으나, 동독 출신에 대한 구색 맞추기용 인사라는 평가가 컸다. 반면에 독일 기독교민주연합(이하 기민당) 대변인, 사무총장을 거치며 입지를 다졌고, 2000년 비밀 헌금 문제로 쇼이블레 당대표가 사임하자 최초의 여성 당대표가 되면서 기민당을 이끌었다. 결국 2005년 총선에서 근소한 차이로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에 승리함으로써 대연정을 이끌어 내었고, 당시 51세로 최연소이자, 최초의 여성총리가 되었다. 총리 취임 직전 독일은 통일의 후유증으로 높은 실업률과 만성적인 재정적자, 저성장에 직면해 있었다.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가 독일을 ‘유럽의 병자’로 지칭할 정도였다. 전임 슈뢰더 총리는 사민당 소속으로 노동시장 등 여러 분야에 걸친 개혁을 추진했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 가시적인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메르켈 총리가 집권하던 당시 독일은 유럽 내 가장 성장률이 낮은 국가였다. 동독지역의 실업률은 20%를 상회했지만 독일 기업들은 정작 국내 투자보다는 막 체제전환을 마친 동유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메르켈 총리는 공약대로 경제개혁을 차질 없이 진행하였고, 유럽연합(EU)에 대한 독일의 적극적인 참여와 대미관계 개선을 주도했다. 이후 유럽재정위기, 우크라이나 사태, 난민위기 등 여러 난제에서 국내외 협상을 주도하면서 독일의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독일인 중 75%는 메르켈 총리 시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메르켈 총리가 국내외 위기 속에서도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배경은 원칙준수와 실용성을 조화시키고, 보편적 가치를 강조했다는 데에 있다. 그녀가 갖는 원칙 강조는 2010년의 그리스 재정위기, 현재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 등 굵직한 위기 상황에서 두드러졌다. 정치적 타협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재정건전성 확보, 국가의 역할, 시민 연대 등을 강조하면서 일관된 정책 노선을 유지한 것이다. 한편 원전폐지, 동성결혼 합법화 등의 문제에 있어서는 실용적인 노선을 추구했다. 시리아 난민사태를 맞이하여 초기에는 미온적인 자세를 보였지만, 2015년 여름 난민이 급증하자 국내의 거센 반대에도 100만 여명의 난민을 받아들였다. 이 문제는 결과적으로 메르켈 총리의 지지 기반을 흔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로 ‘메르켈하다(merkeln)’란 유행어까지 만들어냈고, 국내 여론에 휘둘린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지난 9월 퓨 리서치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세계인이 가장 신뢰하는 정치 지도자이다. 이와 같은 평가는 현재 대선 경선이 한창인 우리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연소, 최초의 여성, 최초의 동독 출신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16년 간 독일을 이끌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독일 정치에 있어 3차례 등장했던 대연정의 사례를 감안하면 일정부분은 타협을 강조하는 정치문화에 기인한다. 반면에 메르켈 총리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국정에 있어 일관된 원칙의 기반 하에 실용성과 보편적 가치를 결합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자물리학 교수인 현재의 남편과는 1998년에 재혼했다. 그러나 총리직 수행 기간 중 남편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 즉 개인 생활에 있어서는 공과 사에 대한 구분이 명확했고, 공직자로써 특권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강유덕(LT학부 교수, 외대학보 편집인 겸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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