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는 전국의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행정전산망 ‘세올’이 마비됐다고 알렸다. 이로 인해 여러 행정 서비스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또한 세올 뿐만 아니라 정부의 주요 전산망들이 연이어 마비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확대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아직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번 국가 행정 마비 사태에 대해 Δ국가행정망 전산 마비 사태의 현황Δ해당 사태의 원인과 정부의 대처Δ재발 방지 대책에 대해 알아보자.
◆국가행정망 전산 마비 사태와 현황
지난달 17일 오전 행안부는 국가행정망 전산이 일부 마비됐음을 알렸다. 행안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모든 시·군·구에서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세올’에 오류가 발생해 주민등록등본 발급 및 행정복지센터 민원 업무 처리가 지연돼 혼란이 빚어졌다. 세올에 이어 여러 행정 전산망 서비스가 마비됐고 정부24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 또한 작동이 원활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시민들은 주요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것에 불편을 겪었다. 더불어 은행이나 부동산 거래와 같은 경제적인 업무 역시 지연됐다. 인감증명서나 본인서명사실확인서 등 본인 인증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행정 업무에 대한 차질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위급한 상황에 시민들을 구출하고 호송하는 119 구급대 활동에 필요한 행정망 서비스 역시 마비됐다. 긴급한 상황에서 상황 전파 역할을 하는 국가재난관리시스템(NDMS)과 소방당국이 신고자의 위치를 파악할 때 사용하는 지리정보 시스템(GIS)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신고자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대해 경기도 소방본부는 “신고자의 위치 추적 등을 수동으로 조회하는 시스템에 차질이 생겨 경찰을 통해 위치를 조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또한 제주 소방본부 역시 “행안부 전산망이 마비된 오전부터 오후까지 신고자의 위치 추적에 차질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지난달 17일부터 수일에 걸쳐 연속적으로 여러 정부 행정 기관의 전산망이 마비됐다. 지난달 22일엔 외교부 인사관리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켰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다음 날 지방 보조금 관리 시스템에 접속 장애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알려졌다. 또한 이날 조달청 나라장터도 잠시 마비됐다. 지난달 24일엔 4일간 경찰 사이버 범죄 신고 사이트가 먹통이 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더불어 학교폭력을 문자 메시지로 신고하는 시스템은 2개월 동안 마비 상태였음이 밝혀져 또 다른 논란을 빚었다. 이에 경찰 측은 해당 전산망을 관리하는 용역 업체의 관리 부실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고용24’의 서비스가 접속 장애를 일으켰고 △정부 모바일 신분증 누리집△정부 전자증명서 발급 서비스△애플리케이션에서도 접속 장애가 발생했다. 지난달 27일의 경우 서울 소방재난본부의 전산망 일부가 1시간 가량 장애를 일으켰고 이틀 후인 29일엔 지방재정관리시스템 ‘e호조’가 잠시 마비되기도 했다.
◆해당 사태의 원인과 정부의 대처
이번 사태는 시민과 공무원들에게 행정적인 불편을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손실 및 자칫하면 인명 피해로 이어질 정도로 중대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하지만 정부는 해당 사태가 최초 발생한지 3일이 지난 시점인 지난달 20일에도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한 명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달 20일 정부는 여러 개의 서버를 운영할 때 발생하는 부하를 분산시켜 주는 ‘GPK 인증 서비스 L4 스위치(이하 L4 스위치)’의 장애를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와 관련해서 IT 관련 전문가들 사이 의견 차이가 나타났는데 행안부 질의응답에서 L4 스위치를 새 장비로 교체했으나 사태가 해결되지 않아 이것이 원인이 아니었음이 밝혀지면서 비판이 제기됐다. 고기동 행안부 차관은 해당 문제는 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적 오류라고 설명했다. 소프트웨어를 새로운 버전으로 업데이트할 때 오류가 발생했으나 이를 백업할 장비도 고장이 나 해당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지난달 25일 행안부는 최종적으로 전산망 장애의 원인을 네트워크 장비 불량으로 결론내렸다. 행정기관의 네트워크를 이어주는 장비인 라우터의 포트 세 개가 불량이었던 것이 발견된 것이다. 또한 행정망 전산 구조가 이런 종류의 사고에 취약한 구조였던 것이 드러났다. 우리나라는 본인 인증을 하는 경우 개인정보가 행안부와 경찰청 전산을 통해 각 행정기관에 전달되는 구조이기에 행안부와 경찰청 전산망이 무력화되면 본인 인증을 진행하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전산망 복구를 위한 시스템이 비효율적이란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행정전산망 백업 데이터가 ‘스토리지(Storage)’ 형식으로 저장돼 있었는데 스토리지에 저장된 데이터를 IT업체 직원들이 일일이 수동으로 옮겨야 했기에 전산망 복구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번 사태가 벌어진 이후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18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을 찾아 “국민께 불편을 끼쳐서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현 상황을 조속히 극복하겠다”고 전하며 재발 방지 또한 중요함을 강조했다. 더불어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행정망 오류 현장 점검에 나서며 “재개된 서비스가 더욱 안정화돼 당장 내일부터 국민께서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입장을 발표했다. 이 밖에도 국내 여러 정당이 해당 사태에 대한 대책 마련과 정부에 대한 비판 의견을 개진했다. 한편 정부는 해당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고자 국가전산망 마비를 재난으로 규정했으며 행정망을 구성하는 데 민간 IT 기업을 참여시켜 전산 설비와 그 운영의 발전을 도모했다.
