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우리학교 학칙 개정안이 법인 이사회에서 가결됐다. 이번 개정안은 ‘유사·중복학과(부) 폐과존치 규정안(이하 규정안)’의 내용이 포함됐다.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이룸’(이하 설캠 총학)과 글로벌캠퍼스 총학생회 ‘외대의 봄’(이하 글캠 총학)은 이를 막기 위해 △기자회견△노숙농성△총장과의 대화△학생 설문조사 등을 진행했지만 학칙 개정안은 최종 통과됐다. 이번 사태로 인해 학교의 불통행정이 재조명됐으며 양 캠퍼스(이하 양 캠) 간 학생 갈등이 심화됐다. △규정안 관련 논의의 배경과 진행상황△날카롭게 맞선 학교와 학생△여전한 학내 구성원 간 갈등에 대해 알아보자.
◆유사·중복학과(부) 폐과존치의 배경과 진행상황
우리학교 측은 지난 3월 22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유사·중복학과(부) 학생 대표자들에게 유사·중복학과(부) 폐과존치(이하 폐과존치)와 관련한 ‘구조조정안 및 관련 학과들에 대한 향후 대책’을 제시했으며 폐과존치를 공식화했다. 이에 지난달 4일 글캠 총학은 구조조정 대상 유사·중복학과(부) 학생과 함께 총장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지난 3월 24일 설캠 총학 또한 기획조정처장과의 면담 후 학교 측에서 폐과존치 관련 논의가 진행된 사실을 확인했고 지난달 6일 공청회를 진행했다. 이후 지난달 15일 설캠 총학과 글캠 총학은 유사·중복학과(부) 구조조정 관련 합동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를 구성해 양 캠의 공통된 우려지점을 전달하려 했으나 원만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 후 설캠 총학의 경우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4일까지 7일간 노숙농성을 진행했으며 글캠 총학의 경우 지난달 27일 긴급정기총회를 개최했다.
학생들의 이런 행보에도 지난달 28일 학칙 개정안은 교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이에 29일 설캠 총학을 비롯한 여러 학생은 대학평의원회가 진행된 설캠 본관 2층 일대를 점거했다. 그 결과 설캠 학생처장과 부총장이 회의에서 규정안을 논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며 실제 대학평의원회 회의에서 해당 문서는 수거됐다. 그러나 지난 4일 진행된 법인 이사회 회의에서 규정안은 가결됐다.
이에 따라 우리학교 글캠 통번역대학 소속 전체 4개 학과(△영어통번역학부△일본어통번역학과△중국어통번역학과△태국어통번역학과)와 국제지역대학 4개 학과(△러시아학과△브라질학과△인도학과△프랑스학과)가 폐과존치 상태로 운영된다. 또한 해당 학과는 다음 해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동시에 폐과존치된 과의 인원은 글캠 내에 인문계열과 자연계열로 나뉜 글로벌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한 후 이월될 예정이다.
◆날카롭게 맞선 학교와 학생
지난달 5일 설캠 총학이 ‘총장과의 대화’에서 직접 총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진행했던 유사·중복학과(부) 구조조정 관련 긴급 설문조사 중 ‘우리학교 측의 지양해야 할 조치’를 묻는 질문에 ‘2개 이상 전공 취득 시 학위증과 졸업증명서에 명기할 전공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와 ‘구조조정 해당학과의 재적생이 0명이 되는 시점 이후 해당 학과명으로 발급한다’가 각각 84.2%와 82.4%를 기록했다. 이에 설캠 총학은 ‘전공 선택 기입’과 ‘서울캠퍼스 학과 소속 졸업장 발급’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정운 우리학교 총장(이하 박 총장)은 설캠에서 이뤄진 간담회에서 “글캠 학생들의 어려움이 클 테니 이해해달라”며 호소했다. 또한 “설캠 학과가 명시된 졸업증명서는 7~8년 뒤의 일이니 취업 시장에서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고 답했다. 그러나 설캠 총학은 “2개 이상 전공 취득 시 전공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단 계획은 설캠 이중전공 인기 강의의 수요를 높일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에 덧붙여 “폐과존치 결정에 따른 보상으로 설캠 졸업증명서를 발급하는 것은 이원화 캠퍼스란 본질에도 어긋난다”며 학교 측의 규정안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최종 규정안엔 ‘2개 이상 전공 취득 시 학위증과 졸업증명서에 명기할 전공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조항은 삭제됐다. 현성민(서양어·포르투갈어 21) 씨는 “유사·중복학과(부)에 속한 글캠 학생을 대상으로 대안이 필요한 것은 이해하지만 시혜적인 태도로 설캠 학생과 협의되지 않은 보상을 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비판했다. 설캠 재학생 A 씨는 “유사·중복학과(부)를 폐과존치하는 것이 학과 간 유사성 해소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관련 학과 학생이 피해 보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규정안 시행으로 인한 부작용 발생 시엔 학교 측에서 적극적으로 해결해줄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글캠 총학이 진행한 ‘구조조정안에 관한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규정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각각 45.6%, 46.4%로 나타났다. 글캠 유사·중복학과(부) 내에서도 학칙 개정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지난달 4일에 진행된 총장과의 대화에서 유사·중복학과(부)에 속한 학생과 교수의 권리 보장에 관한 문제가 제기됐다. 