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 우리 사회의 숨은 기둥이자 제도 밖의 존재

등록일 2025년05월07일 18시5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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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자’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도 우리나라 사회의 필수 인력을 담당하고 있지만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며 때론 범죄나 사회 불안을 유발하는 존재로 지목되기도 한다. 최근 정부의 단속 강화와 더불어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과 제도적 대응에 대한 논의도 뜨거워지고 있다. △불법체류자 현황과 구조적 원인△사회적 낙인과 제도적 한계△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불법체류자 현황과 구조적 원인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미등록 외국인은 약 42만 명으로 이는 전체 체류 외국인의 약 18%에 해당한다. 이 수치는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들은 주로 △건설업△농축산업△제조업 등 이른바 3D업종*에서 일하며 우리나라 사회의 기초 노동을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1년 연구인 ‘농업부문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 고용실태와 과제’에 따르면 작물 재배 농가의 402곳 중 258곳(64.2%)에서 외국인을 고용하고 있으며 이 중 약 91%가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통계청의 ‘2024년 농림어업조사’에 따르면 농림어업 분야의 외국인 취업자는 약 5만 7천 명에 달하며 제조업 종사자는 약 37만 8천 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존재는 ‘불법’으로 간주돼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미등록 외국인이 발생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그중 하나는 고용주와의 계약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 부족과 그로 인한 사기 문제이다. 고용주가 체류 자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지난 2월 경남 김해의 한 직업전문학교에서 베트남 기술 연수생 13명이 비자 연장을 위해 교육비와 기숙사비 명목으로 1인당 520만 원을 지불했으나 정작 비자 연장은 이뤄지지 않아 미등록 체류자가 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학교 측이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불법적으로 압수했으며 반환을 요구하자 협박성 메시지를 보내며 대응했다”고 주장하며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또한 비자 갱신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행정절차와 고용주의 비협조적인 태도도 주요 요인이다. 비자 연장을 위해선 온라인 예약 및 수수료 납부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데다 고용주가 제때 협조하지 않을 경우 기한 내 갱신이 어려워진다. 실제로 절차를 몰라 갱신에 실패하거나 고용주가 서류 제출을 지연해 체류 자격을 상실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농축산업 및 제조업 분야의 만성적인 인력 부족 현상과 내국인의 근로 기피 현상은 미등록 외국인을 부추기는 주요 이유 중 하나다. 이에 일부 사업주들은 인력 충원을 위해 미등록 외국인을 고용하기도 하며 이는 결국 미등록 체류자의 증가로 이어진다. 한국농촌사회학의 <농촌사회>에 등재된 ‘농축산업 외국인력 활용실태와 정책과제’에선 “농업 분야에서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이 축산업으로 이직하는 경향이 높아 작물재배업에선 인력 부족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며 “농업 분야의 연중 인력 수요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한기엔 본국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보호받지 못하는 불법체류자

‘불법체류자’란 표현은 단순한 법적 지위를 넘어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가리는 결과를 낳는다. ‘불법’이란 단어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을 종종 범죄 유발자나 복지 예산 낭비의 주범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규정하여 이는 결국 사회적 배제를 정당화하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는 2016년 유엔(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불법체류자’란 용어가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해당 용어의 사용을 지양할 것을 권고했다. 이어 2018년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우리나라 정부에 이러한 표현들이 차별을 악화시킨다며 개선을 공식적으로 권고한 바 있다. 이러한 사회적 시선 속에서 이주민들은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우며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조차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나라 사회의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긴 쉽지 않다. 단속을 피해야 하는 상황에서 △교육△법적 절차△의료 등 기본적인 공공서비스에 접근하는 데 큰 제약을 받는다. 실제로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 지원을 담당하던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의 예산을 전면 삭감하고 센터의 폐지를 결정했다. 이러한 제도적 공백은 건강 문제나 교육 기회의 상실로 이어지며 결과적으로 사회 내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또한 경향신문에 따르면 울산시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미등록 외국인을 위해 별도로 진료비의 90%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이들이 기존 공공의료 체계에서 사실상 배제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지난 3월 16일 더나은미래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에서 태어나 24년째 한국에 거주 중인 대학생 A씨는 “부모의 체류 자격이 만료되며 출생 당시부터 미등록 상태가 되었고 정기적인 의료 혜택조차 받기 어려웠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Pandemic) 기간엔 이들의 취약성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많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이 △강제 격리△정보 부족△퇴직금 미지급 등 다양한 어려움을 겪었으며 신분 문제로 인해 불합리한 처우를 받아도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 제도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

 

 

◆나아가야 할 방향

현재 정부의 불법체류자 정책은 단속과 추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법무부는 ‘불법체류 감축 5개년 계획(2023-2027)’의 일환으로 관계 부처와 함께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정부합동단속을 실시하고 있으며 출입국 사범에 대한 연중 상시 단속도 병행 중이다. 특히 국민 안전을 위협하거나 불법 취업을 조장하는 사례에 대해선 집중 단속을 강화하고 있으며 효율적인 집행을 위해 광역단속팀과 이민특수조사대도 운영 중이다. 이러한 정책은 처벌과 강제조치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자진 출국을 유도하는 제도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오히려 이들을 사회의 음지로 몰고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이젠 처벌 중심의 대응을 넘어 △사회적 통합△인권 보장△제도적 정비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고용주에 대한 책임도 강화돼야 한다. 불법 고용에 대한 처벌은 엄격히 하되 합법 고용을 실천하는 고용주에겐 세제 감면과 행정적 인센티브(incentive) 제공 등 실질적인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더불어 △산업 안전 교육△외국인 노동자 대상 인권 교육△통역 지원 확대 등 노동 현장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인프라 정비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인식의 변화다. 학교와 지역 사회에서 다문화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과 교류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일부 지역에선 이미 △이주민 대상 무료 진료소△이주 아동 교육 지원△지역 주민과의 문화교류 프로그램 등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광주광역시 광산구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고려인 마을을 형성하고 이주민과 지역 주민 간의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역 주민들은 상호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주민들은 더 나은 사회적 통합을 경험하고 있다.

 

불법체류자 문제는 단순한 행정적 처리의 대상이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포용성△인권 감수성△지속가능한 노동 구조를 시험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이들을 배제하고 통제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가진 존재로 인정하는 태도 변화가 절실하다. 제도와 인식이 함께 개선될 때 불법체류자 문제는 위기가 아닌 공존의 기회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3D업종: △더러운(Dirty)△위험한(Dangerous)△힘든(Difficult)의 머리글자인 D자를 따서 만든 용어로 주로 제조업광업건축업 등이 꼽힌다.

 

 

이나경 기자 10leenagyeong@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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