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신당역 지하철 역사에서 스토킹 피해자인 여성 역무원이 살해됐다. 가해자는 스토킹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던 중이었으며 1심 선고 하루 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 라 우리나라 스토킹 처벌법의 허점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해 10월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되 고 경찰의 현장 대응 강화 방안이 잇따라 나왔지만 스토킹 피해자들이 보복 범죄로 희생당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스토킹 처벌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 라 스토킹 처벌법의 현주소△스토킹 처벌법에 남아있는 문제△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나라 스토킹 처벌법의 현주소
지난 14일 오후 9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전주환 씨 (이하 전 씨)가 역사 내부 순찰을 하던 피해자를 미리 준비한 흉기로 살해했다. 전 씨는 이전에 서울교통공사에서 근무하던 당시 입사 동기로 알고 지낸 피해자로부터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과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당해 재판받던 중이었다. 불구속 재판 중이던 전 씨는 징역 9년을 구형받았고 선고 전날 범행을 저질렀다. 이 사건 을 계기로 스토킹 처벌법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우리나라 국회에선 1999년부터 스토킹 처벌에 관한 특례법 발의를 시작으로 여러 번 스토킹 처벌법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으나 입법 계획이 번번이 무산됐다. 스토킹 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까진 스토킹이 경범죄의 일종 인 지속적 괴롭힘에 포함돼 피의자가 다발적인 범죄를 저질러야만 처벌할 수 있었다. 이후 20년 넘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다 지난해 10월 스토킹 방지법이 통과됐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스토킹 행위를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상대방의 가족△상대방의 동거인에 대해 불안감 또는 공포심 을 일으키는 행위로 정의한다. 스토킹 행위 유형으론 △우편·전화·팩스 또 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서 물건이나 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이하 “물건등”이라 함)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주거·직장·학교 그 밖에 일상 적으로 생활하는 장소(이하 “주거등”이라 함) 또는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주거등 또는 그 부근에 놓여있는 물건등을 훼손하는 행위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해 물건등을 도달하게 하거나 주거등 또는 그 부근 에 물건등을 두는 행위△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가 있다. 이런 스토킹 행위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면 스토킹 범죄로 분류한다. 스 토킹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은 과거 신고 이력을 확인하고 이를 출동 경찰관 에게 전달한다. 만약 신고자의 신고가 취소될 때도 피의자에 의한 강압적인 신고 취소일 가능성을 고려해 반드시 경찰관의 현장 출동 후 사건을 종결한 다.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지속적 또는 반복적인 스토킹 행위는 △3 년 이하의 징역△3천만 원 이하의 벌금△흉기 휴대 시 5년 이하의 징역△흉 기 휴대 시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스토킹 처 벌법이 시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스토킹 범죄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달 대검찰청이 공개한 스토킹 사건 접수 건수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월평균 136건이었던 스토킹 사건 접수 건수는 이번 해 2분기 649건으로 지 난해 4분기 대비 약 477% 증가했다.
이에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을 대표 발의한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국회에서 스토킹 처벌법이 통과됐지만 범죄자 처벌, 피해자 접근금 지와 같은 형사법 절차를 법무부 소관으로 규정했을 뿐 피해자 보호에 대한 법률이 충분하지 않단 한계가 있다”며 △수사·재판 과정에서의 2차 피해 방 지△스토킹 범죄 실태조사 및 예방 교육 시행△스토킹 피해자 지원시설 설 치 등 종합 체계를 마련해야 한단 의견을 내세웠다.
◆스토킹 처벌법에 남아있는 문제
지난해 10월부터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지난달 경찰청이 국회에 제 출한 통계에 따르면 법 시행 후 신고된 스토킹 건수는 △2020년 4,515건△지 난해 1만 4,509건△이번 해 7월까지 1만 6,571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이에 따라 스토킹 처벌법이 스토킹 예방에 효과적이지 않단 지적이 꾸준히 제기 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스토킹 범죄 처벌의 문제점으론 △반의사 불벌죄△짧은 보호조치 기간△2차 신체 피해 발생 등이 있다.
