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학기 우리학교 스페인어과에서 학생예비군 훈련 일정을 고려하지 않고 학생회비를 이용한 간식행사 일정을 확정해 학생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속출했다. 지난달에는 인문대학의 야구 단체 관람 행사가 학생들의 흥미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감사 과정에서 드러난 학생회비의 부적절한 운용 사례는 이전부터 꾸준히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이에 △학생회비 운용 문제의 현황△학생회비 운용 문제의 원인△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학생회비 운용 문제의 현황
지난 1학기 우리학교 스페인어과는 학생예비군 훈련 일정 중 간식행사를 진행해 논란을 야기했다. 당시 우리학교 재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에는 ‘예비군 갔는데 스페인어과 간식행사 하더라’란 내용의 글이 게시됐다. 해당 게시물을 본 우리학교 재학생들은 ‘학생예비군 일정은 한참 전에 공지됐지만 간식행사는 거의 당일 공지였다’며 학생예비군 훈련 일정을 고려하지 않은 학생회에 대한 불만의 댓글을 남겼다. 이후 스페인어과는 인스타그램(Instagram)을 통해 해당 사안에 대한 사과문을 게시했다.
우리학교 인문대학(이하 인문대)에선 지난 1일 ‘야구 단체 관람 행사’를 개최했는데 학생 중 일부가 ‘야구에 관심 없는 학생들을 배려하지 않은 행사 아니냐’며 불만을 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해당 행사는 행사 개최에 관련된 수요 조사 없이 개최를 확정 지은 후 관람 경기 일자에 대한 수요 조사만 진행했다는 것이 밝혀져 논란이 가중됐다.
그뿐만 아니라 학생회비 운용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해 발생한 문제가 감사 과정에서 밝혀진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우리학교 일본어통번역학과에서 학생회비로 학생회 부원들끼리 ‘네 컷 사진’을 찍었던 사실이 감사 과정에서 밝혀진 바 있다. 해당 감사 결과가 나온 후 일본어통번역학과 학생회는 인스타그램에 사과문을 게시하며 ‘개인 사용이 이뤄지고 있음을 학생회가 뒤늦게 인지했다’고 해명했다. 스칸디나비아어과는 지난 서양어대학 상반기 정기 감사에서 영수증 양식에 지출 일자를 오기재하고 증빙자료에 기재된 품목과 결산안 및 영수증 양식 비고란이 일치하지 않았으나 이에 대한 시정이 이뤄지지 않아 경고 1회를 받고 사과문을 게재했다.
현재 우리학교 대부분의 학과에선 신입생을 대상으로 학생회비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이번 해 입학한 신입생을 기준으로 △국제통상학과 12만원△네덜란드어과 15만원△독일어과 15만원△스칸디나비아어과 16만원△세르비아크로아티아어과 25만원△영어교육과 20만원의 학생회비를 걷었다. 많은 신입생들이 10여만 원이란 적지 않은 금액을 납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학교에선 학생회비가 학생들을 충분히 배려하지 않은 채로 사용되고 있다.
◆학생회비 운용 문제의 원인
학생회비 운용에서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기획 과정에서 진행하고자 하는 행사와 겹치는 주요 일정에 대한 조사가 부족했단 점이다. 지난 6월 4일 스페인어과에서 진행한 간식행사 일정이 학생예비군 훈련 일자와 겹쳤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학생예비군 훈련의 일정은 지난 5월 8일에 공지됐으나 스페인어과에 간식행사가 처음 공지된 날은 지난 6월 3일이었다. 이로 인해 스페인어과 학생 중 일부 학생예비군 훈련 대상자의 경우 학생회비를 납부했음에도 간식행사에 참여할 수 없었다. 해당 사건이 에타를 통해 논란이 되자 스페인어과 학생회에선 간식행사 하루 뒤에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다. 스페인어과 학생회는 사과문에서 ‘시험 2주 전 목요일에 간식행사를 진행하는 기존의 관례와 공휴일을 고려해 일자를 조정했지만 작년과 달리 예비군 훈련 일정이 2주가량 밀렸다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는 곧 학생회 측에서 행사 기획 과정에서 주요 일정에 대한 충분한 사전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관련해 외대학보에서는 스페인어과 학생회 측에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스페인어과 학생회는 ‘별도로 밝힐 입장이 없다’고 전했다.
