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턴’은 낸시 마이어스(Nancy Meyers) 감독의 동명 원작을 한국적 정서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베테랑 시니어 인턴과 젊은 대표가 함께 일하며 서로에게 든든한 조력자이자 동료로 거듭난다는 서사의 큰 줄기는 원작과 일치한다. 이에 따라 무난하고 안정적인 리메이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조직 문화와 현실적인 인간관계의 역학이 더해져 원작과는 또 다른 깊이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주인공 선우는 독보적인 감각으로 단기간에 패션 기업 ‘우투투(Wootootoo)’를 일궈낸 청년 여성 대표로 모든 업무를 완벽하게 완수해야 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자이다. 하지만 선우는 과중한 업무량과 주변의 은근한 압박에 점차 지쳐가고 있었다. 이러한 과부하된 일상 속에 시니어 인턴 기호가 등장한다. 기호는 수십 년간 출판사에서 다져온 사회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의 정체성과 구성원들의 기류를 날카롭게 통찰하는 연륜을 지녔다. 기호는 젊은 대표와 까다로운 회사 분위기 속에서 겉도는 듯했으나 특유의 어른스러움으로 점차 조직의 중심이 된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직면한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기업의 급성장에 따른 경영상의 위기와 더불어 청년 여성 대표라는 이유만으로 선우를 얕잡아보거나 배신하는 인물들이 끊임없이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대표적으로 회사 전속 모델과의 갈등이나 기업의 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위계와 서열만을 무기 삼는 전문 경영인 후보들의 견제는 한국판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현실적인 장애물이다. 게다가 남편 영환의 불륜까지 더해지며 선우는 극심한 고립감을 느낀다. 여기서 가정과 일 사이에서 어느 것 하나 내려놓을 수 없는 젊은 리더의 고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기호는 이런 선우를 보살펴야 할 존재로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존경스러운 리더로 인정하며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낸다. 결국 기호는 선우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고민을 털어놓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어른’이 돼준다. 어른을 정의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난 이 영화를 통해 진정으로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어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원작과의 결정적인 차이점 역시 돋보인다. 원작이 미국 영화 특유의 위트로 위기를 해소해 갔다면 한국판은 인물이 내면에서 겪는 감정의 깊이에 한층 더 집중한다. 특히 사생활의 위기 앞에서 두 작품은 명확히 갈라진다. 원작의 주인공은 남편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가정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 화해를 선택하지만 한국판의 선우는 자신의 존엄과 삶의 주체성에 더 집중한다. 이처럼 주체적인 삶을 개척하려는 현대 우리나라 여성의 서사를 적극 반영한 각색은 캐릭터의 설득력을 한층 끌어올린다. 영화 ‘인턴’은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 새로운 메시지를 던진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연륜의 지혜와 청춘의 열정이 결합할 때 비로소 진정한 동료애가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선우와 기호의 차이가 연대로 나아가는 모습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이정인 기자 13jeongi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