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지속해서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았던 장애인 이동권 보장 관련 법안 재정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혼잡한 출근 시간대에 지하철 시위를 진행해 연착으로 인한 시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시민과 전장연 측의 의견이 대립하는 가운데 △장애인 이동권 지하철 시위에 대한 반응△장애인 이동권의 역사와 현황△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장애인 이동권 지하철 시위에 대한 엇갈린 반응
지난 3일 전장연은 11일 만에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재개했다. 이번 시위는 지난달 21일 시위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이 붐비는 오전 9시 휠체어에서 내려 바닥을 기어가는 ‘오체투지’ 방식으로 진행됐다. 앞서 전장연은 지난달 25일부터 추경호 경제부총리 후보자(이하 추 후보자)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인사청문회(이하 청문회)가 열리는 지난 2일까지 시위를 중단하며 추 후보자의 답변을 기대했다. 추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장애인 콜택시 사업을 위한 국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전장연이 요구한 장애인 권리 예산에 대해선 뚜렷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전장연은 추 후보자가 해당 사안에 대해 확답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시위를 재개했다고 설명했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방식에 대해 ‘바쁜 출근 시간대에 시민을 볼모로 잡은 무리한 시위’란 입장과 ‘가장 기본적 권리인 이동권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란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특히 출근길과 퇴근길 이용률이 높은 지하철역에서 진행돼 일반 시민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이 지난해 1월에서 11월 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 지하철 승하차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열차 운행을 지연시켰다며 전차교통방해 및 업무방해 혐의로 혜화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같은 날 기자간담회에서 “장애인의 권리 표시도 중요하지만 출근 시간대 시민의 출근을 방해하는 행위는 부적절하고 시민의 권리를 침해한단 측면에서 일정 부분 제한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이하 이 대표)는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장연의 시위는 비문명적이고 서울 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라며 비난했다. 반면 시위가 일어나게 된 안타까운 현실에 공감하는 정치인도 존재했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하 김 의원)은 지난 3월 28일에 진행됐던 전장연 시위 현장에 참석해 “정치권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국민 여러분이 이런 일을 겪는 것에 죄송하다”며 무릎 꿇고 사과했다. 더불어 “지하철 시위 자체에 대해선 일반 시민의 불편함을 이해하지만 장애인은 오랜 시간 이동권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며 시위를 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이해해달라고 밝혔다. 정혜영 정의당 의원은 전장연 시위에 함께하며 동참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장애인 단체 내에서도 전장연의 시위 방식에 대한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최용기 대표를 비롯한 몇몇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원은 전장연 시위에 동참하며 삭발식을 진행했다. 이와 반대로 지난달 21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와 교통장애인협회 소속 장애인 200여 명은 국회의사당역 5번 출구 앞에서 반대 집회를 열었다. 김락환 교통장애인협회 중앙회장은 “전장연의 요구사항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른 장애인 단체와 협의도 없이 지하철 승강기 설치가 이동권의 전부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밝혔다.
◆장애인 이동권은 보장되고 있나
지하철 연착 시위는 2001년 휠체어에 탑승한 노부부가 휠체어 리프트(이하 리프트)에서 추락해 사망했던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사고’ 이후 최초로 시작됐다. 2017년 리프트 작동 버튼을 누르다 추락한 한경덕 씨 사고를 포함해 리프트 추락사고로 숨지거나 다친 장애인은 총 16명으로 지하철 내 장애인 사고는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이에 지난해 12월 3일부터 이동권 보장을 위한 출근길 시위가 자주 일어나며 본격화됐다.
