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사라지고 있다고?

등록일 2023년12월06일 18시3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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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초에 생태학자들은 미국식 소비주의로 계속 살려면 지구가 하나로 부족하고 여섯 개 더 필요하다고 했다. 환경위기와 무분별한 소비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말이었다. 2023년 지금 우리나라 국민의 소비를 감당하려면 우리나라는 몇 개가 더 필요할까? ‘글로벌 생태 발자국 네트워크’(Global Footprint Network)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면적의 9배가 필요하다고 한다. 지구라는 공간도, 대한민국이라는 공간도 이미 자원이 고갈된 단계에 진입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처럼 심각한 생태위기 시절에 우리는 어떻게 버티고 있는가? 시공간적으로 모두 적자다. 시간적으로는 미래의 것을 끌어다 쓰고, 공간적으로는 나라 밖에서 온갖 자원을 수입한다. 지금은 당겨쓰는 것이 가능할지 몰라도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을 생각하면 이마저도 곧 불가능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 식량자원을 포함하여 수입 의존도가 높은 여러 자원들도 전쟁이나 재난이 닥치면 수급이 힘들어질 것이다. 우리 일상에 닥칠 위기는 쉽게 상상 가능하다.

 

위기는 더 있다. 최근 <뉴욕 타임즈>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Is South Korea Disappearing?”(한국이 소멸하고 있는가?) 놀라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조목조목 수치를 가지고 온 그 글은 한국의 출산율 감소가 14세기 유럽의 흑사병이 가져온 인구감소보다 더 크다고 말한다. 세대교체를 두 번 거치고 나면 200명의 인구가 25명 미만으로 떨어진다고. 이쯤 되면 인구감소가 아니라 인구붕괴에 가깝다.

 

그 기사를 쓴 필자는 2060년대 후반에 이르면 인구가 3500만 명 미안으로 급감할 거라고 예측한다. 이전에도 OECD 38개 국가 중 인구소멸국가 1호로 한국이 지목되었다. 이대로 가면 2300년엔 아예 한국이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란 경고는 여러 번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지금의 생태위기에서 그때까지 지구가 버티어줄 지도 의문이지만 어떻게든 해법은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 인구붕괴의 원인을 살펴보면 이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다는 게 자명해 진다. 누군가는 양육에 필요한 경제적 조건을 말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다. 과도한 경쟁 사회에서 불안이 삶의 기본값이 되었고 행복지수는 낮다. 이 지옥 같은 삶 속에 누구도 아이를 낳을 생각을 선뜻 하지 못한다. 직업과 거주가 해결된 젊은 세대조차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 것이 그를 입증한다. 그러니 출산 보조금 정책이 실패하는 것이다.

 

요지는 내가 몸담고 있는 이 땅, 이 공간이 살 만한 곳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지금-여기’가 즐거워야, 희망이 있어야, 이걸 다음 세대에 잇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서 오는가? 희망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공생의 삶 속에서 싹튼다. 가난이나 결핍이 가장 큰 문제 같지만, 더 큰 위기는 그 이면에 있다. 돈이 있어도, 배가 불러도 행복하지 않고 희망이 없다면? 이 삶이 무의미하다면? 상대적 빈곤에 계속 시달린다면? 계속 불안하다면?

 

그래서 우리는 당장의 셈법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치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어야 한다. 이를테면 행복한 삶을 체감하고 만드는 법, 지금-여기에서 타인을 돌아보면서 숨 쉴 여유를 만드는 것, 일터가 생명을 앗아가는 곳이 안 되는 안전장치를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것, 무한경쟁의 줄 세우기가 아니라 서로 돕는 상생의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 등.

 

그러니 당장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일 못지않게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보이지 않는 가치를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대학이 처한 여러 문제를 앞에 두고서도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가운데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염두에 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시선이나 계획이 있는지? 그걸 우리는 비전이라 한다. 공생의 삶을 위해 일상에서 크고 작은 실천을 하는 것에서부터 돈으로 환산 안 되는 가치들, 공동체의 성격과 대학의 역할을 계속 질문하는 일이 모두 포함된다. 연약한 것들을 보듬어 키워내고, 과거의 역사, 다른 문화를 살펴야 한다. 이윤 논리만 쫓지 말고, 무엇이 사람을 살게 하는지를 되물어야 한다. 무엇이 우리를 살고 싶게 만드는지? 어떨 때 삶의 보람이 있는지? 나라도, 학교도, 사람이 없으면 무엇이 있겠는가. 평화와 공생,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질문들은 계속되어야 한다.

 

 

·정은귀(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외대학보 편집인 겸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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