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의 위기

등록일 2026년05월27일 01시1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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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사과 말씀 드립니다.” 과거 한 행사 주최 측이 일정 변경 안내문에 사용한 표현이다. 그러나 주최 측의 의도와는 다르게 “왜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느냐”는 항의가 쏟아졌다. “심심하다”에 “깊고 간절하다”는 뜻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한 것이다. 비슷하게 사흘을 4일로 오인하고, 금일을 금요일로 이해한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모두들 해당 상황에 대해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개개인의 문해력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문해력은 단어가 놓인 맥락을 읽어 내는 능력으로, 단어 하나하나의 뜻이 아닌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이는 행간을 읽고 어조를 가늠하며 발화자가 처한 상황까지 헤아리는 종합적인 능력이다. 앞선 사례에선 “심심하다”라는 단어의 뜻에 집중하기보다는 왜 이 단어를 사용했는지를 짐작해 뜻을 유추할 때 우린 문해력이 좋다고 판단한다. 문제는 문해력이 기술 환경의 변화 속에서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긴 콘텐츠가 쇼츠나 릴스와 같은 짧은 영상으로 압축되고, 대학생들은 생성형 AI를 강의 자료를 요약하고 있다. 신문, 보고서, 논문, 책을 읽을 때에도 생성형 AI에게 도움을 받아 핵심만 골라보게 된다.

 

물론 요약은 효율적이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양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는 점에선 효율적이다. 그러나 모든 압축에는 손실이 따른다.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생략되면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적용되는 개인의 기준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 감정과 상황이라는 부가적 정보에 대한 생각 또한 줄어들게 된다. 회의에서 보고서의 요약본만 보고 의사결정을 내리거나, 검색 결과의 상단 답변만으로 사안을 판단하는 장면은 이미 일상이 됐다. 더 큰 문제는 빠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맥락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노력이 점차 불필요해지면서 점차 AI 사용자는 “생각하기”보다는 “읽기”에 집중하게 된다.

 

읽기와 생각하기가 분리된 환경에서 문해력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작은 절차들에 의해 지탱될 수 있다. 요약된 결론을 받아들이기 전에 원문을 한 번 확인하고, AI가 제시한 답변에 만족하지 않고 그 근거를 먼저 살펴보는 일이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신문이든 우리대학의 교내 언론이든, 한 편의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읽게 하는 매체가 자리를 지키는 이유도 결국 그런 절차가 가능한 자리를 남기는 데 있을 것이다.

 

정보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현재,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데이터가 아닌 그것을 천천히 다룰 시간인 것 같다. 결국 문해력은 일정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결론에 도달하기 전까지 과정을 한 번 더 돌아보고, 맥락을 확인하는 상황들이 쌓일 때 비로소 우린 “심심한 사과”가 어떤 무게로 건네진 말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현재우(외대학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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