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서 △거짓 뉴스와 선전△경제 제재△사이버 전략을 사용한 ‘하이브리드(Hybrid) 전쟁’이 벌어졌다. 하이브리드 전쟁이란 군사적 수단과 비군사적 수단을 혼합해 전쟁 상대국의 혼란과 불안을 야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전쟁은 물리적·인적 피해와 더불어 디지털 시대에 새롭게 변화된 전쟁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하이브리드 전쟁의 전개와 영향△피해 상황△하이브리드 전쟁의 대비책에 대해 알아보자.
◆다양화된 전쟁 전략
현대 전쟁의 초기엔 간첩이나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한 전략이 활용됐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8년 동안 진행된 베트남 전쟁에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에 수많은 간첩을 파견해 동조자를 포섭하고 각 분야에 간첩을 침투시켜 정부가 권력을 발휘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 때 파견된 간첩은 남베트남 전체 인구의 0.5% 정도였으며 약 5만명 정도가 △민족△인도△평화주의자로 위장한 채 △시민단체△정부의 핵심부△종교단체를 장악했다.
2000년대에 접어들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전쟁의 방식도 변화했다. 대표적인 예론 지난달 24일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꼽을 수 있다.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선 하이브리드 전쟁 수단 중 △거짓 뉴스와 선전△경제 제재△사이버 전략이 활용됐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전투기와 전차를 격파하는 모습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해 러시아군의 심리를 자극했다. 또한 세계적으로 국제 IT 의병을 모집한단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려 IT에 능숙한 해커들을 모집했다. 한편 러시아의 경우 사이버 공격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외교부 웹사이트를 마비시켜 우크라이나 정부에 혼란을 줬다.
2006년 레바논 침공엔 거짓 뉴스와 선전이 전쟁 수단으로 사용됐다. 2006년 7월 당시 레바논을 점령 중이던 이스라엘을 상대로 무장저항조직인 ‘헤즈볼라’가 선제공격을 시도하며 전쟁이 시작됐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 비교했을 때 강력한 화력이나 첨단 무기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에 헤즈볼라는 전쟁 중 군사 사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진과 영상을 확산시켰다. 대표적으로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군인의 통화를 도청해 군사정보를 수집하고 가짜 시체나 폭격 장면을 연출 하는 등 군인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는 심리전을 전개했다.
한편 경제 제재의 전략 또한 현대 전쟁의 방식 중 하나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본격적으로 개시하자 대러 제재방안을 발표했다. 미국 경제 제재 대상엔 90여개 러시아 금융기관이 올랐으며 푸틴 대통령의 측근과 정부 핵심 인사에 대한 제재도 추가됐다. 이와 더불어 첨단제품과 부품 수출 통제 방안도 함께 발표돼 산업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사이버 전략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쓰이는 SNS를 기반으로 전개된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은 니고르노카라바흐(Nagorno-Karabakh)에 대한 영유권 문제를 두고 지난 2020년 9월 27일부터 11월 10일까지 전쟁이 벌어졌다. 당시 아제르바이잔군은 아르메니아군에 비해 경제적 여력이 부족했지만 전쟁에 드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를 SNS에 공개해 전략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들의 전략은 상대적으로 지출이 컸지만 전격적인 드론 전투의 모습을 송출하고 공개하는 방식을 통해 상대측의 심리를 위축하는 효과를 얻은 것으로 평가된다.
◆사회 다방면에서 나타나는 피해
변화된 전쟁 이후의 피해는 단순히 물리적 피해를 넘어 △경제적△물질적△심리적 피해로 광범위해졌다. 거짓 뉴스나 선전의 작전 중 하나인 ‘가짜 깃발 작전’은 상대방이 먼저 공격한 것처럼 조작해 공격의 빌미를 만드는 수법으로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하는 군사 작전을 가리킨다. 이 작전을 통해 거짓 선전의 주동국은 공격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여해 전쟁의 명분을 만든다. 제임스 루이스(James Louis) CSIS(Center for Strategic&International Studies) 연구원 겸 기술 전문가는 “거짓 정보가 사람들에게 자주 노출되면 이를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생긴다”고 언급하며 거짓 뉴스가 양산 되면 다수의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를 따라가다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밝혔다.
