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서양어·스페인어 76) 전 대사 (이하 박 전 대사)는 우리학교를 졸업한 뒤 스페인 국립 마드리드 자치대학교에서 국제법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영국 런던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박 전 대사는 △주 유엔(UN) 대표부 차석대사△주 페루 대사△주 스페인 대사△주 제네바 대표부 공사△국제해저기주 (ISA) 이사회 의장 등을 역임하며 국제법과 다자외교 분야에서 활동했다. 현재 우리학교 석좌교수로서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 전 대사를 만나보자.
Q1. 대학 시절 어떤 학생이었으며 외교관의 꿈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학 시절 전 가정 형편이 어려웠어요. 부친이 정치를 실패하고 가산이 탕진돼 매우 빈곤한 시절을 보냈죠. 우리학교 스페인어과에 수석 입학을 해서 장학금도 받았지만 별도로 아르바이트를 해 가족을 도와야 했어요. 외교관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건 어렸을 적부터 갖고 있던 생각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광복 후 우리나라의 최대 문제가 남북 분단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외교관이 돼 남북 분단으로 형성된 적대적인 관계를 해소하고 남북 평화의 주춧돌이 돼야겠다고 다짐했죠.
Q2. 우리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한 것이 외교관 생활에 어떤 도움이 됐나요?
스페인어는 전 세계 인구 중 5억 명 이상이 사용하고 22개국이 공용어로 사용할 정도로 수요가 많은 언어 중 하나입니다. 외교관 생활을 하며 저는 국제법 전문가이자 다자외교 전문가로 일했습니다. 유엔에서 일할 때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유엔 군축회의에선 네 번의 발언을 영어로 하다가 한 번을 스페인어로 발언한 적이 있어요. 그 발언 이후 스페인어 사용 국가의 많은 대표들이 제 발언을 지지했어요. 또한 쉬는 시간에 쿠바의 여성 외교관이 제 자리에 와서 “동양인 중에 우리보다 스페인어를 더 잘하는 사람은 난생 처음 봤다”고 말했고 주변의 외교관들도 저를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됐어요. 그만큼 외교에 있어 스페인어가 많은 도움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Q3. 지난 39년간의 외교관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지난 39년간의 외교관 생활은 긴장과 노력의 연속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나라를 대표해서 일한다는 자부심과 보람이 있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제가 독도·해양 문제 전문가로서 독도 영유권 확립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입니다. 저는 조약 국장으로 일하면서 우리나라 정부의 독도 정책을 바꾼 적이 있어요. 독도를 사람이 살 수 있는 섬으로서 독도가 200해 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가질 수 있는 유인도로 바꿨습니다. 지난 2006년엔 일본에 직접 방문해 우리 정책이 이런 내용으로 바뀌었다고 선포했습니다. 사실 정책 변경에 대해서 외교부 내부에서 압력이 강하긴 했지만 전 국익에 부합하고 앞으로의 협상전략으로서 도 바람직하다는 신념 하나로 이를 이뤄냈습니다. 또 일본이 독도 문제를 비밀리에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제가 이를 극적으로 간파해 막아냈던 일화 역시 기억에 남습니다.
Q3-1. 페루 대사 시절 KT-1 수출 주도 등 외교관으로서 한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기 위해 많은 협상을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국제 협상은 무엇인가요?
저는 협상 전문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협상을 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국제 협상은 페루 대사 재직 당시 국산 훈련기 20대를 중남미 최초로 수출한 것입니다. 2년간 정부 대 정부로 협상을 진행했어요. 그 당시 우말라(Humala) 페루 대통령이 정부 대 정부 계약으로 하지 않으면 교섭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여러 압력으로 인해 제가 협상 당사자가 됐죠. 2년간의 협상 과정은 외교관으로서의 협상 능 력과 인내의 한계를 시험한 과정이라고 말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이 계약 과정에서 페루의 국방 장관이 5명이나 바뀌었어요. 브라질 대통령이 페루 대통령에 게 수차례 전화를 해서 우리나라 항공기를 구매하면 안된다고 압력을 넣기도 했죠. 이런 힘든 과정을 거쳐 마침내 항공기 수출에 성공했고 우리 훈련기가 중남미에 진출하게 된 쾌거를 이뤘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돼 800대의 국산 순찰차와 7척의 함정도 수출했습니다.
Q4. 외무고등고시를 합격한 비결은 무엇인가요?
고시를 준비할 당시 빨리 취업해서 가족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압력이 컸어요. 그래서 제게 허용된 시간은 딱 1년 뿐이었습니다. 안되면 바로 다른 길을 찾아볼 생각이었죠. 1년간 하루에 15시간씩 공부하는 걸 목표로 외교관 시험을 열심히 준비했고 결과는 3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하게 됐어요. 외무고시나 국제기구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을텐데 저는 집중적으로 준비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여러분들은 잠재 능력이 있으니 2-3년 정도 짧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하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Q5. 외교관으로서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영국의 저명한 외교관인 헤럴드 니콜슨(Ha rold Nicolson)이 명저인 ‘외교(Diplomacy)’를 펴냈어요. 그는 외교관의 자질로서 △인내△정직△정확△좋은 성격△충성심△침착성을 강조했습니다. 이것들 모두 필수적인 자질이지만 전 애국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외교관은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총을 들지 않는 병사입니다. 그 최전선에서 필요한 건 국익을 위한 지혜와 헌신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게 중요하죠. 간혹 어떤 이들은 외교관이란 자리를 개인의 영달과 목적을 추구하는 기회로 활용하기도 해요. 이는 국익에 반하는 처사가 됩니다. 미국의 외교관인 조지 캐넌(George Kennan)은 전문성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전 대사로 일할 때 제 방 앞에 ‘Somos profesionales(우리는 전문가다)’란 문구를 걸었어요. 직원들도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도록 말이죠.
