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는 지난 3월 유사·중복학과(부) 폐과존치(이하 폐과존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큰 갈등을 빚었다. 학교와 학생 간의 팽팽한 대립 끝에 최종 학칙 개정 안이 발표됐지만 구체적인 시행 과정 및 세부 논의들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이후 지난 10월 신설학과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며 이에 따른 다양한 의견이 잇따르고 있다. 우리학교의 폐과존치 과정과 그 연장선상에 있는 신설학과 논의에 대해 살펴보자.
◆폐과존치 결정, 그 이후
지난 3월 우리학교는 폐과존치에 대한 결정을 공식화했다. 학생 사회는 총장과의 대화를 비롯한 학교 측과의 다양한 간담회를 통해 양 캠퍼스(이하 양캠)의 우려사항을 전달했으나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지난 5월 4일 학생 측의 반대에도 학칙 개정안은 학교 법인 이사회 회의를 최종적으로 통과했다. 폐과존치 결정에 따라 우리학교 글로벌캠퍼스(이하 글캠) 통번역대학 소속의 △영어통번역학부△일본어통번역학과△중국어통번역학과△태국어통번역학과 총 4개 학과와 국제지역대학 소속인 △러시아학과△브라질학과△인도학과△프랑스학과 총 4개 학과가 폐과존치 대상이 됐다. 또한 폐과존치를 통해 생겨난 입학 정원 291명 중 170명을 활용해 자유전공학부인 ‘글로벌 자유전공학부(인문)’와 ‘글로벌자유전공학부(자연)’를 신설해 이번 해 입시기간부터 신입생을 모집하기로 결정했다. 글로벌자유전공학부는 인문계와 자연계열 모두 지원가능한 학과로 문이과 통합 과정의 취지에 맞춰 필수 교과목을 수강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인문계열로 입학한 학생은 1학년 때 인공지능(AI)관련 기초과목과 코딩을 학습하고 자연계열로 입학한 학생은 1학년 때 회화와 글쓰기 수업을 수강한다. 2학년부터는 계열에 관계없이 글캠 내 학과 중 주전공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학교 측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학칙 개정안은 양캠 학생 간의 갈등을 촉발했다. 또한 학칙 개정 최종안에 상위 학과로의 제1전공 전환 조항은 파기됐으나 중복학과의 재적생이 0명이 되는 시점 이후에 서울캠퍼스(이하 설캠) 졸업증명서를 수여할 수 있다는 조항이 유 지되면서 학생 측의 반발은 계속됐다. 안건이 통과된 지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현재 폐과존치와 관련 방안에 대한 학생 사회의 표면적인 움직임은 잠잠해진 상태다. 학생사회 내에서 계속되던 문제 제기 또한 현저히 줄었으며 이에 대한 관심 역시 감소했다. 이에 신설되는 학과에 대한 논의에 학생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잇따랐다. 우리학교 학생 A 씨는 “지난 학기에는 폐과존치를 비롯해 여러 학과들에 대한 학생들의 언급이 끊이지 않았지만 최종 학칙 개정안 통과 이후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며 “논 의 현장에 학생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까봐 우려된다”고 밝혔다.
◆학과 신설을 위한 새로운 움직임
지난달 우리학교는 교수진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캠퍼스 신설학과 교 수공청회’를 진행했다. 학교는 지난 6월부터 10월까지 글캠의 학과 신설을 위해 첨단분야 학과와 문화산업분야 학과로 구분된 학과신설 위원회를 운영해왔다. 학과신설위원회는 △관련 분야 전문가 특강△ 기업체 관계자와 입시 전문가 접촉을 통한 의견청취△정책보고서 등 문헌 자료조사의 과정을 통해 학과 신설안을 도출했다. 우리학교에서 실현이 가능하다고 판단된 여러 학문 분야 중 학과 신설의 기본 방향 인 △경쟁환경에 대한 고려△외부환경 변화와의 부합성△우리학교 인프라와의 정합성 3가지 기준에 따라 다양한 신설학과 후보의 방향 성이 거론됐다. 학교 측이 계획한 신설학과의 주된 방향성은 크게 문화산업분야와 첨단분야로 나뉜다.