전장연은 ‘2022년 장애인예산 요구안’을 발표하는 등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던 예산을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으로 법을 개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장애인 예산 규모는 0.6%로 OECD 평균인 1.9%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전장연은 그동안의 시위와 달리 이번 시위는 강성으로 진행했다. 그동안 정치인과 지자체의 이동권 보장 약속이 대부분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하 교통약자법) 개정안 통과 후 예산에 대한 법안 원안이 임의조항으로 바뀌며 예산 미반영과 비용 부족 문제도 법적인 문제를 피해 갈 수 있단 한계를 가진다. 서울시는 2001년 오이도 추락사고 이후 계속해서 이동권 보장을 약속했다. 이명박 제32대 서울시장은 임기 당시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에 승강기를 설치하고 저상버스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후 2015년엔 박원순 제36대 서울시장이 지하철역 출구부터 승강장까지 엘리베이터만으로 이동 가능한 ‘1역사 1동선’을 위해 이번 해까지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 약속했다. 또한 지난해까지 저상버스 75%의 보급률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약속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
장애인들의 이동 수단은 크게 △대중교통△장애인콜택시 등 특별 교통수단△자가용으로 분류할 수 있다. 대중교통 이동권 보장 수단엔 △저상버스△역내 엘리베이터△리프트 등이 있다. 저상버스 도입의 경우 지난해 12월 교통약자법이 개정되면서 저상버스를 전국 시내버스의 42%까지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개정안 내용엔 저상버스 도입 이행을 의무화하지 않기에 전국 평균 저상버스 도입률은 27%에 그쳤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도입률을 가진 서울시에서도 저상버스 도입이 지체되고 있다. 서울시는 저상버스 도입을 지난해까지 75%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66.1%에 그쳤다. 서울과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선 1-2%의 저상버스 도입률을 웃돌고 있다. 저상버스 도입 자체에 대한 한계도 존재한다. 교통약자법 개정안엔 시내버스와 마을버스 교체 시 의무적으로 저상버스를 도입해야 한단 내용이 있지만 시외버스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에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전국 저상 시외 고속버스는 0.57%인 10대만 존재하며 전국의 고속버스 노선 169개 중 장애인 이용 가능 노선은 4개뿐이다. 또한 버스 사업자가 해당 지역 도로 구조·시설 등이 저상버스 운행에 적합하지 않다고 승인받으면 저상버스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이 과정을 거쳐 저상버스가 도입된다 해도 장애인 이용률은 현저히 낮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장애인 이동권 강화를 위한 개별적 이동 수단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저상버스 이용률은 12.3%다. 이들 절반이 저상버스 이용을 거부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의 경우 편리한 이동권을 위해 엘리베이터와 리프트가 설치된다. 리프트가 장애인 사이에서 ‘살인 기계’로 불릴 만큼 사고가 자주 일어나면서 현재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노후한 지하철역에서만 리프트를 운영하고 있다. 2015년 박원순 제32대 서울시장은 당시 이번 해까지 1역사 1동선을 위해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전면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달 19일 기준 서울시 전체 역사 283곳 중 17곳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았다. 1역사 1동선을 충족하더라도 여러 개의 출구 중 단 한 곳에만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사회적 약자의 불편함은 여전한 상황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장애인은 주로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거나 자가용을 이용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이용이 어려운 상황이다. 장애인 콜택시의 경우 저상버스와 비슷하게 수도권에 편중돼 운영되기 때문이다. 장애인 콜택시 등을 포함한 특별교통수단 법정 대수는 장애인 인구 150명당 1대다. 그러나 이는 서울시와 경기도에서만 조건을 충족하고 있으며 위 조건을 충족하는 지방자치단체는 괴산시가 유일하다. 이런 어려움을 피하고자 자가용 운전을 선택한다 해도 면허 따는 과정은 쉽지 않다. 서울시에서 운영 중인 자동차 운전면허시험장 중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시험용 차량은 단 1대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우리나라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도 낮은 편이다. 2020년 기준 보건복지부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시행한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아직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답한 비율은 63.5%다. 이에 2007년 장애를 사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권리를 구제하는 법률을 포함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했지만 이 법안을 ‘알고 있다’고 답한 시민은 10.5%뿐이다. 선진국도 현재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을 겪으며 장애인을 위한 이동권이 마련됐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 버스 앞을 막고 국회의사당 계단을 기어오르는 등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진행했다. 이 결과로 1990년 미국장애인법(ADA 법)이 제정되면서 장애인의 대중교통수단 접근성을 법으로 보장했다.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고 장애인·비장애인 구분 없이 이용 가능한 택시 등을 운행하며 일반 대중에게 개방된 모든 공간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독일의 경우 이동 수단의 선택권까지 보장된다. 수도 베를린에선 이미 모든 시내버스에 저상버스가 도입된 이후 2013년엔 △버스△시외버스△트램까지 베리어프리(barrier free)를 의무화하는 여객 운송법을 시행했다. 이에 장애인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이동권을 보장받게 됐다.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보장 시설은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에 해당한다. 김 의원은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란 의미처럼 유니버설 디자인은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전했다. 실제 우리나라에선 2003년 송내역 시각장애인 추락사고 이후 안전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며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설치됐다. 오늘날 스크린도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별 없이 모든 시민의 편의와 안전을 도모하는 시설이 됐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단순한 시설 설치에 멈추지 않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까지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
양채은 기자 03chaeeu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