박 총장은 유사·중복학과(부)에 속한 학생 중 잔류를 희망하거나 해당 학과를 이중전공하길 희망하는 학생에 대해 “잔류를 희망하는 학생을 위한 대책 마련은 논의 중이며 외국어 센터를 활용해 외국어 수요를 충족시키는 방식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유사·중복학과(부) 소속 교수의 이전 문제에 대해선 “교수의 소속 변경과 그에 따른 신분보장을 철저히 할 것이며 명예교수로 가는 방안도 준비돼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글캠 재학생 B 씨는 “우리학교가 유사·중복학과(부)가 많다보니 언젠간 발생할 문제였다고 생각하지만 해당 학과에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유사·중복학과(부)에 재학 중인 글캠 재학생 C 씨는 “재학 중인 학과가 설캠에 이미 있기 때문에 폐과존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다”며 학교 측의 행보에 동의하는 입장을 밝혔다. 양 캠 총학은 모두 이번 유사·중복학과(부) 관련 학칙 개정이 학생과의 원활한 소통이 부재된 채 긴급히 진행됐단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글캠에서 진행된 총장과의 대화 중 박 총장은 “촉박한 진행에 대해선 동의하지만 양 캠 교수의 정년이 다가오는 시기에 폐과존치를 진행하는 것이 학교의 재정난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설캠 총학은 “우리학교가 학내 구성원이 모두 함께 만들어 나가는 학교란 인식은 우리학교 발전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학생과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빠르게 일을 진행한 학교의 행정을 비판했다. 글캠 총학 또한 “학교는 학생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학교의 일방적인 일처리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한편 양 캠 총학 사이의 의견 불일치도 발생했다. 양 캠 총학의 중운위 내에서 작성한 합동 요구안 중 제3조 3항과 4항에 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제3조 3항과 4항의 내용은 각각 ‘구조조정 해당 학과의 재적생 0명이 되는 시점 이후 졸업증명서는 서울캠퍼스 해당 학과(부)명으로 발급한다’와 ‘이중전공(후기이중전공 포함) 선발자는 복수전공을 신청할 수 있다’이다. 이에 대해 설캠 총학은 “양 캠 간의 이해관계가 달랐기 때문에 모두의 입장을 명확하게 정리하는 데 난항을 겪었다”며 글캠 총학과 입장 차이가 있었음을 언급했다. 한편 글캠 총학은 “학생들이 공통된 의견 합치를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회의가 진행됐다”며 정확한 입장을 도출하지 못한 채 합동 요구안을 작성하려고 한 것이 문제였음을 밝혔다.
◆여전한 학내 구성원 간의 갈등
유사·중복학과(부) 구조조정 관련 사안으로 인해 양 캠 간의 갈등이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올라왔다. 재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엔 설캠 학생과 글캠 학생이 서로를 비방하는 게시글을 빈번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상대 캠퍼스를 무분별하게 혐오하는 표현도 마찬가지였다. 설캠 학생의 경우 양 캠 간 입학 성적의 차이가 분명한데 글캠 학생에게 설캠 소속의 졸업증명서가 발급되는 것은 부당하단 의견이 주를 이뤘다. 한편 글캠 학생은 유사·중복학과(부) 폐과존치 대상 학생들의 학습권과 대안이 충분히 보장돼야 한단 태도를 보였다. 양 캠 간에 발생하는 무분별한 갈등 상황에 대해 설캠 총학은 “양 캠 학생 간의 이해관계가 다르단 것을 학교 측에서 인지하고 해소 방안을 제시했어야 한다”며 이런 부작용을 학교 측에서 예측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글캠 총학은 “학교 측에서 폐과존치의 이유와 배경을 학생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학생 모두가 납득되게끔 노력해야 한다”며 양 캠 학생들이 유사·중복학과(부) 폐과존치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건으로 인해 우리학교의 불통행정 문제 또한 재조명됐다. 우리학교는 지난해에도 ‘2학기 성적 평가 방식 변화’와 ‘학점 백분위 산정 방식’ 등 학생과의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로 새로운 방식을 정해 비판받은 바 있다. 이번 해 새로 취임한 박 총장이 소통의 부재를 해결할 ‘소통행정’을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학생들의 실망도 클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박 총장은 ‘외대 신문고’와 ‘총장 오피스 아워(Office hour)’를 통해 학내 구성원 간의 소통을 강화할 것이라 밝혔다. 그러나 최근 규정안 시행 과정에선 학생과의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단 의견이 존재한다. 유다은(아시아·마인어 21) 씨는 “학교 측이 학생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채 폐과존치를 진행한 것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전했다. 설캠 총학의 ‘법인 이사회 회의 대응 행동 진행 완료 보고’에 따르면 앞으로의 규정안 집행 과정 속 세부 규정 논의 과정에 학생이 참여하는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노력을 이어 나갈 것을 밝혔다.
또한 설캠 총학이 학교 측과 논의한 결과 우리학교도 학생과의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앞으로 소통을 위해 노력하겠단 입장을 전했다.
이어 “통합을 추구하는 학교의 선택을 무마할 생각은 없다”며 “따라서 세부 규정을 논의할 때 학생의 회의 참여 보장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것이다”고 밝혔다. 한편 글캠 총학은 이번 유사·중복학과(부) 폐과존치 대상이 아닌 잔류학과에 초점을 맞춰 해당 학생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임을 밝혔다.
차승연 기자 03seungyeo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