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물리학과 문학은 정반대의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 분야가 맞닿을 수 있는 접점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前) 물리학자이자 현(現) 인문학 교수로 재직 중인 라이트먼(Lightman)이 결합한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은 그 접점이 얼마나 예술적인지 증명한다.
물리학의 꽃을 피운 아인슈타인(Einstein)은 자신의 친구 베소(Besso)에게 시간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 아인슈타인은 대략 두 달간 특이하고 오묘한 꿈들을 꾸고 있었다. 지난 1905년 4월 14일부터 6월 28일까지 아인슈타인의 꿈속 배경은 매일 시공간이 색다르게 변형됐다. 시간의 차원이 세 개인 세계는 공간과 마찬가지로 시간 역시 △가로△높이△세로의 서로 수직인 방향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각각의 미래에선 서로 다른 운명이 일어난다. 이 세 차원의 시간은 모두 실존하는 일이며 그 안엔 무수한 세계가 존재한다. 시간이 원 모양인 세계의 사람들은 시간이 정확하게 반복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이는 개미가 샹들리에를 돌아도 자신이 갇혀 있는 것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종말이 있는 세계는 모든 사람이 화목하며 부와 명예도 덧없는 것이 된다. 시간이 멈추는 세계에선 부모들이 자녀를 ‘시간의 중심’ 즉 시간이 가만히 있는 곳으로 데려가 평생 순수한 아이의 모습을 간직하고자 한다. 그러나 다시 시간이 흐르는 곳으로 나오게 되면 그 아이는 성장한 후 부모에게 분노하며 그들을 저주하지만 이후엔 다시 본인의 자녀를 시간의 중심으로 데려가는 상황이 반복된다. 기억이 없는 세계에선 사람들이 매일 서로에게 통성명하며 스스로 기억하도록 일기를 쓴다. 부부 역시 매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서로를 열정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미래를 볼 수 있는 세계는 모험하는 일 없이 그 미래를 그대로 따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가끔 미래를 거스르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 역시 필연적으로 피하려 했던 미래를 맞이한다. 시간을 측정할 수 없는 세계에선 시간이 양이 아니라 질로 여겨진다. 어떤 두 사람의 만남은 시와 분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닌 눈길과 욕구로 형체를 띨 수 있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세계는 속도가 빠른 세계였다. 이 세계에선 사람뿐만 아니라 건물도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이때 속도 효과로 인해 움직이는 사람에겐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여 시간을 벌고 경쟁자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 한다. 하지만 운동 효과가 작용해 아무리 신속하게 움직여도 자신은 남들보다 더 느리게 보인다. 마치 기차 안의 사람에겐 나무가 빠르게 달려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세계는 우리 사회의 ‘빨리빨리 문화’와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리고 남들과 아무리 비교해도 항상 자신이 가장 뒤처져 보이는 것 역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열등감을 표현한다.
역사적으로 아인슈타인은 시간이란 추상적 개념을 가장 물리학적인 측면에서 정의한 과학자이다. 이런 아인슈타인이 꾸는 꿈속 시간의 다양한 양상은 낯설면서도 어딘가 현실 세계의 시간과 닮아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우리는 자연스레 스스로에게 과연 나는 지금 어떤 차원의 시간 속을 살아가고 있으며 내게 주어진 이 찰나의 순간들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지 묻게 된다. 정신없이 하루를 살아가는 대신 물리학과 문학이 결합한 이 경이로운 세계를 통해 진정한 시간의 주인이 되는 법을 고민해 보면 어떨까.
송주원 기자 11juwo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