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아시아영어교육학회 공동회장에 취임한 이길영(사범·영교 80) 우리학교 영어교육과 교수(이하 이 교수)는 2003년부터 우리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학교 사범대학장△우리학교 테솔(TESOL)* 대학원장△한국영어교육학회 부회장△한국응용언어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이 교수는 20년째 수업 결손 아동을 대상으로 영어 멘토링을 제공하고 영어 글쓰기 시험인 한경 토씨(TOEWC)를 개발하는 등 우리나라 영어교육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교육자이자 학자로서 우리학교 학생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고 있는 영어교육 전문가 이 교수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 보자.
Q1. 우리학교 영어교육과에 진학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어릴 때부터 교육 관련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자연스레 교육자를 꿈꿨습니다. 집안에 교육자가 다섯 명이나 있었어요. 명절엔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주된 화제였죠. 이런 분위기로 인해 교육에 대해 자연스럽게 다가갈 기회가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교육자의 길을 가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고 영어를 좋아해 영어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Q1-1. 재학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요?
전반적으로 조용했으나 호기심은 많았습니다. 학내 사안을 살피고 강연회가 있으면 참여하려고 했어요. 대학교 새내기 때 민중이란 단어에 끌려 ‘가면극 연구반’에서 활동하며 시위에 나가 가면극을 하기도 했죠. 2학년 땐 ‘비교언어연구회’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세미나를 열고 토론하면서 지성의 눈을 뜬 것 같아요. 이후 동아리 회장직을 맡으면서 더 깊은 언어학적 관심을 가질 수 있었고 이는 대학원에 진학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Q2. △광고회사△대기업△외국계 회사 등 다양한 직군을 경험했는데 우리학교에서의 경험이 어떻게 도움이 됐나요?
어딜 가든 우리학교에서 영어 공부한 사람을 인정해줬던 것 같아요. 처음 들어간 대기업 종합상사에선 외환관리부에 배속됐습니다. 외환관리부가 영어를 많이 쓰다 보니 영어를 전공한 제가 배정됐죠. 그 후 입사한 광고회사에선 영어를 전공했으니 국제 광고를 하라고 저를 국제부에 보냈어요. 이후엔 해외 다국적기업에 갔는데 영어를 배운 저를 마케팅부에 배속했습니다. 우리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한 게 큰 무기가 됐죠.
Q3. 다양한 직군을 거쳐 교육자가 되겠단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다국적기업에 다닐 때 교회 수련회에서 우연히 만난 같은 과 선배의 부탁으로 근무 전 한 시간 동안 이화여자고등학교(이하 이화여고)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약속한 기간이 끝난 후 교감 선생님이 전임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셨고 고민 끝에 학교 선생님이 됐습니다. 덕분에 사범대학(이하 사범대) 교수가 된 지금 그때 느낀 분위기를 학생에게 많이 이야기해줄 수 있게 됐어요.
Q4. 교육자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첫 월급날과 만우절이 잊히지 않습니다. 조회 시간에 교감 선생님이 월급을 받아 가라고 말씀하시는데 깜짝 놀랐어요. 담임을 맡고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게 좋아서 급여의 존재를 잊었거든요. 교직 생활이 재밌는데 월급까지 받는 게 미안해서 행정실에 못 내려갔습니다. 얼마 후 교감 선생님의 재촉으로 할 수 없이 받아온 경험이 있어요.
만우절 날 이화여고 학생들이 치밀하게 준비한 짓궂은 장난도 기억에 남습니다. 교실 문을 여니까 문이 전지로 다 막힌 채 ‘뚫고 들어오세요’라고 써 있었어요. 학생들이 만우절을 즐기는 방식을 처음 알게 됐죠. 재밌는 사건이 많아 행복하게 교직 생활을 했습니다.
Q5. 다양한 학회에 소속된 입장에서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문제는 무엇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생산적 기술의 결여△양극화△입시제도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가장 큰 문제는 말하기나 쓰기와 같은 생산적 기술이 듣기와 읽기 같은 수용적 기술보다 결여돼 있단 점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많이 듣고 읽는 게 필요합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도 필요하죠. 예를 들어 인터뷰하는 상황을 상상하며 역할놀이를 해보는 겁니다. 이런 전략을 가르쳐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영어 양극화 해결 방안으론 멀티미디어가 있습니다. 이를 활용하면 저소득층 학생들을 최대한 영어에 노출시킬 수 있거든요. 또한 농어촌 주민센터 등에 원어민 교사가 상주하도록 정부가 지원해 학생과의 상호작용을 넓히면 좋겠습니다.
Q6. 2002년 초반, 전국에서 처음으로 ‘멘토링’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더불어 ‘영어교사교육실습’ 과목을 통해 우리학교 영어교육과 학생들과 함께 20년째 수업 결손 아동을 대상으로 영어 멘토링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멘토링을 도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소득층 아이들의 교육 노출을 확장하는 동시에 사범대 학생의 사명감을 고취하고자 도입했습니다. 학습지도와 더불어 삶을 나누는 기회가 되니까 ‘멘토링’을 활동명으로 정했죠. 예전엔 사범대 학생이 한 달간의 교육실습 말곤 현장에 가볼 기회가 없었어요. 이에 학생에게 현장을 미리 보여주고 알려주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교육 혜택을 받지 못한 △저소득층△조손 가정△한부모 가정 아이들을 영어교육과 학생과 일대일로 연결했죠. 이후 △고려대학교△서울대학교△서울특별시 등에서도 멘토링을 시작했어요. 지금 사범대 학생은 4년간 교육봉사 60시간을 해야 졸업할 수 있습니다.
Q7. 독해, 문법을 중시하던 시대에서 듣기, 말하기 비중이 커지는 등 언어 교사에게 새로운 능력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미래 교사에게 필요한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변화에 익숙한 Z세대를 가르쳐야 하는 21세기 교사는 혁신적인 마인드를 지니고 있어야 해요. 고리타분한 방식에 발목 잡혀 있는 사람이 좋은 교사가 될 순 없어요. 개방적인 마인드와 함께 멀티미디어를 잘 다루는 기술적인 능력도 필요해요. 또한 교사의 목표는 이윤 추구가 아닌 아이들의 성장이므로 사명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8. 교육자로서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가요?
학생들의 영감을 고취시키는 교사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교사의 말이나 질문을 통해 학생들이 무한한 상상력을 일으켜 창조성을 발휘하는 순간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Q8-1. 개인적인 가치관이 궁금합니다.
이번에 아시아영어교육학회 회장직을 맡으며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가 가치관이 됐어요. 아시아영어교육학회 회장으로서 아시아권에서 돋보이기보다 섬기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성공을 지향하기보단 섬김을 우선하며 살고 싶습니다.
Q9. 교사를 꿈꾸고 있는 우리학교 후배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교사의 세 가지 축인 △지식△기술△태도 중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태도에 따라 교수법과 학생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거든요. 학생들이 어떤 △마음 자세△인재상△정체성을 갖고 교사가 될 것인지 분명히 생각하고 교단에 서면 좋겠어요. 교사가 된 후 초심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학교 학생들이 교육적 사명감을 가지고 교직 생활을 출발하길 바랍니다.
*테솔(TESOL): 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 영어를 배우는 학생을 위해 효과적인 교수법을 연구·개발하고 이 과정을 통해 영어 전문 교사를 양성하는 과정
우경주 기자 02gjwoo@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