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마음 한구석에 품어온 소박한 버킷리스트 하나가 있다. 바로 ‘세계 3대 에그타르트 맛보기’이다. 분명한 건 그 달콤한 동경이 우리대학 포르투갈어과에 지원한 동기에 한몫했다는 사실이다. 어설픈 발음을 메꿔가며 포르투갈어를 공부한 지 겨우 4개월 남짓 됐을 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학과에서 지원하는 한 달간의 ‘하계방학 포르투갈·브라질 단기 국외연수’ 프로그램이었다. 든든한 학과 지원 덕분에 1학기를 마친 후 포르투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솔직히 말해 한 달이라는 시간은 언어를 습득하기에 턱없이 짧다. 그렇기에 떠나기 전에는 학업적인 성취보다 ‘포르투갈을 여행하고 온몸으로 경험해 보자’라는 설렘이 더 컸다. 그러나 리스본에서의 4주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평일 아침이면 기숙사를 나와 지하철을 타고 신리스본 대학교(Universidade NOVA de Lisboa)로 갔다. 쨍쨍한 햇빛 아래서 붐비는 인파에 배낭을 앞으로 고쳐 멘 채 지하철에 몸을 싣는 것으로 하루를 열었다. 수업이 끝나면 동기들과 “나따 먹어야 해”를 외치며 핑구 도스(Pingo Doce, 리스본 마트)로 곧장 달려갔다. 베이커리 코너에서 에그타르트와 과일을 사 들고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기숙사 방에서 에그타르트와 과일을 먹던 순간은 현지 생활의 소소하지만 가장 확실한 낙이었다.
지난해 여름을 돌아보면 유독 선명한 순간이 세 가지 있다. 먼저 포르투갈어를 더 배워보고 싶어 내 실력보다 한 단계 높은 분반에 자진해서 들어간 일이다. 포르투갈어를 배운 지 고작 4개월밖에 안 된 나보다 훨씬 유창한 학생들 틈에서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뒤처지지 않으려 아등바등 버티다 보니 완벽하지 않더라도 일단 입 밖으로 내뱉는 무모함과 자신감이 생겼다.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을 배운 계기였다.
두 번째는 파스테이스 드 벨렝(Pasteis de Belem) 오픈런이다. 원조 에그타르트를 갓 구운 상태에서 먹겠다는 일념으로 동기와 함께 아침 6시에 기숙사를 나섰다. 기숙사에서 벨렝 지구까지는 약 50분 거리였다. 그곳에서 갓 구워 나온 에그타르트를 먹었을 때 동기와 서로 휘둥그레진 눈을 마주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아직도 보며 웃곤 하는 타임랩스 속 그 장면은 ‘세계 3대 에그타르트 맛보기’라는 버킷리스트에 한 발짝 다가선 순간이었다. 이후 가게 앞 공원에 앉아 멍하니 노래를 듣던 순간은 무척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마지막은 리스본 어학당 친구들과 소주 포차에 간 일이다. 어학당에서 만난 포르투갈 친구들과 리스본에 있는 우리나라식 소주 포차에 갔다. 포르투갈어로 더듬더듬 말을 이어간 나에 반해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던 그 친구들 덕에 소통에 큰 어려움이 없었으며 그들이 좋아하는 우리나라의 △드라마△영화△음식 이야기를 한참 나눴다. 식당 안의 노래방 기계로 현지 친구들이 케이팝을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사람들보다도 우리나라 문화에 더 열정적이고 진심인 현지 친구들과의 시간은 지금 떠올려도 매우 특별하고 기분 좋은 순간이다.
리스본 단기 연수 동안 강의실 안에서 배울 때는 알지 못했던 한계를 체감했다. △강의실△마트 계산대△카페 카운터에서 서툰 포르투갈어로 더듬거리며 소통하던 모든 순간이 그랬다. ‘세계 3대 에그타르트 맛보기’라는 오랜 버킷리스트를 이렇게 하나 달성했지만 더 크게 남은 것은 틀려도 일단 뱉고 보는 배짱과 언어를 생생하게 배운 경험이다. 4주간의 경험은 전공을 이어 나가는 데 든든한 밑거름이 됐고 그 기억은 지금 이문동에서 학업을 이어 나가는 데 있어 확실한 동기부여가 돼주고 있다.
이고은(서양어·포르투갈어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