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이후 14년간 동결 기조를 이어오던 등록금이 최근 인상 조짐을 보였다. 윤석열 정부는 대학교의 자율성 확대를 내세우며 동결됐던 등록금의 인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어 지난달 14일 교육부 출입 기자단의 ‘등록금 인상’ 관련 설문에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 정기총회에 참석한 전국 4년 제 대학교 총장 가운데 절반가량이 ‘이번 해부터 다음 해까지 등록금 인상을 검 토하고 있다’고 밝히며 등록금 인상 기류에 속도가 붙었다. △14년간 동결된 등 록금의 역사△재점화된 등록금 인상 논의△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14년간 동결된 등록금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등록금은 매해 뜨거운 쟁점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 까지 각 대학교의 학생회에선 등록금 인상을 저지하기 위한 움직임이 계속됐다. 서울특별시 청계광장은 등록금 동결을 요구하는 구호 를 외치고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로 북적였다. 등록금 정책이 논의되기 이전인 지난 2008년엔 우리학교를 비롯해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한양대학교 등의 대학교가 10% 내외의 등록금 인 상을 단행했다.
대학생들이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를 계속하자 정치권에선 등록금 관련 정책 논의가 시작됐다. 이때부터 ‘반값 등록금’이란 용어가 등 장했고 지금의 등록금 동결 기조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 2011년 고등교육법이 개정됨에 따라 ‘등록금 인상 상한제’가 도입됐 다. 고등교육법 제11조 제10항에 따르면 각 대학교의 등록금 인상률 은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 물가 상승률의 1.5배를 초과할 수 없다. 또한 이를 위반한 경우 고등교육법 제11조 제11항에 따라 교육 부 장관이 해당 대학교에 재정 및 행정적 제재 등의 불이익을 가할 수 있다.
그러나 치솟은 등록금으로 인한 학생들의 부담은 줄지 않았고 심지어 지난 2011년엔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등록금 부담 완화 방안’을 발표하고 이듬해인 2012 년부터 국가장학금 제도를 도입해 등록금 부담을 완화하고자 했다. 특히 국가장학금 Ⅱ유형을 통해 등록금을 동결 및 인하한 대학교에 만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가 시행됐다. 국가장학금 Ⅱ유형 연계 제도는 대학교의 등록금 동결 및 인하에 따라 대학교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을 달리하는 제도다. 지원금과 연계된 국가장학금 Ⅱ유형은 그 동안 대학교의 등록금 인상 시도를 억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 용해왔다. 실제로 ‘2022년 4월 대학정보공시 분석 결과’에 따르면 4 년제 교육대학교와 일반대학교 194개 가운데 96.9%에 해당하는 188 개의 대학교가 본 제도 시행 이후 등록금을 동결 또는 인하했다.
◆재점화된 등록금 인상
지난 정부에서도 대학교 등록금 동결 기조는 유지됐다. 그러나 지난 해 5월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엔 이번 해부터 국가장학금 Ⅱ유형과 연계한 등록금 관련 규제를 단계적으 로 개선하겠다는 내용이 담기며 논란이 일었다. 사실상 대학교에 등 록금 인상의 기회를 열어준 것이 아니냐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이후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교육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현재 논 의 중인 사안은 아니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최근 다시 불붙기 시작한 등록금 인상 논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의한 물가 상승에 따라 국가장학금 Ⅱ유형 지원을 포기하고 등록금을 인상하는 게 더 큰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대학교들의 계산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시작된 세계 경제 위기가 국내 고물가 현상 으로 이어지며 물가상승률이 지난해의 두 배인 5.1%에 달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등록금 인상률의 법정 상한선은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 률 2.7%의 1.5배인 4.05%까지 올랐다.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다음 해 등록금 인상률의 법정 상한선은 5.085%로 추산된다. 실제로 동아 대학교(이하 동아대)는 이번 해부터 학부 등록금을 3.95% 인상했다. 교육계에선 동아대의 등록금 인상에 따른 이익인 50억 원이 국가장 학금 Ⅱ유형으로 지원받는 금액인 20억 원보다 30억 원가량 많아 이같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부산교육대학교와 진주교육대 학교 등도 2023학년도 등록금을 3-4%가량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등록금 인상 물결은 대학교들의 등록금 인상을 억제하기 위한 정 부의 제재가 사라졌기 때문이란 의견도 나왔다. 지난달 8일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교들에 대한 조치를 묻는 질문 에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교에 대한 추가 제재나 동결 및 인하한 대 학교를 위한 지원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해당 발언이 대학교의 등록금 인상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임은 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이하 임 연구원)은 “추가적인 대책을 내 놓거나 국가장학금 Ⅱ유형 지원 예산을 확대하지 않는다면 대학교 들은 등록금 수익과 국가장학금 지원 예산을 계산해보고 결국 등록 금을 인상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한편 지방 대학교의 경우 최근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른 등록금 인 상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경동대학교△경주대학교△세한대학교 △영남신학대학교 등이 등록금을 인상했다. 그러나 등록금을 올리면 신입생 유치가 더욱 어려워져 쉽사리 등록금에 관한 결정을 내리기 도 힘든 실정이다. 전북권 사립대학교 관계자는 “수도권 집중 현상과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지방에 남는 학생이 없는데 국가장학금까지 제한되면 지방 대학교의 피해는 더 커질 것이다”고 우려했다.