스토킹 처벌법엔 스토킹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으면 이를 철회할 수 있는 반의사 불벌죄가 포함된다. 이 조항으로 인해 가해자가 처벌을 피하고자 불구속 상태로 피해자에게 협박하는 형태의 보복 범죄 및 2 차 범죄의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신당역 스토킹 사건 가해자 또한 보복살인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됐다. 실제 스토킹 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 중 상당수가 공소 기각 판결을 받는 것도 반의사 불벌죄 때문이란 의견도 존재한다. 법 제정 이후 스토킹 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돼 1심 선고가 내려진 161건의 판결문 중 공소 기각이 선고된 사건은 36%로 58건에 이른다. 이는 범죄의 평균 공소 기각률인 1%와 비교하면 굉장히 높은 비율로 수사기관이 유죄로 판단해 재판으로 넘긴 사건 중 상당수가 무죄 상태로 돌아간다. 이에 대해 김범기 법무법인 해율 변호사는 “스토킹 처벌법에 명시된 반의사 불벌 죄로 인해 2차 범죄가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반의사 불벌죄를 삭제 해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토킹 범죄가 재발할 우려가 있을 때 이뤄지는 조치인 잠정조치가 피해 자를 보호하기에 불충분하단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잠정조치는 스토킹 가 해자가 피해자에게 100m 이내로 혹은 전기통신을 이용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고 사안이 심각할 경우 구치소‧유치소에서 유치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잠정조치의 경우 제4호 국가경찰관서의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 유치가 가능하다. 그러나 경찰이 신청 후 검사의 청구를 거쳐 법원이 결정하는 구조로 진행돼 피해자가 법원에 직접 신청할 수 없다. 게다가 경찰과 검찰이 청 구한 사건을 법원이 기각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실제 지난 16일 용혜인 기본 소득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 잠정조치 건 수 5,788건 중 17%인 992건이 기각됐다.
스토킹 가해자의 구속영장 기각 후 보복 범죄로 이어졌던 사례도 드러났다. 지난 21일 서울경제가 발표한 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실효적 가해자 조치 법제화 방안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고도 2차 신체 피해를 본 피해자 가운데 10명 중 1명은 살해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경찰이 피해자에게 바로 신고가 가능한 스마트워치를 지급하는 등 피해자 를 보호하는 조치를 취하기는 하나 여전히 2차 신체 피해가 빈번하게 발생 하고 있다.
◆스토킹 범죄, 최선의 예방책을 위해선
지난 16일 법무부는 “스토킹 사건 초기부터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요소를 철저히 수사하겠다”며 “△가해자에 대한 접근 금지△구금장소 유치△신속한 잠정조치와 구속영장의 적극적인 청구 등을 지시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스토킹 범죄의 반의사 불벌죄 규정을 폐지하고 잠정조치 방법에 가해자 위 치추적을 신설해 2차 스토킹을 예방하는 방안도 논의할 예정이라 전했다. 대검찰청은 △긴급응급조치 불이행 시 과태료 처분을 형사처벌로 상향△잠 정조치의 적극적 활용을 통한 스토킹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피해자에 대 한 신변보호 조치를 경찰이 직권으로 강화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 미국은 지난 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California)의 스토킹 방지법 통과를 시작으로 모든 주에 스토킹 방지법을 도입했다. 주마다 처벌 조항이 상이 하나 미국의 스토킹 처벌법은 공통적으로 합리적 공포란 개념을 적용한다. 스토킹에 해당하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기보단 해당 상황이 스토킹 피해자가 공포를 느낄만한 상황인지에 따라 스토킹 여부를 유동적으로 판 단한다. 피해자가 느낀 공포심을 기준으로 스토킹 여부를 판단하는 피해자 중심의 법체계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일본은 지난 2000년부터 스토커 규제법을 시행했다. 일본의 스토커 규제 법은 크게 8가지 형태로 스토킹을 규정하고 온라인 스토킹과 명예훼손까지 폭넓게 처벌한다. 경찰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즉각적으로 가해자의 스토킹 행위를 금지할 권한을 갖는다. 접근금지와 같은 스토킹 금지 조치를 위반하 면 6개월 이하 징역 혹은 약 500만 원 벌금형에 처한다. 또한 일본은 지속적 인 법 개정을 통해 가해자 처벌 수준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스토킹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현행법이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어 법과 수사체계를 개선해야 한단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스토킹 처벌법 시행 뒤 드러나는 허점을 법 개정을 통해 개선해야 한다”며 “수사기관 또한 스토킹 범죄 가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란 인식하에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스토킹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고 이를 강력히 처벌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나리나 기자 04rinaisme@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