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산업재해,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등록일 2021년05월28일 15시38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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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평택항에서 20대 노동자가 작업 중 개방형 컨테이너에 몸이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뒤이어 이번 달 8일엔 현대중공업 하청 업체 직원 장 씨가 원유운반선의 원유 저장고 상층부에서 작업하다가 추락해 사망했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안전장치 없이 일하다 사망하는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이번 해 1월 8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이 통과됐지만 실효성이 의심된단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 노동 현장 속 위험의 외주화 문제와 중대재해법에 대해 알아보자.
◆ 위험의 외주화가 불러온 편향된 죽음
노동자가 안전망 없이 일하다가 작업장에서 목숨을 잃는 사례는 계속돼왔다. 2018년 12월 11일 새벽 한국발전기술 소속 계약직원 김용균 씨가 태안 발전소 석탄이송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즉사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규정상 야간엔 2인 1조로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나 회사의 인력 수급문제로 김용균 씨는 혼자 근무에 나섰다. 당시 입사 3개월 차였던 김용균 씨는 업무를 숙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혼자 위험 시설을 점검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앞서 2년 전엔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용역업체 직원인 김 씨가 달려오는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즉사했다. 안전규정상 위험한 선로작업이나 수리는 열차 운행이 끝난 심야에 2인 1조로 이뤄져야 하지만 이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위 사례들은 우리나라 노동 현장에서의 고질적 문제인‘ 위험의 외주화’를 잘 보여준다. 위험의 외주화란 유해하고 위험한 업무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하청 노동자에게 집중되는 현상을 말한다. 원청 기업은 상시 필요하지만 노동자에겐 위험한 작업을 떼어내 하도급 형태로 다수의 하청 업체에 넘긴다. 원청 기업은 재해를 낮춰 산업재해 보험료
를 감면받고 싼 가격에 하청 업체를 입찰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노동자의 안전을 관리해야 할 책임까지 하청 업체에 떠넘긴다. 그러나 하청 업체는 노동자 안전 관리가 아닌 이익 극대화를 위해 최소작업인원을 쓰고 안전망에 투입해야 할 예산을 줄인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김용균 씨와 김 씨의 경우처럼 안전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안전망이 미비한 작업 환경으로 내몰린다. 원청 기업이 하청 업체에 위험을 외주화하는 구조는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지난해 원·하청 산업재해(이하 산재) 통합 통계 산출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자 만 명당 산재사고 사망자 수는 하청이 1.77명으로, 원청의 0.25명보다 약 7배 많았다. 산재가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발전소와 건설업에선 이런 경향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발전소의 경우 2015년부터 이번해 2월까지 산재 피해를 입은 노동자 253명 중 하청 업체 직원이 97%인 246명으로 파악됐다. 건설업의 경우 최근 5년간 9개의 기업에서 산재로 인한 103명의 사망자와 25명의 부상자 중 사망자의 82.5%인 85명과 부상자 전부가 하청 노동자였다.

◆ 반복되는 산재,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해결책이 될 수 있나
구의역 사고 이후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많은 법안이 발의됐으나 다른 법안에 우선순위가 밀려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 김용균 씨 사망 사고가 발생하자 더 이상 이 같은 사고가 일어나선 안 된단 의견이 모였다. 이에 2018년 12월 27일‘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원안 속 노동자 사망 시 사업주에게 부여되는 징역 1년의 하한선을 신설하는 조항은 빠졌다. 하청 금지 영역에서 하청이 제일 많이 일어나는 업종인 제조업과 건설업도 제외됐다. 김용균법 적용 후에도 여전히 위험 작업을 하청 업체에 떠넘기는 것에 큰 제약이 없고 사고가 나도 원청업체가 져야 할 책임은 가벼웠다.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의 수는 2019년 855명에서 지난해 864명으로 법안 적용 후 오히려 증가했다. 이에 반복되는 산재 사망 사고를 막으려면 사업주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새로운 법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거세졌다. 이런 내용이 담긴 중대재해법이 지난해 6월 처음 발의됐고 지난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원안이 발의되고 법안심사소위원회를 거쳐 최종안이 통과되기까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원안보다 사업주의 처벌이 약해지고 법의 적용 범위가 제한돼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에 따르면 기업이 안전조치를 지키지 않아 소비자나 노동자가 다치거나 숨지는 경우 사고를 낸 회사 대표나 책임자가 1년 이상 징역을 살거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원안인‘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상 10억 원 미만 벌금’ 보다 대폭 하향됐다. 최정학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때 징역형으로 실형이 나와야 한단 게 핵심이다”며“ 하한형이 1년 이상이면 지금까지 관행으로 볼 때 여전히 책임자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한 법 적용 대상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이 빠졌고 50인 미만 중소업체엔 3년의 유예기간을 주는 내용이 추가됐다. 그러나 지난해 1월에서 9월까지 산재 사망자 1,571명 가운데 5인 미만 사업장 소속은 23.9%인 375명이었고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비중은 61.5%인 966명이었다. 이에 작은 사업장이 방치되거나 기업들이 원청을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쪼개는 편법이 등장할 거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다음 해 1월 27일부터 적용된다. 이에 앞서 중대재해법의 세부사항을 담은 시행령을 이번 달 중 확정해 입법 예고할 예정이다. 하지만 시행령을 정하는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주요 쟁점에서 경영계와 노동계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쟁점은 중대재해법의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의 범위다. 중대재해법은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만 규정할 뿐 구체적인 범위는 명시하지 않았다. 이에 경영계는 경영 책임자에 대표이사가 아닌 안전보건책임자도 포함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계는 안전보건책임자란 실무자만 처벌하는 꼬리 자르기식 처벌을 우려하고 있다. 하청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원청기업의 책임 범위도 주요 쟁점이다. 경영계는 김용균법을 참고해 원청 기업의 책임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제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용역과 하청 노동자를 포함해 하청 업체와 위탁계약 등을 맺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까지 원청이 책임을 지고 안전 의무를 다해야 한단 입장이다.

◆ 벼랑 끝의 노동자들, 나아가야 할 방향은?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고로 하루 평균 2.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플랫폼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대리기사 및 배달원 등 법적으로 개인사업자인 노동자가 늘어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망자수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의 산재 사망사고 발생 빈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는 23년간 두 차례를 제외하곤 OECD 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를 기록했다. 산재로 사망하는 사람의 비율도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노동자를 지켜줘야 할 법안이 졸속으로 처리된단 비판도 일고 있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정치권에서 노동자의 산재 사망 관련 이슈가 불거지면 그때만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이슈를 다루는 경향이 있다”며“ 김용균법과 중대재해법이 논란이 많았던 이유도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법안 형성 과정에서 각 계층의 의견을 반영해 실효성 있는 방안이 충분한 기간동안 토의돼야 한단 것이다. 또한 박준선 민주노총 조직국장(이하 박 국장)은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이 비용 절감이란 기업의 이해와 협상될 수 없는 가치임을 강조했다. 박 국장은“ 실효성 있는 법안이 나오려면 국민이 이슈에 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복되는 산재 사망 사고를 줄이기 위해 각 계층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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