경제적 보복의 경우 공격국과 피해국 모두 피해를 볼 수 있다. 러시아를 대상으로 한 타국의 경제 제재로 인해 러시아와 중요한 경제 협약을 맺는 나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 예측된다. 따라서 러시아는 경제적 대가를 치를 전망이다. 그러나 경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제재를 가한 국가들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유럽연합(EU)에 속한 국가는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고 영국은 러시아 신흥재벌 재산의 은닉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러시아 국민의 재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사이버 전쟁의 경우 쉽고 빠르게 타국가로 뻗어나가는 경향을 보인다. 그 예론 2020년 IT 장비 모니터링 솔루션을 개발하는 기업 솔라윈즈(SolarWinds)의 소프트웨어가 해킹을 당한 사례가 있다. 해당 프로그램에 삽입된 악성코드는 미국의 여러 기관으로 퍼졌고 △마이크로소프트(MS)△상무부△상무부 산하의 통신정보관리청△재무부 등이 피해를 입었다. 이 공격의 주된 범인은 러시아로 판명됐다. 사이버 전쟁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구글(Google)과 애플(Apple) 같은 해외 기업은 △애플리케이션 내 러시아 국영 언론사(RT) 광고 차단△휴대전화 결재 서비스 중단△SNS 중지 등 특정 국가에서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스마트폰 같은 미디어 도구 판매를 금지하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사이버 전쟁의 도구와 장소를 억제하는 것으로서 사이버 공격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하이브리드 전쟁의 대비책
현대전의 양상이 기존 재래전과 사이버공격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양상을 띠면서 사이버공격의 대비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이버 안보체계의 중심지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이다. 하지만 활동범위가 공격에 대한 보안 수준에 머물러 있어 실효성이 부족하다. 또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돼 △경제△문화△사회△정치 등 모든 영역에서 인터넷 의존성이 높아졌지만 이에 대비해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단 지적도 있다. 이에 지난 3일 국가안보실은 사이버 안보에 관해 향후 10년간 △국제협력 확대△연구개발 투자 확대△보안기술 인증지원△제도적 인프라 구축에 힘쓸 것이라 밝혔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현대사회에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위협을 감행할 수 있어 위기 이전에 대응 능력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이하 나토)는 사이버 협력 강화 방안에 합의해 사이버 공간 방어 구축에 들어갔다. 이미 나토는 2018년부터 러시아를 견제해왔다. 커티스 스캐퍼로티(Curtis Scaparrotti) 나토장군은 “하이브리드 전쟁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하이브리드 전쟁의 위험성을 인지해야 함을 밝혔다. 또한 “군을 비롯한 다른 기관 부처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해야 한다”며 범정부적 차원의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비슷하게 영국군은 지난해 DSEI(Defence & Security Equipment International) 국방 전시회에서 전쟁 배경이 점점 더 다양화될 것을 예상하고 신기술을 이용해 훈련을 진행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어 새로운 전투 차량 기술을 시연해 △네트워크 개발△드론 테더링△무인 지상차량△무인 항공기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음을 보여줬다. 나토와 영국 모두 하이브리드 전쟁 위협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군사적 대응책을 모색·발전시킨 것이다. 급변하는 전쟁 양상에 발맞춰 우리나라 또한 △군사△사회△정치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정확한 판단과 대응을 위한 대비가 시급해 보인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 회장은 “우리나라도 안보와 관련한 모든 영역에서 다각적이고 선제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며 새로운 공격기술에도 언제든지 직면할 수 있단 사실을 인지하고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나라만은 안전하단 생각이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차승연 기자 03seungyeo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