문화산업분야의 경우 우리나라의 콘텐츠 산업 규모가 확장함에 따라 정부의 지원이 확대되면서 각 기업과의 연계 가능성이 높아진 것과 다양한 외국어 및 지역학 등의 교육 지원기반체계를 갖춘 우리학 교와의 높은 정합성이 주요인으로 설명됐다. 첨단분야의 경우 국가 기간 산업으로서 정부 정책과의 적합성과 기존 공과계열 학과와의 높은 연계가능성이 긍정적인 지점으로 언급됐다. 이에 따라 신설학과 가안에는 문화산업분야의 △글로벌 문화산업융합대학 소속 Culture & Technology 학부와 Hotel & Tourism 학부가 소개됐고 첨단분야의 △공과대학 소속 반도체전공과 AI전공△경상대학 소속 핀테크전공 과 ESG금융전공△에너지융합전공이 가능한 방안으로 소개됐다. 그 중 문화산업분야의 글로벌 문화산업융합대학은 단과대학 규모의 신설을 다루고 있고 첨단 분야의 에너지융합전공은 독립학부로서 학부 규모의 신설을 다뤄 기존 단과대학에 새로운 학부가 추가되는 다른 대안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교육과정△전공 및 학과 여부△정원 규모 등 신설학과와 관련된 대다수의 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은 상태이며 구체적인 사안은 학내 구성원의 의견 수렴과정을 비롯한 안건 보완 절차 이후에 공식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그러나 폐과존치로 인해 나타난 공백을 신설학과 인원으로 보완하자는 의견엔 여전히 많은 학교 구성원이 우려의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학교 측의 신설학과 관련 논의 또는 움직임을 학내 구성원 대다수가 인지하기 어렵고 신설학과와 관련한 대다수의 부분이 미정 상태이 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학교 교수 B 씨는 “학과를 신설하더라도 소수의 학과만을 우선 신설해 집중 투자를 진행한 후 장기적으로 신설학 과를 천천히 늘려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나아가야 할 방향
최근 서울특별시 소재 대학교의 인문사회 계열 학과 수가 크게 줄고 공학 계열 학과가 늘어나며 고등학생들의 이공계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문 계열에 특화된 우리학교가 어문학과 외의 다양한 방면에 투자를 확대해 나가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로 여겨진다. 그러나 기존에 논의되던 폐과존치 문제를 검토하지 않고서는 학과 신설을 고려할 수 없는 만큼 많은 우려도 뒤따르고 있다.
신설학과 논의에 대한 학내 구성원의 부정적인 반응이 예상되는 지점은 크게 △비용△타당성△구체성 측면이다. 비용적 측면에서는 반도체와 AI 관련 전공 학과들에 대한 우려가 크다. 공학 관련 학과는 설비 투자에 비교적 큰 비용이 소모될 뿐만 아니라 시류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세부적인 가용예산이 계획되지 않아 학내 구성원 간 구체적인 논의는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기존 공과대학 내 학과들에 대한 시설보수와 지원이 충분치 않은 상황임에도 추가로 학과를 신설하는 것에 대한 구성 원의 동의를 구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
타당성 측면에서도 해결되지 못한 숙제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가안으로 제시된 신설학과나 이외의 여러 신설학과 후보가 기존의 학과와 중복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글로벌 문화산업융합대학의 경우 지난해 글캠에 신설된 융합인재대학과 교육 구성 및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세부 학과 중 Culture & Technology 학부는 설캠의 미 디어커뮤니케이션 학부와 유사한 학과 방향성을 띄고 있다. AI전공의 경우 설캠에 신설될 예정인 AI첨단학과와 중복되는 학과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고 실제로 현재 양캠에서 수강할 수 있는 AI융합전 공과 강의 구성이 매우 유사하다. 이는 신설된 학과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할뿐만 아니라 유사학과라는 이유로 기존에 폐과된 학과와 비교 했을 때 학과 신설의 타당성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중복학과를 없애기 위해 시작된 논의가 중복학과를 만들어내는 결정에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폐과존치 결정에서부터 신설학과 방안까지 이어지는 논의의 구체성에 대한 논란도 예측된다. 두 가지의 문제 모두 단순히 하나의 학과에 관한 문제가 아닌 △교수진△교육과정△정원 등 논의돼야 할 수많은 세부사항이 존재함에도 아직 대다수의 결정이 미지수인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리학교 기획조정처 관계자는 “신설학과 관련 논의는 현재 의견수렴 및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학교가 확정한 후 추진하는 사업이 아닌 만큼 종합적인 고려하에 신설학과 관련 논의를 보완해나갈 예정이다”고 밝혔다.
우리학교는 지난 2014년 본교와 분교를 통합한 뒤 이원화 캠퍼스 체제로 전환했다. 설캠과 글캠을 각각 어학과 지역학·통번역학 위주 로 운영한다고 밝혔으나 실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단 의견이 다수 존재한다. 학령인구가 급감하고 어문 계열 학과의 선호도가 하락하면서 우리학교의 폐과존치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소외되고 폐과 이후의 구체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못하는 등 졸속처리 논란이 일었다. 폐과존치의 또 다른 연장선으로 떠오른 신설학과 논의에서도 여전히 구체적인 방안이나 논의의 장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학과 신설에 대한 논의가 우리학교의 새로 운 돌파구가 될 수 있도록 학내 구성원들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 비 기자 04hanbi@hufs.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