등록금 인상의 또 다른 근본적인 원인으론 계속된 등록금 동결에 따른 재정난이 지목된다. 지난 1월 대교협은 ‘정보공시를 통해 본 등록금 및 교육비 분석’의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해 10월 공시 기준 4년제 일반대학교의 2022년 대학교 평균 등록금 은 679만 4,000원으로 등록금 규제를 내놓기 직전인 2008년과 비교해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반면 전국 4년제 사립대학교(이하 사 립대)는 지난 2017년부터 매해 적자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대교협이 발표한 ‘사립대 재정 운영 현황 분석’에 따르면 전국 156개 사립대의 실질 운영수익과 운영비용은 각각 14조 5,251억 원과 14조 6,806억 원으로 평균 약 1,555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대학교는 △도서구입비△실험실습비△연구비 등 교육을 위한 재정 투자 규모를 지난 2011년 1조 7,680억 원에서 지난해 1조 4,218억 원으 로 줄일 수밖에 없던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야 할 방향
학령인구의 감소와 오랜 기간 동결된 등록금으로 대학교가 재정난에 몰린 것은 사실이다. 등록금 인상이 대학교의 가장 손쉬운 재정 확보 방안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등록금 인상을 통해 학생과 학부 모에게 부담을 전가시키며 재정난을 해결하려는 것은 설득력이 떨 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등록금은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높은 수준이다. 임 연구원은 “지난 14년간 등록금이 동결됐다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 국가 중 비싼 축에 속한 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OECD에 관련 자료를 제출한 27 개국 중 우리나라 국·공립대학교의 등록금은 8번째로 높았고 사립 대의 등록금은 18개국 중 7번째로 높았다.
대학교의 높은 등록금 의존도 역시 등록금 인상의 설득력을 떨어지게 하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지난 2월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는 “대학 본부와 법인은 전입금을 납부하고 재정 구조를 개편하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2020년 결산 기준 사립대는 평균적으로 재정의 54%를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지만 재단 전입금은 8% 에 불과했다. 특히 사립대의 회계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으로 지난 2019부터 2021년까지 이뤄진 교육부의 대학교 감사에서 교비회계 지적사항은 428건에 달했다.
이외에도 대학교들의 등록금 인상을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정부는 재정지원대학교를 선정할 때 대학기 본역량진단을 기반으로 선정한다. 하지만 대학기본역량진단을 시행하는 한국교육개발원의 ‘2021년 대학 진단 지표’에 따르면 대학교 진 단 지표로 △대학 발전계획△법인 책무성△전임교원 확보율△학생 충원율 등이 존재했지만 등록금과 관련된 지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의 진단 지표를 개선해 등록금 인상을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등록금 인상률을 진단 지표에 반영한다면 대학들의 등록금 인상을 효율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재정 및 정책적 지원의 확대가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대교협 관계자는 “국가 차원에서 대학교의 재정 부담을 완화하고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재정 및 정책적 지원 강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재정 투입은 OECD 평균을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지난 2019년 우리나라 학생 1인당 고등교육 공교육비는 1만 1,287달러(약 1,330만 원)로 OECD 38개국 중 30위에 그쳤다. OECD 평균인 1만 7,559달러 (약 2,070만 원)의 64.3% 수준이다. 그중 정부 부담 학생 1인당 공교 육비는 4,323달러(약 509만 원)로 38개국 중 32위에 불과했다. 이는 교육비의 절반 이상을 민간이 부담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국내총 생산(GDP) 대비 정부의 고등교육 지원 비율 역시 지난 2019년 기준 0.6%로 OECD 평균인 0.9%보다 낮았다. 이에 고등교육 예산 증액을 위한 고등교육 재정교부금법을 신설하는 방안과 고등·평생교육 특 별회계를 통해 교육세를 고등교육 재원으로 전환해 활용하는 방안 등이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김병국 전국대학노동조합 정책실장 은 “단순히 등록금을 올리는 것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의 재정 지원 을 늘려주는 고등교육 재정확충법안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편 양 정호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정부가 대학교에 재정 지원을 하더라도 구조조정 등 대학교에서도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제언 했다.
14년간 동결됐던 등록금이 인상될 기류가 보이자 등록금 인상을 놓고 △대학교△정부△학생 간의 견해 차이가 두드러지고 있다. 대학교는 재정 구조를 개편하고 정부는 재정 및 정책적 지원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등 상호보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등록금 문제가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만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시원한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황동현 기자 06donghyu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