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이하 기시다 총리) 전 일본 외무대신이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일본의 100대 총리로 취임했다. 우리나라에선 그의 이전 정치 경력을 토대로 우리나라에 친화적인 성향을 내비칠 것이란 예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그가 한국에 관해 언급한 내용을 미뤄 봤을 때, 아베 신조 전 총리(이하 아베 전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이하 스가 전 총리)의 정치관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단 여론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다. △기시다 총리의 일본 총리 취임 배경△한일 관계의 전망△국제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기시다 후미오 전 외무대신, 일본 100대 총리 취임 지난 9월 29일 기시다 총리가 자민당 총재에 당선됐다. 당초 일본에선 고노 다로 행정개혁담당상(이하 고노 담당상)이 당선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차 투표에서 기시다 총리는 고노 담당상보다 1표 많은 256표를 얻어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결선 투표에서 과반을 차지한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 총재에 당선됐다. 일본 총리 선출 제도에 따라 지난달 4일 그는 일본의 100대 총리로 취임했다. 기시다 총리는 △새로운 자본주의△외교·안전 보장△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대책이란 3가지 중점 정책을 내걸었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분배를 중심으로 한 성장 정책을 의미한다. 외교·안전 보장은 주변국들로부터 일본의 국민과 영토를 지켜 안정을 꾀한다는 내용이다. 코로나19 대책은 일본 내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다. 일본은 이번 달 위드 코로나(with Corona)로 전환했다. 이에 일본 국민들은 제6차 대유행 사태를 두려워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접종증명 전산화와 무료 검사 확대 등을 대책으로 내세웠다. 기시다 총리가 당선된 배경으론 아베 전 총리의 지원과 고노 담당상의 정책이 일본의 기업 정서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학교 교수는 “이번 기시다 총리의 진영엔 아베 전 총리의 최측근 이마이 다카야가 참모로 들어가 있었다”고 전했다. 더불어 “1차 투표 때 3위 후보였던 다카이치 사나에가 고노 담당상의 친중 및 탈원전 정책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기시다 총리와 연합한 점도 그의 총재 선출에 크게 작용했다”고 밝혔다. 일본 야당은 고노 담당상보다 기시다가 총리로 선출된 게 더 낫단 입장을 보였다. 국민들에겐 고노 담당상이 기시다 총리보다 더 인기가 많기 때문이다. 기시다 총리가 고노 담당상을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던 건 당원 득표수에선 밀렸지만 국회의원 득표수에서 앞선 덕이다. 이는 아베 전 총리가 기시다 총리를 지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기시다 총리의 활동에 아베 전 총리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에다노 유키오 입헌민주당 대표는 “자민당은 바뀌지 않는단 걸 보여준 총재 선거였다”며 유감을 표했다. 일본 국민은 기시다 총리의 취임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산케이 신문과 후지뉴스네트워크(FNN)가 지난달 일본의 18세 이상 유권자 1,0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시다 내각을 지지하는가?’란 질문에 63.2%가 ‘지지한다’고 답했고, 27.4%가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기시다 내각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선 ‘달리 괜찮은 사람이 없어서’가 35.2%로 1위를 차지했고,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내각이라서’가 20.3%로 2위를 차지했다. 기시다 총리는 취임 열흘 만인 지난달 14일 중의원 해산을 단행했다. 후지모토 카즈미 센슈 대학 명예교수는 “기시다 총리가 우유부단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중의원 해산을 단행해 실행력을 내세우고 내각 지지율을 높이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일 관계의 전망은?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전 총리 재임 시절인 2015년에 외무대신으로 재임하며 위안부 합의를 이끌어낸 당사자다. 아베 전 총리는 위안부 합의 당시 해당 문제를 신중하게 대해야 한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의 설득으로 일본은 국가적 차원의 사과와 일본 정부 예산으로 편성한 배상금을 보상으로 지급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에 전문가들은 기시다 총리 취임 후 한일 관계 회복에 긍정적인 전망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달 8일 기시다 총리는 일본 국회에서 가진 첫 소신 표명 연설에서 우리나라를 두고 “한국은 중요한 이웃나라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스가 전 총리의 소신 표명 연설에서 ‘매우 중요한 이웃나라’란 표현의 뼈대는 유지한 채 ‘매우’란 단어만 뺀 것이다. 기시다 총리의 발언 배경엔 위안부 합의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우리나라에선 위안부 합의가 옳지 못하단 비판적인 시선이 다수 존재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취임 후인 2017년 12월 피해자 중심 해결 원칙에 따른 조치를 지시하며 위안부 합의를 수용할 수 없단 뜻을 밝혔다. 이에 기시다 총리는 총재 선거 당시 우리나라에 대해 국제법 및 국제 합의를 준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위안부 합의와 더불어 우리나라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이 원인이 돼 2019년 7월 한일 무역 분쟁이 시작됐다. 이로 인해 한일 관계는 지난 2년간 크게 악화됐다. 반도체 산업에 이용되는 △에칭가스(Hydrogen fluoride)△포토레지스트(Photoresist)△플루오린 폴리이미드(Fluorinated polyimides) 등의 품목에 수출 규제가 가해지며 우리나라는 해당 소재를 국산화하거나 중국, 대만 등에서 수입해야 했다. 양국은 감정의 골이 깊어짐과 동시에 경제적으로도 척을 졌다. 기시다 총리의 성격과 주변 자민당 인사들과의 관계 역시 그가 우리나라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기시다 총리에 대해 “중도적인 입장을 가진 정치인이지만 부드러운 성격상 아베와 다카이치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의 취임을 맞아 “협력의 본보기를 보여줄 수 있도록 소통하길 기대하고 있다”며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축하 서신을 보냈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의 지금까지의 행보를 고려했을 때 한일 관계가 회복되기까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와의 관계 기시다 총리는 취임 이후 전 세계 각국 정상과 전화를 주고받으며 외교적 입장을 표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선 △미일 동맹 강화△센카쿠·댜오위다오 열도 영유권 분쟁△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서로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스콧 모리슨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와는 △경제△기후변화△안보 협력을 강화하잔 내용으로 전화를 주고받았다. 또한 지난달 8일 외교 문제를 주제로 열린 도쿄 후지산 회합에서 핵미사일 개발을 추진하는 북한과 위압적 행위를 반복하는 중국을 두고 “△민주주의△인권△자유란 보편적 가치를 위협하는 움직임이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단 입장과 납북된 일본인의 조속한 귀국을 위한 조치를 취하겠단 의지를 보였다. 기시다 총리의 행보에 여러 국가가 주목하고 있다. 일본의 내각 구성 변화가 얼어있는 한일 관계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지와 더불어 동아시아 평화 유지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시점이다.
장래산 기자 03raesa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