행사 기획 과정에서의 수요 조사가 부족했다는 점 역시 또 다른 원인이다. 앞서 언급한 인문대의 사례에서 인문대 학생 A 씨는 에타를 통해 ‘학과에 야구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해도 야구를 보지 않는 사람들에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사라고 생각한다’며 ‘그 정도의 예산을 사용한다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일반적인 행사를 하는 게 정상 아니냐’고 주장했다. A 씨는 외대학보와의 인터뷰에서도 “타 행사들과는 달리 야구 단체 관람 행사는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참여 여부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사이기에 더더욱 행사 수요 조사나 의견 수렴 과정이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행사 기획 과정 전반에서 아무런 소통이 없었다 보니 학생회가 어떤 취지로 이런 행사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울러 A 씨는 “학생들이 원하는 행사를 건의하고자 해도 마땅한 창구가 없을뿐더러 실명을 밝혀가며 이야기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고 학생회와 학생들 간의 적절한 소통 창구가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해당 사안이 화제가 됐음에도 인문대 측은 별도의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으며 외대학보에서 인터뷰를 요청했음에도 응답을 받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학과 세칙 내에 학생회비 사용 내역 공개 의무화 조항이 없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우리학교 각 학과별 세칙을 살펴보면 ‘학생회비 사용 내역을 의무적으로 상시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의 조항이 없는 경우가 더러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어통번역학과의 학과 세칙 제67조 2항에선 ‘본 과 학생의 요구가 있을 시에는 결산내역을 공개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사실상 학생의 요구가 없을 경우 학생회비의 사용처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 학과에서 학생회비를 자체적으로 운용함에도 불구하고 세칙 차원에서 사용내역의 공개를 강제하지 않는다면 투명성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해 김서현(통번역독일어 23) 독일어통번역학과 학생회장은 “학생회비 사용내역 공개에 대해 실질적인 강제성을 부여하는 조항은 없다”며 “학기마다 중앙감사위원회에서 감사를 진행하고 있긴 하지만 일반 학생들이 관련 자료를 열람하기 위해선 희망자가 직접 학생회에 요청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독일어통번역학과 학생회에서도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껴 현재 개정 논의 중에 있다”며 세칙 개정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아가야 할 방향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학생회와 학생 사이의 충분한 의사소통 및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하다. 관련해 익명성이 보장되는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해 소통 창구를 마련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대학교 학생회에선 인스타그램을 주요 소통 창구로 활용하고 있으나 이는 익명성이 완전히 보장되지 않는단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카카오톡 익명 오픈채팅방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우리학교에서도 △국제통상학과△독일어과△언어인지과학과△정치외교학과△포르투갈어과 등 많은 학과에서 소통 창구로 오픈채팅방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경희대학교(이하 경희대) 행정학과에선 학부생의 익명성을 보장함과 동시에 모든 학생들이 함께 소통 내용을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인 ‘에스크(asked)’를 활용하고 있다. 경희대 행정학과는 에스크를 통해 익명으로 들어오는 질문에는 공개적으로 답변을 해 비슷한 질문 사항이 있는 학생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건의 사항이 들어오면 이를 처리한 후 현황까지 함께 공지하고 있다. ‘구글 폼(Google Forms)’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이번 학기부터 우리학교 철학과에선 ‘과 행사 기획 참여 구글 폼’을 열어 학생들이 학생회에게 직접 원하는 학과 행사를 건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에선 행사를 진행한 후에 해당 행사와 관련된 피드백을 구글 폼으로 받고 있다. 이렇게 구글 폼을 통해 받은 행사 관련 피드백은 추후 진행될 행사에 반영된다. 이러한 설문조사의 참여율을 제고하기 위해 오프라인 차원의 노력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우리학교 중국학대학과 정치외교학과에선 최근 오프라인에서 학생회와 학생들이 직접 만나 학생회 행사와 관련된 온라인 설문조사에 참여를 독려하고 이에 따른 상품을 제공하는 ‘이동학생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나아가 학생들이 학생회비의 투명한 운영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학생회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학생회가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재정 관련 회의의 회의록을 공개하거나 학생들이 확인하기 쉬운 방식을 채택해 학생회비 사용내역을 상시 공개해야 한다. 우선 학생회에서 진행하는 정기회의 내용을 담은 회의록을 △노션(Notion)△인스타그램△학과 홈페이지 등 다양한 플랫폼에 공개해두면 학생들이 해당 회의록을 직접 찾아 읽을 수 있다. 실제로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선 노션을 통해 △국장단 회의록△운영위원회 회의록△집부 전체 회의록을 모두 상시 공개하고 있다. 경희대 사회학과에선 지난해 12월부터 이번 해 7월까지 사용한 학생회비 입출금 내역을 링크트리(Linktree)에 상시 공개하고 있으며 월별 학생회비 사용 증빙자료 또한 분기마다 공개하고 있다. 경희대 수학과에서도 마찬가지로 링크트리를 활용해 직전 학기 학생회비 사용내역을 실물 영수증과 함께 상시 공개하고 있다.
학생회비는 학과의 원활한 운영과 학생들의 즐거운 대학 생활을 위한 소중한 자산이다. 적지 않은 액수의 학생회비가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학생회는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충실히 해낼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한 각 학과 학생회의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은솔 기자 09eunsol@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