Q6. 스페인의 펠리페(Felipe) 6세 국왕으로부터 스페인이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가장 높은 상인 ‘대십자 시민훈장’을 수여 받은 이력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훈장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이 궁금합니다.
사실 이건 제 개인에게 줬던 건 아니고 우리나라에게 주는 거라고 봐야 되겠죠. 저는 스페인과 인연이 깊고 그 좋은 인연을 이어가려고 지금도 노력 중이에요. 과거 외교부에서 보내주는 연수를 스페인으로 갔었어요. 지난 1984년부터 2년간 스페인에서 연수를 하며 스페인 왕립외교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이때 당시 저는 펠리페 6세의 부친인 후안 까를로스 (Juan Carlos) 국왕으로부터 1등 상을 받았어요. 또 펠리페 6세 국왕도 다닌 스페인 마드리드 자치대학에서 공부하고 국제법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국왕과 좋은 관계도 맺고 제가 스페인에 있는 동안 양국 관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죠. 여러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해 이에 대한 인정의 대가로 훈장을 받지 않았나 싶고 제 자신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Q6-1. 대십자 시민훈장이 대사님의 외교 활동이나 다른 분야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합니다.
제 활동에 대해 인정을 받았다는 만족감과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하라는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스페인의 대십자 시민훈장 외에도 페루에선 역사상 처음으로 훈장을 3년에 두 번 받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외교관으로서의 명예와 자부심의 원천으로 작용했 죠.
Q7. 대사 재임 당시 우리나라와 스페인의 경제적 관계와 같은 대외협력관계를 더욱 격상했는데 협력 관계를 증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무엇이었나요?
대사에게 있어선 △경제△문화△정치 등 모든 관계가 중요합니다. 그중에서도 경제 관계는 특히 중요하지요. 현재 경제 상황이 자유무역경제에서 보호무역 경제로 바뀌고 있고 미·중 패권 경쟁이 심한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의 대외 의존도가 크기에 경제적 진출을 위한 외교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므로 대사관이 경제 외교의 주축이 돼 중소기업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해야 해요. 전 근무하는 국가와 한국과의 경제 관계 증진에 힘을 쏟았죠. 예컨대 스페인에 있을 땐 스페인에서 가장 큰 백화점에 우리나라의 화장품을 진열할 수 있도록 스페인 백화점의 이사들을 수십차례 만나서 설득한 적이 있어요. 2년간의 고생 끝에 우리나라의 화장품이 스페인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처럼 대사관은 경제 외교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합니다.
Q8. 페루 대사를 지낸 뒤 스페인 대사로 활동하셨는데 페루에서 스페인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통상 3년 동안 한 임지에서 근무하고 다른 곳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돼 있어요. 보통 대사관에서 본부로 가는 경우가 많고 대사관에서 대사관으로 가는 경우는 드뭅니다. 저는 페루 대사로서 열심히 일한 성과를 인정받아서 스페인 대사라는 중책을 맡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히 페루에서 정부 대 정부 계약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경제 외교 분야에서 큰 역할을 했던 게 인정 받은 것 같아요.
Q9. 가장 중요시하는 인생의 덕목이 무엇인가요?
제가 강의 시간을 통해서 멘토링을 하고 있는데 사실 기성세대로서 부끄러운 건 현재 우리 시대의 가치관이 붕괴되고 철학이 부재하다는 점입니다. 학생들에게 모범으로 삼아 본받으라고 할 리더가 없어요. 이럴 때일수록 더욱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강조하고 싶습 니다. 전 정직이나 신뢰같은 신념을 최대 덕목이자 나침반으로 여기며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생각입니다.
Q10. 현재 우리학교 석좌교수로서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학교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제가 39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하고 대학으로 돌아와서 느낀 건 우리 청년들의 현실이 너무 어렵다는 것 입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방황하기도 하고 자신의 잠재 능력에 대한 확신을 못 갖고 있어요. 그래서 전 지금까지의 제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을 격려하고 공감하고 앞으로 진로 개척에 도움이 돼야겠다고 생각해서 요즘 수업 시간 일부를 할애해 ‘30년 후의 나’라는 발표를 시키기도 해요. 지금은 후배들이 굉장히 고달프겠지만 어렵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걸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스페인 속담 중에 ‘맑은 날만 계속되면 사막이 된다’는 말이 있어요. 옥토가 되려 면 비도 오고 바람도 불어야 한다는 거죠. 과거에 사는 사람은 우울하고 미래에 사는 사람은 불안합니다. 그렇기에 ‘지금과 현재’를 굳건히 살면 반드시 미래에 길이 보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살기를 바랍니다.
장휘영 기자 07hwio@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