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구스티나 바스테리카(Agustina Bazterrica)의 소설 <육질은 부드러워>는 바이러스로 모든 동물이 폐사해 인간을 사육하고 소비하는 디스토피아적 설정에서 시작된다. 이 작품은 먹을 고기가 사라지자 대체 음식이라는 명분으로 식용 인간 사육을 합법화한 세계와 그 속에서 육가공 공장 직원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마르코스(Marquitos)의 일상을 다룬다. 인간 사육 합법이라는 기괴한 시스템하에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에선 지배와 피지배 관계 속 피지배자 층에 대한 착취가 저절로 발생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소설은 주인공 마르코스와 그가 선물로 받은 식용 여성인 재스민(Jazmín)의 관계를 통해 우월감과 착취 형태가 어떻게 생겨나고 언어화되는지 보여준다. 마르코스는 도덕적 혐오와 생계 사이에서 타협하며 살아가던 중 선물로 들어온 상품에 재스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적 감정을 키워나간다. 이를 통해 독자는 식용 인간에게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금기되는 세상에서 마르코스가 재스민을 바라보는 시각이 상품성에서 인격성으로 넘어가는 변화 과정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결말에서 마르코스는 아이를 낳은 재스민을 망설임 없이 도살장으로 보내고 “길들여진 동물의 인간적인 눈빛”이라는 냉담한 묘사만을 남긴 채 다시 디스토피아 체계 안으로 복귀한다. 이 대목에서 인간성이 단순히 개인의 감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의 힘 앞에 쉽게 무너지는 허약한 기만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식용 인간을 상품으로 부르며 식인 행위를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언어가 하나의 폭력적 장치로 작동함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착취가 정교하게 구성된 제도와 체계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근거는 동물의 본능적 서열 다툼과 인간의 제도적 착취의 차이이다. 동물의 서열 경쟁이나 질투는 생존과 번식을 위한 유전자적 본능에 기인하므로 타인을 지배하기 위해 언어나 이야기를 지어내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착취는 이러한 동물적 본능과는 명확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인간은 단순한 경쟁을 넘어 △모방 욕구△우월감△질투를 정당화하는 서사를 만들며 그것을 제도로서 정착시켜 착취를 당연한 일상으로 변모시킨다. 자신의 잔혹함을 대체 음식이나 상품과 같은 언어로 포장하고 시스템 뒤로 숨는다는 사실은 착취가 맹목적 본능이 아니라 언어와 제도로 정교화된 산물임을 나타낸다.
이 소설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적 질서나 편의 뒤에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게 만드는 날카로운 언어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체계의 부조리를 끊임없이 성찰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마르코스처럼 폭력의 시스템에 동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당연함으로 위장된 착취의 언어를 경계하고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끊임없이 확인하며 증명해 내야 할 것이다.
송송희 기자 13songhui@hufs.ac.kr