◆재발 방지 대책 행정망
전산 마비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Δ최저가 입찰제 문제 해결Δ 정부의 추가적인 지원Δ행정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한 경찰 관계자는 “현재 행정망을 구축하기 위한 장비의 구매는 보통 최저가 입찰제를 통해 이뤄진다”며 “가격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높은 품질과 믿을만한 기업의 전산 장비를 구매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정부의 추가적인 지원 역시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해 전자정부 지원 사업엔 약 493억 원이 지원됐는데 내년엔 126억 원 가량 삭감돼 약 367억 원으로 줄어든다. 행안부는 라우터의 수명은 9년이고 현재 행정부에서 사용하는 라우터는 7년을 썼기 때문에 장비가 노후화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채효근 IT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은 “사용 연한이 지난 서버 장비와 네트워크 장비가 많다”며 “예산이 부족해 노후화된 장비 중 일부만 교체하다 보니 구식 장비와 시스템 충돌을 일으키는 것 이다”고 최신 장비로의 빠른 교체를 촉구했다. 또한 김승주 고려대학교 정보 보호대학원 교수는 “AI나 클라우드화는 시스템이 견고해야 한다”며 “서버나 장비의 유지 보수 예산이 오히려 줄고 있어 대기업들이 사업에 참여하기 꺼려하는 상황이다”고 추가적인 예산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행정구조의 개편도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 대부분의 개인정보가 행안부와 경찰기관만을 거쳐 간다. 이러한 행정구조를 개편해 행안부와 경찰의 행정망 전산이 마비돼도 다른 행정기구에서 개인정보 관련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서버의 복구를 위한 백업 장치로 번거로운 스토리지 방식을 쓰는 것이 아닌 즉각적으로 복구할 수 있는 서버 형식을 사용해야 한다. 이에 대해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장은 “기존 시스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IT 시스템 판도를 바꿔야 한다”며 “행정 시스템을 클라우드 네이티브로 전환하면 마이크로서비 스아키텍처(MSA) 구조를 통해 장애 발생 시 신속 대응할 수 있고 유지·보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2021년 10월 미국에선 1조 5000억 원 규모에 달하는 손실을 발생시킨 전산장애 사태가 벌어졌다. 중간 서버 역할을 하는 컨텐츠 전송 네트워크 업체인 ‘패스틀리(Fastly)’가 전산망 업데이트 중 사이트 오류로 인해 미국 백악관과 영국 정부와 같은 국가 주요 시설부터 여러 민간기업에 이르기 까지 전산망 오류가 발생했고 이에 큰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지난 2020년 6월엔 미국의 통신사와 소셜네트워크 기업을 향한 디도스(D-DOS) 공격이 감행됐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비상계획을 수립할 것을 강조하며 전산망이 무력화됐을 때 곧바로 서버를 복구할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현대 사회는 일명 ‘초 연결 사회’라고 불린다. 시민들부터 정부까지 국가 대 부분의 기반 시설이 정보화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망 전산을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에 실패한다면 자칫하면 국가 전체가 ‘일시정지’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시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앞으로 우리나라의 각계각층이 안전한 행정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도현 기자 07dohyu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